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암 진단 후부터
멍 때리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진단 직후엔 할 말을 잃어 멍 때렸고,
예후가 불량하다는 교수님들의
진단을 듣고는
할 말이 없어 멍 때렸다.
그러다
암에 대해 좀 알게 되면서
내가 평균보다 더 살고 있다는 걸
알면서
들키기 싫어 멍 때렸다.
내가 멍 때릴 때는 장소를 고른다.
멍 때릴 땐,
말을 안 하거나,
‘아~아~’ 나 ‘멋있다, 좋다’와 같은
몇 안 되는 단어를 반복적,
아니면 어쩌다 한 번,
나지막한 소리로 내기에,
옆에 아무도 없는 장소를 고른다.
그리고 되도록
옆에 아무도 없는 곳을 고른다.
아무도 내게 말 걸 일 없는
장소를 고른다.
뭐, 부담없는 이라면,
옆에 있어도 좋을지 모르겠다.
말은 관계를 위해서나
의사소통을 위해서나
적을수록 좋다는 생각에서...
이해보다는
오해를 불러오는 게
말이라는 경험에서...
굳이 말을 하려면 가벼운 농담이나
낮은 목소리의
단문이 좋을 듯하기도 하고…
나무에 기대거나
그루터기에 앉는다.
아니면 벤치에 앉는다.
아니면 석양을 보고 선다.
바람이 불면
노출된 몸뚱이 모든 부위로 느낀다.
노여움이 일렁이면
얼굴에 닿는 바람은 더운 바람이다.
마음이 차분하면
겨드랑이를 스치는 바람은
시원하다.
새소리, 바닷소리를 듣는다.
나뭇가지가 스치는 소리도 좋다.
나를 스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맞이한다.
나의
판단을 멈춘다.
생각을 멈춘다.
특히 생각은 때론 위험하다.
매번 느낌을 생각으로 거르고,
말로 표현하려 애쓰는
지인들을 본다.
또 쉬지 않고
생각하고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지인들을 본다.
하루에 한 시간?
아니면 두 시간?
아니면 아침에 한 시간?
그리고 저녁에 또 한 시간?
아니면 하루에 세 번,
그리고 각각 한 시간씩?
아니면 더 자주?
그렇게 생각을 멈추고,
말을 멈추고...
난 그렇게 멍 때린다.
때론 눈을 감는다.
때론 눈을 뜬다.
때론 지긋이 뜬다...
의미를 부여 않고
판단을 멈추고
생각을 멈춘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호흡이 부드러워진다.
맥박이 느려진다.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혈압도 내려간다.
근육의 긴장도 풀린다.
두려움도,
화도,
노여움도 녹는다.
피곤함도 사라진다...
생각도
말도
나를 괴롭히고
주변에 스트레스를 주고
그러는 것이라면…
그러면 안 하는 게 나으리라.
생각도 멈추고,
입도 닫고
그냥 멍 때리며
명상에 들어가는 게
그나마
나를 위하고,
신세 지고 있는 주변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일이리라
나란 존재가
내 옆에 있는,
주변에 있는
존재들 보다
얼마나 중하고, 우월하고, 잘 나고
대단하길래,
그들에게
방해가 되고,
짐이 되고,
골칫거리가 된단 말인가!
그들과 내가
똑같이 중하고 귀하기에,
그러니 어느 한 편이
부담이 되면
방해가 되면
안 되기에...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자신이 없으면
좋은 사람이
옆에 있길 바라면
안 되기에…
때로는 한동안
하루에도 몇 번이고
생각을 멈추고
말을 멈추고
그게
날 위하고,
날 위하는 그들을
위하고...
내가 4기암 진단 후
11년째 중반을 넘기는
또 다른
이유일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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