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직경 1cm는,
의사들이 '이건 암이다.'라고
의심할 수 있는 크기입니다."
"그렇군요."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만약 암세포가 1억 개나 5000만 개
뭐 그런 숫자라면
MRI나 CT에서 못 잡아낼 수도 있다는..."
"그렇게 심각한 숫자의 암세포가 있는데도요?"
"그러니 수천 개나 수 만개의 암세포가 있다 해도,
별의별 검사를 다 해도 암이 없는
건강한 상태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왜요?"
"그런 정도의 숫자로는 무슨 특별한 전조증상이
나타날 정도의 암덩어리 크기가 아니니까요."
"제가 가졌던 15cm의 암덩어리는...?"
"환자분 건
정말로 어마어마한 크기였던 겁니다.
어쨌거나 지금 누군가의 몸에
수 천 개나 수 만개의 암세포가 있다 한들
자각증상이 없으나,
이 게 수년이 지난 어느 날,
또는 십수 년이 지난 어느 날,
한 소중한 생명을
그의 또 다른 소중한 존재일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뺐어가는,
사망으로 이끄는 끔찍하고 무서운
저승사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럼 저는..."
"그래서 환자분의 몸속엔
시한폭탄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하는 겁니다."
"교수님, 많은 사람들이
암 완치 판정을 받던데요..."
"완치요? 우리 의사들은 그러길 소망합니다.
사실을 잠깐 말씀드릴게요.
우선 아까 말씀드린 대로
몸에 만약 수 천 내지 수만 개의 암세포가 있다 해도
CT, PET-CT, MRI 등에서 알아챌 수 없다는 거고...
그럼 정상으로 나오고...
한 5년 동안만,
첨단 의료기기들이 알아챌 수 없는 숫자까지만
암세포가 존재한다면,
그런 상태가 유지된다면
정상으로 판명되고, 암 완치 판정을 받겠지요."
"그런데, 교수님?"
"......"
"다들 하루에 몇 백 개에서 몇 천 개의
암 예비군들이 발생한다는 얘기도 있던데..."
"필연이지요. 하지만 면역체계와
손상에 의한 암세포 씨앗 간의
균형이 이루어진다면 암의 공포-암 포비아-에
사로잡히고 암 염려에 집착할 필요가 없겠지요.
면역체계가 우위인 몸이라면,
면역체계가 균형을 이루는 몸이라면,
그런 손상된 세포들을 모두 처리하겠지요."
"그럼 암은..."
"예. 면역체계 이상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교수님, 저도 항암제를 먹을 수 있겠지요?"
"쓸 항암제가 없습니다."
"예?! 그럼?"
"신장암, 신세포암은
방사선 치료에도 안 듣습니다.
효과 있는 항암제도 없고요."
"그럼 전 죽어야 하나요?"
"... 면역치료를 한번 해봅시다.
인터투킨II 라고... 이거 수천만 원 드는데....
내가 그냥 하게 할게요.
어때요?"
"예. 고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밖에 나가면 담당자와 면담을 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당시 나의 내심에서는
추적 검사 데이터가 쌓여가면서
절망이 무르익어 갔었다.
나에게 깊은 좌절이 따라다녔다.
그런 추세라면,
8개월 만에 암덩어리의 크기가
5배로 증가했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가장 큰 암덩어리의 지름이 1.7cm이고
이게 몇 개월 후에 만약 2.4cm가 된다면,
부피는?
부피는 지름의 세제곱,
그러면 지금보다 약 9배가
커질 거라는 계산이 나오고......
그럼에도 그 교수님이
면역치료를 무료로 제안을 하셨었으니...
난 밖으로 나왔다.
내가 안내된 곳은 룸이었다.
흰 가운을 입은 두 분의 여성 전문가가 나를 맞이했다.
이런저런 인사 후,
인터루킨 II와 관련된 설명이 시작되었어.
“우선 대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면역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치료법입니다.”
“그러니까, 강제적으로 면역력을 올리는 건가요?”
“예.”
“효과는?”
“ 일정 정도 효과가 있습니다.”
“일정 정도?”
“예.”
“그럼 실패율도?”
“높습니다. 저희는 반응률이라고 합니다.”
난 '일정 정도 효과'라는 말과
'반응률'이 낮다는 사실에 회의감이 들었다.
“어떻게 진행되나요?”
“그전에…. 중환자실에서 진행됩니다.
또 아까 자료를 읽으셔서 아시겠지만,
각종…. 심각한 부작용이 동반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환자실에서 진행됩니다.”
“예. 아까 자료에 보면 이러저러한 부작용에 더해,
시행 중 사망률도 꽤 높던데….”
“예. 사망하는 예도 있습니다.”
“…….”
“이 치료법은 효과는 제한적인데…,
전신 독성은 큰 편입니다.
암 잡아먹는 T 세포와 자연살해세포를
인위적으로 높이는 겁니다.”
“어떻게 그 물질을 몸에 넣나요?”
“주사요.”
그 선생님은 내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주셨다.
나의 불안감에 대해 공감도 했고.
어쨌거나 난 상대적으로 높은 이러저러한
부작용에 놀랐다. 그중 ‘사망률’엔 더 놀랐고.
“선생님, 설명 감사합니다.
좀 더 생각하고 싶습니다.”
“예. 그렇게 하세요. 잠시 후 다시 뵙겠습니다.”
나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나는 특히 그 ‘사망률’에 민감하게 여겼다.
“난 동의 못 해! 사망률이 너무 높잖아!!”
본능이 내는 소리였다.
"그래도 한번 해 봐?"
이성이 내는 소리였다.
“그런 편이지? 그 상담 선생님을 통해
담당 교수님과 좀 더 의논해봐야겠어.”
나는 사망률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었다.
담당 교수님도 상담 후에 다시 보자 했고.
그 교수님은 시선을 책상 위의 컴퓨터 화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또 안경을 콧등으로 내렸다 올렸다 하시며,
조금은 산만한... 분위기를 보이고 계셨다.
“어떻게…. 설명은 잘 들었나요?”
“예….”
“언제부터 시작할까요?
이거 비싼데 내가 그냥 해주는 거예요.”
“교수님, 저 사망률이 좀….”
“사망률? 감기약만 해도….
거기 설명서 잘 읽어 봐.
거기에도 사망이 언급되어 있을 텐데.
부작용이 없는 약이 어디 있을까...”
“그래도... 좀 높은 게.”
“부작용, 내성 없는 약은 없어.
이거 한 방으로 끝냅시다.”
“교수님, 교수님의 제의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 치료는 제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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