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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11년 암 진단, 4기, 전원, 첫 번째 수술, 좌절

암삶 22-수술날 아침 그리고 수술실에서 마취가 시작되고, 4기암 폐전이, 뼈전이, 신장전절제 (2011년)

by 힐링미소 웃자 2021.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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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논리적으로 하고 싶었어.

내일 수술은 어떻게 할까?

몇 시간이나 걸릴까?

폐에 있는 암 덩어리들도 같이 하려나?

수술 후엔 항암제를 하라고 하려나?

수술하고 항암제 하면 완치되는 걸까? 

뭐 그런 생각들을...

 

 

하지만 현실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

그때 심정이란,

‘갑자기 발밑을 보니 천 길 낭떠러지가!’

그런 상태였어.

내가 불안한 상태란 걸 알기라는 하는 양

마음 깊은 곳에서 부드러우나 근심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렸어. 

“푹 자.”

“잠이 안 와. 아까 면도한 곳들이 좀 쓰라려.”

“면도?”

“어. 가슴부터 무릎까지…. 앞뒤 다.”

“어디? “

 

 

 

나의 본능은 나의 이성보다 늘 먼저 일어나는 듯했어.

“잘 잤어?”

“그저….”

“드디어 오늘 2시에 수술이네?”

“그러게.”

“우리가 C 병원에서 이곳으로 병원을 옮기려 했을 때, 

이렇게 빨리 수술할 수 있을 줄 알았겠어?”

“…….”

“이 C 교수님, 이 분이야 권위자라고 하잖아?

거기다가 서둘러 수술 날짜를 잡아주시고…. 

그러니 힘내!"

 

그날 오후로 예정된 수술에

대해 될 수 있으면 이러저러한

생각이나 추측을 하지 않으려 애썼어.

그게 별 의미가 없을뿐더러,

마음의 평정만 깰 거 같아서.

그렇게 새로운 아침을 맞았어.

머지않아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병원에

도착하셨어. 

 

그렇게

세 명이서….

하지만 난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병원에 계시는 건

그분들의 건강을 위해

안 좋을 거라 생각이 들었어.

거절하시는 부모님을 설득해서

밖에 머무르시게 했어.

더군다나 오후 2시라니

한참을 병원에 머무르셔야 하는데

70대 후반의 어르신들께는 가혹한 일이었어.

 

40 대 중반인 아들이 암이란 것도

부모들 입장에서는 

놀라고도 남을 일이지만

이미 다른 장기로 옮겨간 4기에다가,

그 장기가 폐이고,

그것도 20개가 넘는 종양들이

이미 폐에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정신이 온전할 부모님들이 얼마나 될까?

 

 

나의 이성은 병실에 머물며 오늘의

수술이 잘 진행되길 기도하는 듯했어.

난 본능이 상할까 걱정이 됐다.

요 며칠간 내 몸이 전이암 4기라는 

숨이 멎을 쇼킹한 소식과

이 병원 저 병원에 전화에다가

입원에, 수술에 지친 이성을 보듬었을 나의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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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생각을 멈추고, 논리를 좀 멈추고 쉬지 그래?”

나는 밀어내듯 스스로에게 말했어.

“그럼 그럴까?

어쨌든 아침, 새로운 날의 시작이잖아?.”

하지만 나의 이성은 그날 아침을 

여적까지의 아침, 익숙한 아침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 

나의 이성이 본능을 쫓아 막 병원을 나가려는데

갑자기 한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셨어.

그리곤,

“환자분께서는 수술실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놀란 내 본능은 엉겁결에 입에서 말이 나오게 만들었어.

“예? 2시 아니던가요?”

“수술이 앞당겨졌습니다."

이성이 앞섰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었겠지,
"어차피 할 수술, 빨리할 수 있어 다행이네요."

라고......

 

나의 본능은, 하지만, 여전히

당황하고 있는 듯 보였어.

하지만 어느새 나의 이성은 다행이라 생각하기 시작했어.

어차피 할 거라면 빨리하는 게 홀가분하고,

집도의나 수술진들도 첫 수술일 테니

좋은 몸 상태일 테고......

 

나의 그런 생각은 나중에 안 거지만

틀렸을 수도 있었어.

오후 2시에서 아침 8시로 옮겨진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야.

내가 수술을 다 마치고 나온 시간은

아마 오후 2시경이었을 거라고

나중에 시계를 흘낏 봤었다는 걸 기억한 후 알았어.

그러니까 거의 6시간을 수술실에 있었던 거야.

 

 

나의 몸은 얇은 천에 감춰진 채

이동식 침대 위에 눕혀져 

긴 복도를 따라 옮겨졌고

잠겨있던 문 2개를 통과해 

어느 실험실 같기도 하고

홀 같기도 한 큰 공간에 놓였어.

거기는 차가웠어.

몸이 으스스 떨렸어.

청색 마스크와 옷을 입은

3~4명 남녀 선생님이 보였어.

그들은 창백하고 청결한 인상이었어.

그들은 젊었어. 

그들은 건강해 보였어.

그들은 아름다웠어.

건강함은 아름다움이란 걸 그때 알았어.

그중의 한 명이 입을 열었어.

“안녕하세요?”

그중의 또 다른 이가 말했어.

“기분이 어떠세요?”

창백하고 청결한 그들에게서

따스함과 온기가 피어올랐어.

“편하게 생각하세요. 

좋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

가장 창백해 보이는 인상이 말했어,

미소와 함께.

 

 

‘아 미소란 참 좋은 거구나.’

난 다짐했어.

‘내가 수술실에서 살아있는

몸으로 나온다면

언제나 미소를 지을 거야.

그때도 그 후로도.

그래. 미소는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찬사야!’

 

이제는 그 모두가 서서히 내 몸 주위로 왔어.

그중 한 명이 입을 열었어.

“지금 특히 불편하신 점 있으신가요?”

"아니오..."

그는 그 후로 투명한 미소로

한 문장의 말을 더 내게 보내는 듯했지만, 

는 어느 미소로도 

어느 말로도

답할 수 없었어.

가 기억하는 그분의 다음 말은

“자 이제 마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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