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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11년 암 진단, 4기, 전원, 첫 번째 수술, 좌절

암삶 21-수술 전날에 일어난 일, 다발성 폐전이, 뼈전이, 신장전절제 (2011년)

by 힐링미소 웃자 2021.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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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한 사유로 입원한 환자들 사이로 

나를 위한 병상이 정해졌다.

도대체 몇 인실인지 모를 정도로 

그 병실에 입원한 분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이미 친구가 된듯한 두 분은 

친근한 말투로 대화 중이셨는데,

연세는 아마 70대 말 정도? 

40대 중반의 나는 그분들 옆자리에 배당되었다.

 

한 분이 환자복 상의를 들췄다.

명치부터 배꼽까지, 그리고 그 배꼽에서

옆구리 너머까지 꿰맨 자국이 보였다.

"잘 회복되다 폐렴기가 있어서..."

뭐 그런 말씀을 이웃 병상 환자한테 하는듯했다.

나는 그런 분위기에서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그 병실에선 내가 아마 제일 젊었던 듯했다. 

 

그들은 내 이름과 나이가 적힌 

카드가 붙어있는 병상의 사물함을 

흘끗흘끗 보는 듯했다. 

내 침대가

문 입구 쪽에 있었으니…. 

오가며 싫어도 보였겠지….

나는 정체 모를 주삿바늘들을 

여기저기에 꽂고 누워있었다.

 

잠깐 잠이 들었던 듯했다.

하지만 친근한 발걸음과 목소리에 

나는 금세 잠이 깼어.

70대 중반을 진작에 넘기신 아버지가 고향에서 첫차를 타고 오셨다.

어머니는 집에 계신다고 하셨다.

차마 아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시겠다며….

 

아버지께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과 눈빛이셨다.

허탈한 모습이셨고.

C 병원에서의 진단 후에도,

Y 병원에서의 확인진단 후에도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연락을 안 드렸었다

하지만 예의가 아닌 듯 해서

입원 직전에 말씀드린 이유로 

부랴부랴 올라오신 것이었다.

 

“아이고 이걸 어쩌냐?

이게 무슨 일이냐!

지금 나랑 입장이 바뀌었어야 했는데. 

내가 여기에 누워있어야 하는데….

네가 여기에 왜 누워있단 말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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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엉뚱한 데를 보시며 

울부짖음인지 탄식인지 나무람인지 모를

목소리로 크게 말씀하셨다.

그 엉뚱한 데는... 하필 그 두 할아버지가 계신 방향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마치 부끄러운 일이라도 당하신 듯

이 사람 저 사람들의 눈치를 보시는 것 같았다.

 

그 두 분께서도 아버지를 보시긴 했으나 대꾸는 안 하셨다.

아버지가 그분들을 향해 말씀하실 때,

나도 그분들을 봤고,

서로 눈이 마주쳤고….

아마도 ‘젊은 사람이 저렇게 누워 있고 연로하신

아버지가 탄식하고 계시니 말조심해야겠다’란 

생각을 그분들도 하셨을지도...

그래서 아버지의 말씀에 

거드는 말을 안 하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술은 언제 하냐?”

“낼 오후 2시경에 한답니다.”

“그래? 밥도 못 먹고 힘들겠다?”

“……”

“잘 돼야 할 텐데.”

“……”

"어떻게 할까......"

“아버지, 피곤하실 텐데 그만 집에 가셔서 쉬시지요.”

“……”

“아버지 그러세요.”

 

아버지도 급작스레 올라오시느라 힘드실 텐데... 

이런 병자들 천지에 오래 계실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 가셔서 쉬세요. 농사일도 바쁘시고... 많이 고생하실 텐데..."

"......"

"어떻게... 차 타는 데까지 모셔다 드릴 수도 없고..."

"괜찮다. 택시 타면 어디든 데려다줄 텐데, 뭘."

 

나는 다시 얕은 잠에 들었다.

무슨 미로 같은 곳을 헤매는 듯,

무슨 덤불 속에서 길을 잃은 듯

주체 못 할 한낮의 꿈이 내 영혼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 얕은 잠도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오래가지 못했다.

“xxx 씨!”

누군가가 분명히 내 이름을 불렀다.

“예~에~?”

“면도를 하셔야 하는데.”

“면도요? 집에서 하고 왔는데….”

“아! 얼굴 말고요.”

“말고요?”

“예. 가슴부터 무릎까지요.”

“왜요?”

“수술실에서 내려온 거에 의하면 환자분은

개복수술이라서.”

“그래요? 제가 수술 안내 중에 ‘면도’에 대한 말은 듣질 못해서요.”

“그러셨군요.”

 

난 '개복'이란 말을 또 들으며,

생소한 면도를 경험하며,

아련하게 느껴졌던 수술이 

어느새 내 옆에 바싹 달라붙은 현실임을 느꼈다.

공포도, 좌절도, 슬픔도 같이.

 

‘도대체 배를 얼마나 열려고 가슴부터 무릎까지 털을 다 깍지?’

내 혼잣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분은 두 번째의 면도기를 집어 드셨다.

'이분 프로다!'란 생각이 들 때,

“좀 생소하고 당황되시지요? 

“……”

 

그 말과 함께 그분은 아주 능숙하게 면도를 끝내셨다.

“혹시 오늘 이발 손님은 다 끝내고 오신 거예요?”

“예?”

“구내 이발소 사장님 아니세요?”

“네?”

나중에 안 거지만, 수술 환자들을 위한 

면도 담당 직원이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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