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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18년 장애인이 되다, 유럽 여행

[암삶 80] 4기암 폐전이에 더해 뼈전이암 환자 플러스 장애인으로

by 힐링미소 웃자 2021.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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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의 종류와 내용을 불문하고, 장애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장애를 가지게 된 후부터 그분들의 불편을 몰랐던 제가 부끄러울 뿐입니다. 힘내세요!

때론 내가 아직도 살고 있는 게 기적이란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거의 매일을 그런 생각을 갖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이게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을 기적이라고 불러야 할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내가 4 기암인데도, 폐로 퍼지는 폐전이암 다리뼈로 퍼지는 골전이암으로 큰 수술을 했었음에도,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게 기적은 아니다.

기적은 그냥 내가 오늘, 모든 위기를 넘기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게 기적이다.

내가 태어난 이후로 내 곁을 스치고 갔던 위기의 시간들을 기억한다. 그 모든 것들이 기억 속에 다 저장되어 있겠지만, 대부분은 무의식의 세계에 깊숙이 숨겨져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어린 시절 큰 개울에서 멱을 감다 장마철, 불어난 저수지의 물이 우리를 빠져나온 굶주린 맹수처럼 내달려 내 몸을 사정없이 휘감고 소용돌이 속으로 데려가기도 했었고, 막 10살이 넘어 처음으로 자전거를 보고는 배우지도 못한 처지에 강한 호기심에 무작정 올라타고 비빈 페달에 내달려간 자전거가 어지러운 낭떠러지를 간신히 피하고는 돌담에 부딪혀 오른쪽 팔이 부러진 적도, 중학교 읍내 하굣길 미친 듯이 질주하던 차가 내 곁을 아슬아슬하게 스쳐가기도 했었고, 바람 거센 울산바위에서 다리를 헛디딜 뻔도 했었다, 그 아래 아스라이 소름 끼치는 아가리 벌린 지옥문 같았던 공포는 아직도 뒷덜미를 오그라들게 하지만......

아니면?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턱을 고이고 눈을 지그시 감고 하나하나를 회상해보면??
아주 많았던 생사의 기로! 그 하나하나가 잠재의식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기억에도 선한 최근의 위기들? 예를 들어 중환자실에서 몸부림치던 순간들? 아니면 항암제 휴약기에 찾아왔던 썩은 고름이 적당하게 굳어버린 모습의 전이성 골육종 이 허벅지에 있는 큰 뼈, 그 뼈 골수를 야금야금 먹어갔다는 걸 발견했을 때? CT 검사와 MRI 검사영상으로 거대한 전이암을 봤을 때?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를 순간들, 내 육체를 위협했었던...... 순간순간들.

그 모든 위협들과 공포들도 내가 #장애인신청 을 하기 위해서 거쳤던 순간들보다 더 위협적이지도 절망적이지도 모멸적이지도 않았다.

내 다리 한 토막이 아래위 몇 cm만 남겨놓고 잘려나갔다는 걸 발견했을 때도, 그 뼈가 내 끊긴 다리의 지름의 반밖에 안 된다는 걸 알아채고는, 어린아이? 내지는 가녀린 몸의 그 누구? 그 기증자님을 상상하며 그 생전의 모습과 영원의 세계로 떠났을 때의 모습을 형상해 내려고 애썼을 때도...... 영영 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영구적인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그 어떤 순간들도 내가 #장애인신청서 를 낼 때와 비교할 수 없었다. 장애인 신청을 하기 위해서 서류를 교부받고, 사진을 찍고, 제출하고, 소파에 잠시 앉아있었을 때,

두 다리로 걸으며 바삐 동사무소로 들어오고, 바쁜 듯 달려 나가는 다른 민원인들을 보며, 그들의 다리와 내 다리를 번갈아 보았던 때의 좌절감과 인간적인 모멸감을 넘을 수는 없었다.

“xxx 씨! 여기로 와 보세요!”
복지담당 공무원이 상념에 잠겨있던 넋 나간 모습의 절름발이 내 이름을 천둥소리 같은 목소리로 부르고 있었고, 주변의 모든 민원인들은 나와 내 몸 옆에서 쉬고 있던 두 개의 목발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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