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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13년 전원, 두 번째 수술, 폐 절제

암삶 45-양날의 검-항암제 부작용들(2013년)

by 힐링미소 웃자 2021.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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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제는, 종류를 불문하고, 그 약효와는 별개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제는 거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부작용’이라는 문제다.

사실,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는 감기약이나, 소화제, 또는 그 외 어떤 약이 됐던, 돋보기를 써야만 보일듯한 글자들이 있다. 깨알같이 쓰여 있는 그런 문장들은 대부분이 부작용에 대한 것들이다.

그런 약들도 그토록 많은 부작용을 명시하고 있는데, 인류가 만들어내는 약 중, 그 어느 것들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독하다는 항암제는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할까!

그 엄청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왜 항암제를 쓸까?
그건 아마 무자비하고 잔인한 암을 어느 정도까지는 통제하는 게 가능하다고 하니까 사용할 것이다. ‘마이너스보다는 플러스가 조금이라도 많다’ 면 안 쓸 이유가 뭐냐? 와 같은. 하지만 문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그 부작용 또한 단지 ‘엄청나다’ 라거나 ‘심하다’라는 정도가 아니라,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주치의 선생님과 항암 전문간호사 선생님과의 문답 과정에서, 내가 알고 있던 ‘막연한 부작용’을 넘어, 구체적인 ‘부작용’의 내용을 알게 되었다. 그런 부작용에 대한 인식은 내가 항암제를 시작하는 것을 머뭇거리게 했다.

항암제의 부작용 못지않은 고민거리가 또 있었다. 강력한 효능 못지않은 ‘내성’에 관한 고민이었다. 비뇨기과 교수님도 나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모든 약에는 필연적으로 내성이 있습니다.”

그렇든 안 그렇든 난 계속해서 추적검사를 해야 할 입장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나 같은 경우엔, 반드시 먼저 코디네이터 선생님과의 면담이 필수였다.

“어서 오세요, xxx 씨. 오랜만이네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어떻게 보내셨어요? 여름도 다 가고 벌써 가을이네요.”
“그러게요. 폐 수술한 후 동네 뒷산에서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하고 그러면서 지냈습니다.”
“건강해 보이시니 좋네요. 어떻게, 항암제는 생각해 보셨어요?”
“생각은 많이 해 봤어요. 하지만 아직 결정을 내릴 수가 없네요. 선생님께 자세히 여쭤보고 싶은 게 많아요.”
“제가 뭘 그렇게 많이 아는 게 있을까요?"
"선생님은 하루에도 수십 명씩 상담하시고, 설명하시고, 피드백도 받으시고 그러시잖아요?”
“그거야 제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

김 선생님은 의도적으로 조금은 중립적으로, 조금은 사무적으로 환자들을 대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가 다루는 영역이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을 항암제에 대한 것 아니겠는가!

그는 환자의 혈액검사 결과를 분석해야 하고, 소변검사 결과를 비교해야 하고, 심전도나 기타 중요한 검사의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암제 사용에 따른 환자의 미세한 변화를 정확하게 점검해서 담당 의사에게 전해야 하는 일이기에 실실 웃으며 환자들을 대할 순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와의 대화가 진행되면서 때때로 웃기도 하고, 때로는 꼬투리를 잡아 비꼬기도 하는 등 그의 본래의 성격을 짐작할만한 말투들이 갑작스레 튀어나오기도 했다. 김 선생님은 천성이 나긋나긋하고 친절한 편은 아닌 듯했다. 오히려 까칠한 편에 더 가까운 듯했다. 하기야 어디 한 인간의 내면이 어찌 그리 단순하랴만!

그러나 난 언제나 조크를 즐긴다. 난 누구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든... 농담하고, 웃고, 대화를 주고받는 걸 좋아한다. 난 나와 다른 사람이 너무 좋다.

“선생님, 항암제의 주요한 부작용이 뭘까요?”
“xxx 씨, 부작용을 다 듣고 나면 ‘나 항암제 안 해요!’할 건가요?”
“아마도요, 하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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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도 웃었다. 나는 폐 수술이 끝난 후 중환자실에 얼마간을 머무르며 다짐했었다.
"어차피 이리 된 거 되도록 더 웃고 살자."
또 이런 다짐도 했었다,
"이래저래 한 세상, 억지로라도 안 될 양이면 쉽게 쉽게 살다 가자."
물론 그런 다짐들은 나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러자는 것이었다.

치료니, 약이니, 먹거리 등에서 그러자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면 그런 것들은 ‘나만의 선택’의 문제이며, 엄격한 ‘권한과 책임’의 문제라는 생각에서였다. 항암제를 쓰느냐, 안 쓰느냐는 최종적으로 내가 결정하고, 그 부작용에 대한 책임도 내가 져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 그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먼저 듣는다는 전제조건에서!

