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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17년, 항암 딜레마, 다리뼈와 폐암 커짐

[암삶 78] 내 영혼의 시작 고향에서 들려온 소식_불행은 혼자오지 않는다는 말과 집안 어른의 갑작스런 상(2017)

by 힐링미소 웃자 2021.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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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신청을 결심했건 안 했건 세상은 참으로 무심하다. 아니 세상이 아니다. 시간이, 세월이 그렇다.
무더위가 찾아왔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날씨였다. 달력은 여름의 정점을 지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습도도 높아지고 있었다.

그 습도와 더위 속에서 난 여전히 한쪽 다리를 거의 미라 수준까지 유지하고 있어야 했다. 발끝에서 시작해서 위를 향해 올라간 깁스는 앞으로는 사타구니, 뒤로는 엉덩이의 절반까지 가서야 끝났다.

힘겨움은 거기서 끝나지는 않았다. 죽은 사람의 뼈를 이식한 후 금속 지지대와 금속 나사를 박아 고정한 다리가 움직여져 조금이라도 삐뚤어지면 끝장이라고, 내 다리를 처치하신 교수님은 말씀하셨었다. 그러니 그쪽 다리 움직일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라고도 하셨었는데…. 그 정도는 그래도 어떻게 해볼 만했다.

그 교수님은 다른 한 가지를 더 추가하셨었다. 그 뼈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꼼짝 말고 누워만 있어야 한다는 처방을 내리셨다. 아니면 스크루가 부러질 수도 있고, 그러면 (전혀 행복해할 수 없는 :( ) 재수술이라며! 난 다른 도리가 없었다. 온종일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7월이 가고 8월로 접어들었지만…. 변한 건 없었다.

그때 나는 온전한 바지를 입을 수 있는 다리 형편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트렁크를 사다가 한쪽을 허리 밴드 바로 밑까지 텄다. 그게 다였다. 그래도 병원에서는 바지 한쪽 바깥쪽에 매듭을 할 수 있는 걸 입고 있어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호강한 처지였었단 생각이 들기까지 했었다.

문제는 고약한 한 가지가 여름 내내 날 아주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소독과 붕대를 교환해주기 위해서 종종 들르셨던 방문간호사님의 눈도 그것에 비하면 무서운 게 아니었다. 심지어 다리 한쪽을 뻣뻣이 한 채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는 것조차도 그것에 비하면 가벼운 구속이었다.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 모두에서 솟구쳐 나오는 듯, 쉼 없이 나오는 뜨거운 땀은 범벅 크림이 되어 온몸을 코팅하고 있었다. 콧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단내와 피부에 절어 붙은 땀이 합쳐져서 내는 고약한 냄새는, 나도 과연 존엄한 인간일까? 하는 질문을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에게 할 수밖에 없는 지경까지 갔었다.

그런 생활을 여름이 다 갈 때까지 하고 있었는데, 내가 내 생에서 경험했던 가장 긴 여름이었고, 가장 잔인한 더위였으며, 가장 추악한 냄새를 풍겼던 내 몸으로 기억되고 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집안 어른 중에서 아주 가까운 분이 나와 같은 병마의 침입을 받으셨다는 전화 연락을 부모님으로부터 듣게 되었을뿐더러, 그분의 자녀들로부터 치료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는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예로부터 이르기를,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라고 하더니...


슬픈 일은 언제건 생긴다. 살면서 기쁘고 행복한 일들만 있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만은...만남은 헤어짐의 시작이라고도 하고, 헤어져야 새로운 만남이 온다며, 이별은 만남의 씨앗이라고도 한다. 생로병사, 희노애락은 아침이 있으면 저녁이 있는 것과 같아 피랗 수 없는 그 무엇인가 보다.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여름날, 그렇게 소식이 날아왔다. 내 영혼의 자궁, 고향으로부터...

부모님께서는 급한 음성으로 전화를 주셨다.
“친척분 중에서... 너랑 같은 암을 진단받으셨다.”
“예?”
그분은 나와 아주 가까운 분이셨다. 나와 아주 많은 공통점을 가졌을 DNA가 아마도 그분의 피에는 흐르고 있었으리라...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가지 점에서 더 그랬다. 하나는, 우연의 일치였으리라고 생각하고 싶게 만들었던, 유전의 문제! 이미 공격을 당한 나와 그분의 문제가 아닌, 우리 집안 중의 또 다른 누군가가 언제 어떻게든 당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또 다른 하나는, 거기에는 나의 자식도 포함될 확률이 있는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그 전화는 나에게 기왕의 암 투병에 더해서, 또 다른 고민을 안겨다 주었다.

많은 고민이 태풍철 제주도 해안에 몰라치는 억센 파도처럼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기 시작했다.

나는 과학을 믿고 싶지만, 통계를 믿고 싶지만... 사실은 ‘둘 중의 하나’를 더 중시하는 편이다. 지독한 도그마다. ㅠㅠ

사실 내가 가진 암이, 가령 유전적 요인이 10%라고 가정한다면, 내가 그 10% 안에 드느냐 안 드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그래서... 10% 밖에 안 되니까 내 2세들은 거의 암에 걸릴 확률이 없어!라고 안심할 문제도 아니고, 유전적 요인이 몇 %이냐?의 문제도 아니다.
‘그렇거나 안 그렇거나’다, 나에겐.

마치 ‘4기 전이암의 5년 생존율은 10% 전후이고, 10년 생존율은 거의 바닥이다!” 한들, 이건 의사, 제약사, 연구자, 통계학자 등, 그들을 위한 통계일 뿐... 내게는 죽느냐? 사는 냐?의 1/2의 ‘경우의 수’뿐!

최근 10년간 신장 암의 경우, 환자는 4배가 넘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암 중 겨우 몇 % 가 안 되면서도... 통계의 치명적 ‘홀림’효과다. 일종의 사기? 숫자의 ‘유희’?

“그런데, 그 어르신이... 막 온몸으로 퍼져서... 막 가족, 친척들이 난리가 아니란다.”
“그래요?”
“그래서 거기 자식들이 너한테 전화할 건데,”
“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뭐가요?”
“네 전화번호를 달라는데, 줘얄찌...”
“드리세요.”
“그렇잖아도... 너 다리 수술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다는 얘기도 차마 못 하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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