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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22년 말, 폐전이 뼈전이 삶

다리뼈 절제 후 이식 수술 수술실 풍경

by 힐링미소 웃자 2022.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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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수술대기실
2. 긍정의 미덕을 생각하면서
3. 행복해지기 위한 비교 방법
4. 수술실 입장
5. 수술 후

 

수술대기실: 수술대기실에도 출입문이 있었다. 이송요원이 그 안쪽까지 날 밀고 왔다. 그리고는 날 인수인계했다. 이송요원께 감사의 말씀을 드렸다. 그는 나의 수술이 잘 되길 바란다는 덕담을 건넸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듯한 속삭임들이 배려가 되고 따뜻한 세상을 만든다. 내 생각에 크기와 정도만 다를 뿐 다 평등하다. 사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정치학적, 사회학적 또는 경제학적 개념의 평등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내 주변에 있는 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는 뜻이다.

 

다리뼈 절제 후 이식 수술에 앞서 수술대기실로 옮겨진 나는 대략 20분 정도 수술대기실에 머물렀다. 시계를 보니 아직 10:30분은 안된 듯했다. 실내는 다소간 서늘한 온도였다. 아니면 내가 속옷 안 입고 한쪽이 터진 수술용 환자복을 입고 있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얇은 걸 덮고 있었다. 하지만 오고 가는 의료진들은 모두 반팔이었다. 내 옆으로 어느 분이 들어오셨다. 이어서 수술 내용을 말하는 게 들렸다. 좀 끔찍한 내용이었다. 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긍정의 미덕: 나의 처지를 남들의 처지와 비교할 때 조심할 게 있다. 나보다 더 좋은 환경에 있는 경우와 비교하면 안 된다. 이건 내가 12년 동안에 걸쳐 얻은 지혜다. '불가능하다'라는 단어와 '그럴 필요가 없다' 또는 '그럴 의미가 없다'라는 이유에서 그렇다. 내가 나보다 더 좋게 느껴지는 케이스와 비교하는 건 일종의 스트레스다. 왜 내가 처한 상황을 부정하는 것이니까. 그건 긍정과는 아주 먼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곧 긍정의 참 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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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비교의 방법: 남들의 처지와 때론 비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평등... 그런 것들은 비교를 통한 정의를  형량 하는 일이다. 그러나 나처럼 생명과 관련해서는 평등은 위험할 수도 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내가 가진 인식의 폭과 깊이를 초월한다. 뇌세포만 해도 도대체 몇 개며. 간세포는 또 몇이며, 그밖에 내 몸을 이루는 걸 내가 어찌 셀 수나 있을까? 게다가 자라온 물리적, 정신적 환경은 또 얼마나 다를 것이며 음식은 또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 먹거리를 재배하는 데 필요한 토양과 햇빛과 대기와 바람 등 주변의 물리적 환경 또한 얼마나 광활할까!

 

그러니까 난 나름의 기준 또는 계측기가 내 안에 있다.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계측기. 나는 수술할 수 없는 환자보다 행운아다. 난 다리가 한쪽 밖에 안 남았는데 그곳에마저 암이 전이된 경우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다. 난 1차 항암제를 10년 가까이 쓰고 있으며 아직 내성이 전면적이지 않다. 2차 항암제마저 써버려서 이제는 엄청난 돈을 항암제 구입에 써야 하는 경우보다 좋은 케이스다. 아직 2차와 3차 약 그리고 임상용 항암제를 쓸 수 있는 환자에 해당한다.

 

 

행복해지기 위한 비교 방법:  난 수술대기실에 머무르는 동안 실려오는 다른 환우들을 보며 위의 것들을 다시 생각해 봤다. 내가 얼마나 행운아인지에 대해서. 난 비교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또는 그래야만 할 때는 비교한다. 그러나 그것에도 나만의 원칙이 있는데, 그건 나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나보다 경우의 수가 적은 경우들과 비교한다. 예를 들어 나보다 돈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경우와 나를 비교하지는 않는다. 나보다 더 젊은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지도 않는다. 굳이 비교를 해야 한다면 말이다. 

 

 

수술실 풍경: 나는 위와 같은 생각들을 다시 해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행운아인지를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그때 또 다른 의료진이 내게 왔다. 그러니까 이제는 내 바퀴 달린 수술용 침대 좌우로 의료진이 서게 된 것이다. 다음 단계는 뻔하다.

 

"자, 이제 수술실로 이동하겠습니다."

 

수술실 정 중앙에 내 침대는 놓였다. 가벼운 인사가 오갔다. 아까 수술대기실에서 뵀던 수술간호사님, 또 다른 간호사님, 그리고 보조의사 선생님 두 분이 보이셨다. 아직 집도의 교수님께서는 도착하시기 전인 듯했다. 보조의 중 선임이신 듯한 분과 몇 마디 인사를 주고받았다. 잘 될 거라는 말과 위로의 말들이 오갔다. 난 마취 잘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선생님들 마취 잘들 부탁드립니다."

"왜요?"

"영화에 보니 덜 되면 뛰쳐나가더라고요. 전 게다가 두 번째 동일 부위라서 두 배는 빠르게 뛰쳐나갈 겁니다요, 아마."

그러자 하하 호호 웃고들 난리였다.

 

너무도 춥게 느껴졌던 수술실이 한바탕 웃고 나니 이제는 상온처럼 느껴졌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엔 허벅지 측면을 아마 꽤나 찢겠구나. 그럼 몇 바늘이나 꿰맬까..."

등등의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자 고개를 똑바로 하시고요. 이걸 입에 대겠습니다."

그러면서 선임 보조의인 듯한 선생님이 숫자를 말하기 시작했다.
"1.5...1.6..."

거기까지만 들렸다. 그리고 내 의식은 사라졌다.

 

수술 후: 난 이후 덜컹거리는 소리를 어렴풋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청력이 좀 더 돌아오는 걸 느꼈다. 난 시간을 물어봤다. 오후 5:30분이라고 했다. 회복실로는 대략 4시 16분 전후에 옮겨졌다고 했다. 그러니까 대략 회복실에서는 1시간 넘게 있었던 듯했다. 수술시간은 대략 6시간 정도? 예상보다는 좀 더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중환자실 대신에 아침까지 머물렀던 병실로 돌아왔다.

 

 

https://wifipw.tistory.com/entry/알삶-71-다리뼈-절단-후-냉동실-같았던-회복실-그리고-움직이지-않는-다리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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