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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23년 4기암과 13년째

전이 관련, 원발암 관련 2023년 마지막 진료 4: 항암제 3개월 휴약 처방, 밝은 면을 보자

by 힐링미소 웃자 202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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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외과 협진 의뢰 원발암 진료과 방문 

다음날 바리바리 집을 나섰다. 원발암 진료과 주치의 교수님을 뵙기 위해서였다. 

평균 30분에서 90분까지 ‘진료 지연 중’이라는 노티스가 일상이 돼버린 교수님 진료실,

채 반달도 안 돼 다시 나타난 내 존재가 교수님의 스케줄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다른 환우분들의  진료받을 기회를 뺏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부담을 안은 채 병원을 향했다.

 

 

도착접수기 앞에서 접수증을 뽑자니 센터 평소 구경하기 힘든 선임 간호사샘께서 안쪽에서 반갑게 나오셨다. 정형외과에서 협진 의뢰 들어왔다는 걸 알고 있다는 말씀과 함께 새로운 분위기가 어떻냐고 물었다. 스탭들 중에서 왕 수석이신 이분은 복장부터 늘 다르다.  그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 후, 새로운 분위기에 대해서 답했다. 파격적이며 신선하고  답했다.  중소형 규모 병원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축하드린다는 말씀도 드렸다. 

안으로 들어오니 원발암 관련 직전 진료 때와는 달라진 진료실 풍경이었다. 진료실 앞에는 더 이상 벤치들이 없었다.  대신에 원무과 앞 같은 분위기의 대기 공간이 별도로 마련한 모습이었다. 대기자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들을 위해 교수님들이 있는 구조가 아닌 병원을 위해 환자들이 있는 구조로 변했다. 진료실 앞에 있던 대기용 위자가 사라진 공간, 그러니 전광판에 번호가 뜨면 순서에 맞춰 진료실 앞에서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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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그 왕 간호사 쎔이 내게 다시 오셨다. 

“직접 돌아보시니 어떠세요?”

그분의 미소 머금은 질문에 난 느꼈던 내용을 말씀드렸다. 특히 전광판 앞의 크고 기다란 대기공간의 벤치 배치가 너무 촘촘하다고 피드백했다. 그 결과로 연세 드신 환우분들의 이동에 불편함이 있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니 벤치 간격을 넓히고, 벽과 벤치 간 틈도 더 벌리는 게 환자분들의 편의를 위해서나 병원 내 낙상사고 등 등을 방지하기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저도 지난 10여 일 간 둘러보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쭤보는 겁니다. 우리 센터에 10년 넘게 오시고 계시니 제가 여쭤보기에 딱이시니까요. 반영해야겠네요.”

그러면서 내가 진료실 앞까지 이동하는 동안 쭉 따라오시면서 새로 생긴 룸들의 배치와 편의성에 대해서도 물어보셨다. 여기로 옮긴 후 공간들은 신선했다. 이를테면 처음으로 내원한 분들을 위한 공간, 진료 상담, 전원상담실, 항암 코디실… 난 나름 최선을 다해서 답했다. 항암 코디실은 물론 항암 코디에 대해서도 난 피드백했다.

그러면서 난 한 마디 더했다.

“오늘도 역시 목발을 한 환자는 저 혼자뿐이네요. 목발에 몸을 기댄 채 기다리고 있네요. 다리 한쪽은 학다리 하면서요. 안 좋은 의미에서의 군계일학? 확실한 존재감? 진료실 앞이 제 존재로 조금은 더 특별해지겠네요. 하하하”

“아이 왜 그러세요? 목발이나 지팡이 환자분들을 위한 보조 의자 같은 게 필요하다는 말씀이실까요?”

“아이고, 선생님… 어디 목발 환자가 그리 많던가요? 올해도 전 한 분도 본 적이 없는걸요. 괘념치 마셔요.”

“하하하. 불편한 점 있으시면 저나 간호사들을 찾아주세요.”

“다들 바쁘신대요, 뭐. 감사합니다.”

 

 

 

 

원발암 진료과 주치의 교수님의 돌발적 처방

대화를 하다 보니 내 차례가 됐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교수님께서는, 다행스럽게도, 웃는 얼굴로 날 맞아주셨다. 역시 정형외과 교수님의 메모를 읽어보셨다고 하셨다. 난 며칠 되지도 안아서... 바쁜 교수님을 귀찮게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고, 교수님은 손사래를 치셨다. 그러면서 흉부와 복부 CT사진들, 다리 MRI 등을 두 개의 모니터에 띄우시면서, 5분 정도 바쁘게 리뷰하셨다. 난 대략 한 달 정도 휴약 처방이 내려지지 않을까 짐작했다. 하지만…

“항암제를 먹으면서 다리를 현재처럼 놔둔다면… 스크루들이 부러질 가능성이 명약관화하고… 휴약에 대한 의견을 구하신다는…그런 요지네요.”

“네. 어제 영상 보시더니 갑작스럽게…”

“네. 한 3개월 정도 휴약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교수님... 처방 주시는 대로 해야지요. 항상 잘 리딩해주시는대요. 하하”

“제가 해드리는 게 뭐 있나요! 그런데 정형외과는 언제 다시 가시기로?”

“내년 6월요.”

“내년 6월요?”

“네.”

“그래요? 그럼 3개월 후  사진 찍어보고… 후에 결과에 따라서 협의해 봅시다. “

 

항암제 휴약의 리스크: 암 덩어리들은 다시 극성을 부릴까

난 나가기 전 속 깊은 딜레마를 솔직하게 여쭙고 싶었다.

“그런데, 교수님!”

“네.”

“혹 3개월이나 휴약 하면… 내성이 생기거나… 암 덩어리들이 갑자기 커지거나… 그럴 가능성도 있으려나요?”

