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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지인의 유방암, 갑상선암

암이 폐로 전이되는 이유, 유방암과 갑상선 암환자의 항암제 거부의 결과- 4기암과의 동행, 2019 가을

by 힐링미소 웃자 2021.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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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녀와 내가 공통점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엄청난 차이점도 많자.

 

 

그녀에겐 갑상선이 없지만 나에겐 있다는 것,

그녀는 두 가지 암을 갖고 있지만 나는 아직은 한 가지 암,

그녀는 자연스러운 실버 모발이지만 나는 항암제 변색 실버 헤어,

그녀는 항암제를 거부하고 있지만 나는 쓰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녀는 부자인 반면 나는 가난하다는 것,

그녀는 숲 속에서 살지만 난 도심 한가운데에서 산다는 것,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숲 속 길을 따라 쭉 올라가지만 나는 도심 속 길바닥에서 쭉 올라와 우회전해서

달동네 비슷 꼭대기에 산다는 것......

 

어쨌든...

그녀는 꽤 심각한 단계의 갑상선암을 갖고 있었다 했다.

의사의 조언은 “무조건 떼내야 한다!”였다고 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떼어냈고, 10년이 다 되도록 호르몬제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나의 경우는 다르다.

갑상선에 이상이 있는 건 그녀와 매한가지지만 내용은 다르다.

갑상선암 때문이 아니다.

전이성(=진행성) 투명 신세포암의 치료를 위해 시작했던 오랜 기간의 항암제, 표적치료제=보트리엔트(파조파닙) 복용과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갑상선 저하증이 나타났다고 했다.

담당 주치의는 항암제를 중단하면 자연스럽게 갑상선 호르몬이 다시 분비되기 시작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분비계 담당 교수는,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라며,

주치의의 말을 부정했다. 

 

나는 암 투병 과정에서 그런 아이러니나 모순을 의외로 많이 경험해오고 있다.

암의 발생, 진화, 발전, 전이, 4 기암, 수술로 이어지는 과정이 끝난 후부터 듣기 시작했던 말들도 역시 그랬다.

주치의와의 대화 속에서 내가 발견한 아이러니는 이랬다.

 

“자, 이제는 항암제를 시작해 봅시다.”

“싫어요.”

“안 드시면 언제까지 사실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합니다.”

“그래요?”

“그러니 드십시다.”

“그럼 낫나요?”

“글쎄 그런 경우는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왜요?”

“상당히 진행된 다발성 전이암이십니다.”

......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흐른 어느 날,

“갑상선 수치가 최저치입니다.”

“그럼?”

“의뢰해드릴 테니 가셔서 치료하시면 됩니다.”

“이 갑상선 호르몬,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약 끊으면 다시 나옵니다.”

“전에 말씀하실 땐... 약 안 먹으면 머잖아 죽는 다고 하셨는데......”

“......”

“약을 끊으면 호르몬이 다시 나올 테니 걱정 말라하시고, 전에는 항암약 안 먹으면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셨으니......’

“......”

 

그런데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꼭 부정적이기만 한 걸까?

 

셰리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은 후 거의 모든 의사로부터 항암제를 권유받았다 했다.

심지의 프랭크 딸로부터도 그런 조언을 받았다 했다.

그의 딸은 존스 홉킨즈 대학의 폐암 관련 랩을 운영하고 있는 책임자라고 한다.

사실 암 3기라고 하면 원발암이 주변 장기로 퍼지기 시작하는 단계라고 하니, 셰리의 경우에도 그런 일이 벌어졌고, 가까운 흉벽을 침범했을뿐더러 림프절 전이도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라 했다.

폐로 가는 건 시간문제인 셈이었다.

 

사실 거의 모든 암은 우선 폐로 간다고 한다.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몸 안에 있는 대부분의 피는 당연히 폐를 거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암세포는 혈액의 흐름을 타고 다니니, 먼데로 가려면 혈류를 따라야 하고, 혈류는 피의 흐름이고, 모든 피는 폐에서 산소를 받아야 하니 폐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거기에서 암세포들이 당연히 정착하게 될 것이니, 대부분의 원발암의 1차 식민지는 폐가 될 수밖에 없다는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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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케이스의 전형적인 당사자이니까.

그래서 프랭크로부터 셰리의 유방암이 흉벽을 통과한 단계라는 얘기를 몇 년 전에 들었을 때 폐로 전이될 걸 걱정하는 답장을 했었다. 

프랭크가 또 답장하길,

“나와 우리 딸도 항암제 복용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어.”

였었다.

그리고 그러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물론 그 후로도,

“셰리가 약을 안 쓰려고 해 보통 걱정이 아니다.”

라는 말을 간간히 들었었지만.

 

하지만 직접 만나 본 그녀는 의외로 건강해 보였다.

그보다도 더 아이라니 한 것은 더 이상 유방암이 진행하고 있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암덩어리들이 더 작아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검사 결과를 받아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 아이러니일까?

셰리가 유방암 진단 당시 약을 안 쓰면 머잖아 4기로 진행할 거라 했는데,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만약 그 약들을 썼었더라면 더 빨리 악화되었을 거라고 확신한다는 말이었는데, 참 역설이었다.

 

양쪽 가슴에 크게 생긴 유방암을 그녀는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그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까?

 

그녀의 대답은 내게 영감이었다.

 

물론 그녀도, “

넌 내게 큰 영감을 주고 있어. 넌 2013년에 한국에서 주요한 병원 중 한 곳의 저명한 의사로부터 최대 48개월을 진단받았다고 했잖아! 그때 프랭크도 같이 그 병원에 갔었고,  그래서 그가 돌아와서 너와 함께 같은 자리에서 들었던 그 의사분의 진단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었지. 그런데... 넌 지금 12시간짜리 비행기 한 편, 그리고 거의 2시간짜리 또 다른 비행기를 한 편을 타고 와서, 절뚝거리는 다리로, 그 먼 시간을 보내고 온 날 자지도 않고 여기 우리 집에서 그와 와인 건배를 하고 있었잖아! 넌 2017년 연말에 말기암으로 세상을 떴어야 했잖아?”

 

셰리의 그런 격려의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사실 예외 없는 법칙이 있었던가?

그렇다고 다 무조건 예외이고, 무조건 행운 탓인가?

만약 그녀가 암을 진단받을 당시의 생활습관, 식습관, 사고방식을 고집했었다면?

그녀의 그런 사고방식, 식습관, 생활방식이란 게 암이 생기고 살기에 딱 좋았기 때문이었을 텐데, 그걸, 암이 그토록 살기 좋은 토양을 유지한 채 암이 쇠약해지기를 바랄 수가 있었을까?

그렇다면 암 진단 당시와 정반대의 식습관, 생활방식,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암이 제일 싫어하는 조건 말이다.

그렇다면 셰리는 뭘 어땠을까?”

 

 

그녀의 이어지는 대답과 내 눈에 비친 그녀의 생활과 자세가 어떻게 그녀가 포악한 암세포들과 암덩어리들의 예정된 과정을 멈추게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증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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