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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17년, 항암 딜레마, 다리뼈와 폐암 커짐

[암삶 77] 더 커진 암 더 커진 긍정과 더 적극적인 삶 그리고 장애인 신청

by 힐링미소 웃자 2021.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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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 삶을,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했던 말았든... 2017년 막바지 여름, 난 기진맥진한 상태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주치의께 극심한 항암제 부작용에서 비롯된 일상생활의 고충을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교수님은 내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그의 앞에 놓인 2대의 컴퓨터 모니터 속에는 7일 전에 받았던 각종 검사 수치들이 떠 있었다.

 

그 교수님은 여전히 목발을 하고 다니는 내 모습을 상념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다리 상태가 어떤지와 정형외과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를 물었다. 여전히 뼈가 붙지 않고 있다고 하더란 말과 아마 항암제의 신생혈관 억제작용으로 인한 이유 밖에는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는 말씀을 전해드렸다. 그러면서 정형외과 쪽에서는 다시 한번 부탁을 하더란 말도 전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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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형외과에서는 더 늦기 전에 절단된 쪽에서 뼈가 자랄 수 있도록 항암제를 중단해보자고 제의했었다. 하지만 나의 주치의께서는 그쪽 의견에 완곡한 어법으로 반대했던 게 사실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나의 주치의의 동의 없이는 그 누구도 항암제를 중단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저간의 사정을 다 들은 주치의는,

“그렇게 합시다. 지금 부작용도 심하게 나타나고 있고요. 반면에 커졌던 암 덩어리들의 볼륨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또 다리 문제도…. 무시할 수 없고요.”

라는 말과 함께 여전히 정기적인 추적검사는 필수라는 당부의 말씀도 덧붙였다.

 

그렇게 항암제 없는, 투병 아닌 투병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눈 내리는 겨울이 돌아왔다. 2017년이 그렇게 가나보다 했다. 하지만 한쪽 다리의 상태는 여전히 기대보다 훨씬 못 미치는 상태였다. 

 

 

그렇게 좋아하던 등산도 할 수 없었다. 등산은커녕 동네 야산을 오르는 것조차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내 다리와 무릎의 장애는 심한 상태였다. 달리기도 불가능했다. 목발 없이는 걷는 것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2개의 목발에만 의지할 수는 없었다.

 

눈이 심하게 내리던 어느 날, 목발에 의지한 채 길을 가다 난 넘어졌다. 사실은 그렇게 넘어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장애.... 이제는 그 장애를 공식화해야겠다는 결심이 서기 시작했다. 장애인! 내가 이젠 그걸 피해 갈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장애를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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