“부작용에 대한 무엇이 알고 싶으세요?”
“예, 내 몸 어느 부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요.”
“하하, 아예 논문을 발표해달라고 하시지 그래요?”
“하하하”

“우선 어떤 분들은 머리카락이 일시적으로 빠져요.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일시적으로 머리카락의 생산을 멈추게 하는 거지요.”
“뭐가요?”
“항암제가 모포를 훼손해서요. 이건 그냥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약을 끊으면 다시 납니다.”
“멋진 일은 아니겠네요.”
“그럼요. 당사자들은 마음이 아프시겠지요.”
“머리와 관련된 다른 부작용은요?”
“모발이 변색하기도 합니다. 검은 머리가 약을 써가면서 흰머리로 바뀌기도 합니다.”
“영구적으로요?”
“이것도 일시적입니다.”
“예…….”

“다음으로는 구강에 염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잇몸, 볼 안쪽, 혀, 목구멍에요. 이럴 때 조기에 치료해야 감염을 막을 수 있습니다.”
“…….”

“또 항암제는 적혈구나 백혈구는 물론이고 건강한 혈소판을 만드는 걸 방해하기도 합니다. 이 부작용은 인체에 여러 가지로 곤란한 문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심각하군요!”
“이제 시작인데, 벌써 그런 말씀 하세요?”
“…….”
“모든 환자분들께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 드리진 않아요. 환자분이 하도 유별나셔서…….”
“유별나서 맘에 안 들어서 겁주시는 건가요? 하하”
“환자분은 좀 특별하세요…….”
“저 가난해요.”
“부자라고 안 했어요. ‘특별하다’라고 했을 뿐이에요.”

“또요?”
“심장이 약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해요. 엄밀하게는 심장에 있는 근육을 약하게 만들어요. 특히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한 분들께는 위협적이지요.”

김 선생님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쯤 해서 나의 온몸엔 급속도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소화기 관련 부작용도 있을 수 있어요. 설사나 변비 같은. 상대적으로 활동적인 위점막을 암세포로 오인해서 공격할 수도 있어서요. 암세포는 그 활동이 왕성하잖아요. 위 점막도 재생속도가 빠른가 봐요. 그러니 암세포로 오해받을 수도요.”
“암세포는 참 약아빠졌네요.”
“그렇지요?”
“저도 그놈들처럼 약았었으면 일찍부터 정기검진을 받았을 텐데......”

스스로를 자책하는 나의 의도적인 표현을 그는 애써 무시하면서 항암제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계속했다.
“구토와 구역질도 대표적인 항암제 부작용이에요. 이것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들 정말 많이 봤어요.”
“저 같은 암 환자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들은 다 있군요.”
“구역질이 심하면 불쾌한 정도가 아닙니다. 무척 고통스럽습니다.”
“예…….”

“또 소화기 장애에, 설사나 변비, 구역질 말고도 식욕부진 또는 식욕감소도 환자분들을 힘들게 해요.”
“이젠 음식도 맘대로 못 먹게 하는군요, 항암제의 부작용이.”
“이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내야 합니다.”
“이쯤 되면…….”
“되면?”
“아니에요.”

“또 간 독성도 있어요. 아시겠지만, 인체에 들어온 모든 것들은 해독 과정을 거치잖아요? “
“그렇게 배웠어요.”
“당연히 항암제도 간을 거치면서…….”
“그렇겠지요. 일단 간을 통과하겠지요.”
“예. 그래서 간 수치가 올라갑니다. 이 간 독성은 참 문제가 많아요. 어느 분들은 이 간 독성 때문에 약효가 뛰어난 항암제도 맘대로 못 드셔요.”
“간 독성이 그렇게 무서운가요?”
“그럼요. 심할 경우 사망에도 이릅니다.”
“…….”

“그럼, 신장에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겠네요? 소변이 줄어들고……. 신장이 망가지고.”
“맞아요. 그런데 신장에도 악영향을 끼치리란 걸 어떻게 아셨어요?”
“저를 무시하시는군요. 속으로는 무식할 거라고 생각하시지요?”
“무슨 말씀요! 전혀요.”
“하하, 농담입니다. “

나의 ‘농담’이란 단어에 그는 갑작스레
깊은 시선을 내 눈 속으로 찔러 넣었다. 복합적인 감정이 그의 두 눈에 가득했음을 느꼈다. ‘뭘까? 연민? 동정? 무시? 의문? 한심함? 비아냥?’ 난 속으로 그의 시선의 내용을 헤아리려 애써봤다.

내가 김 선생님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경향과 패턴을 떠올렸다. ‘아니야! 그럴 분은 아니야!’, ‘그럼?’ 그럼 무엇이 내가 그의 찰나의 시선 속에 담긴 온갖 것들을 그렇게 해석했었을까?
그는 다시 내게 호기심 섞인 눈길을 주며 아리송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 농담이 나오세요?”
“그럼요? 울어요?”

그렇게 대답하며 난 맞은편 창문에 비친 나의 겁먹은 얼굴을 봤다. 그 얼굴 밑에 있는 나의 웅크린 작은 몸뚱이는 창밖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북한산 자락에 떠 있는 희미한 홀로그램 구름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연민, 동정, 무시, 의문, 한심함, 비아냥……, 그런 느낌들은 사실은 ‘내가’ 나의 당시의 모습을 스스로 해석한 것일 뿐이었다.
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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