“아!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네…”

“그럼 연말 잘 보내시고요.”

“네. 교수님도요. 그리고 오늘, 이렇게 바쁘신데도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하하 잘 살펴가세요~”

 

원발암 진료실을 나오며

난 가벼운 마음으로 진료실을 나왔다. 다음 진료를 위해 데스크로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그냥 귀가해도 된다고 했다. 센터를 나가기 전 저쪽에서 스텝들과 대화에 푹 빠진 아까 그 센터 선임간호사께 손을 흔들었다. 그분은 일행을 뒤로하고 내게로 오셨다. 

"오늘 어떻게 진료 잘 보셨어요?"

"네. 덕분에요."

"아까... 좋은 제안 감사해요."

"뭘요, 선생님. 그나저나 선생님이 여기저기 다니시니 모든 시선이 다 선생님께로 가네요. 돋보이셔서..."

그 선생님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톡톡 두드렸다. 그리곤,

"3개월 후엔 뼈 다 붙길 빌게요~"

 

 

나란 존재는 아무 것도 아니면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

내가 없어도 세상은 분명 돌아간다. 그건 마치 중 2 때 흘연히 세상을 떠나신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 없는 세상은 우리 가족의 끝일 거라는 내 어린 생각과 예측과는 별개로, 우리 일족의 삶이 계속됐던 것과도 같이 말이다. 

그러니 난 안다. 나 없는 세상은 어떻게든 변할 거라는 것, 나 있는 세상과 나 없는 세상으로. 그건 마치 할아버지 없이도 가족사는 계속됐지만 질적으로 변화가 있었듯이 말이다. 

할아버지 장례식 후 그토록 큰 집엔 할머니와 나만 덩그러니 남았었다. 할머니께서는 입에 술을 대기 시작하셨고, 난 자퇴서를 제출하러 교무실로 향했다. 그 큰 농사체를 누군가는 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슬픈 가족사지만... 할머니는 유배당하셨고, 난 내 자퇴서를 받아 든 선생님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내 유랑 역사의 시작이었다.   

 

걱정은 스스로 만드는 것

거두절미... 인간은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한 번도 미리 살아보지 못한 예측불허의 미래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이 있다고 한다. 안 올 가능성이 더 큰 부정적인 일들-지진, 폭우, 싸움, 약탈, 살인, 전쟁 등과 같은-에 대비하는 경향이 더 크다고 한다. 저장, 비축, 예금, 블록체인의 기원이 아닐까 한다.

노심초사하면서 그런 불행과 위험에 대비하건만 그런 일이 안 일어난다 해도 여전히 걱정과 긴장 속에서 산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언젠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꼭 한 번은 올, 죽음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학이나 종교의 기원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미래라는 미지의 시간은 즐거운 모험, 기쁜 만남, 설렘등과 같은 긍정적인 것들이 더 많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행복한 쾌락 대신에 가상의 불안과 걱정을 선택하는 경향이 더 크다고 한다. 그러니 잠자리에 들기 전부터 다음 하루를 대비한다면서 걱정으로 마무리 하고, 눈 뜨기가 무섭게 긴장과 민감함으로 하루를 시작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 삶 또한 진단 전까지 그랬었다. 그리고 진단 후 일정기간까지도 그랬었다. 그러나 암이 더 커지고, 더 퍼진다며 약 처방이 불필요하다는 예전 교수님, 자타 국내 최고의 원발암 전문가, 의 말씀에 죽음이 목전에 왔다고 느끼면서 질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 하루가 감사했다고, 눈 뜨면서 펼쳐지는 새벽녘, 새로운 하루가 얼마나 설레고 벅찬 오늘이냐고!

나도 역시 92개 원소로 이루어진 존재들인 ‘그들’ 중의  하나로서 약을 끊으면 예상할  있는  가지  지류 중에서 기쁨의 물이 흐르는 환희의 강줄기 대신에 하필 걱정과 불안이 흐르는 부정의 강줄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약을 끊으면 뼈가 자라나서 이어지고, 피부 부작용이 완화되고, 갑상선 호르몬이 복구되고, 하루 7,8번의 설사가 멈추고, 배가 편안해지고, 체중을 회복할 수 있다. 설사가 멈추면 쇼핑도, 여행도 불안 없이 즐길 수도 있다. 아주 행복하고 쿨한 미래다.

약을 끊으면 양쪽 폐 속 암 덩어리들이 커질 수 있고, 딴 데로 전이가 이뤄질 수 있고, 먹다 안 먹다 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항암제 내성, 그로 인한 2차 약 효과 없음으로 항암제가 주는 이점을 상실할 수도 있다. 걱정과 불안으로 채워진 미래다.

그런데 그 둘, 긍정적인 면과 불안하고 부정적인 면, 은 동전의 양면이다. 언제나 어깨를 같이 하고 다닌다. 이건 운명이다.

그 둘... 선택은 나의 몫이다.

4기 진행성 전이암 환자의 정신 항암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어도 거기에 계셨고, 내 형상은 부서지지만 없어지는 게 아니다. 어차피 내가 죽으면 육체는 92개의 원소, 물질로 나뉘어 먼지가 되어, 물이 되어, 꽃이 되어, 향기가 되어, 바람이 되어, 이 우주 안에 머물 것이다.

내 머릿속, 죽음은 사라지는 게 아니다. 현생에서야 뭉쳐서 내 형상을 이루고 있을 뿐. 다시 해체되는 건... 시간의 문제일 뿐.... 그리고 그저 해체될 뿐...... 그때까지 밟은 면, 좋은 순간들 속에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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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 관련 마지막 진료 4: 정형외과 교수님의 극약 처방-한동안 항암제를 멈추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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