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항암제 인라이타가 극성이다.
등짝에 이어,
가슴팍,
두피,
등등 잔혹한 페인팅을 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타투? 추상적 타투! ㅎㅎㅎ
덕분에
거품샤워,
거품 머리 감기 등을 못한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것들은 애교 수준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을 수 없다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표적항암제 인라이타는 이제는
입 안,
목구멍…
위 점막 등을 공격하고 있다.
덕분에 식생활에 변화가 심하게 일어나고 있다.
난 여름철, 아니면 기온이 높다 치면
열무김치를 좋아한다.
비빔냉면도 좋아한다.
물냉면도 좋아한다.
그러니까 물냉면에 적당한 양념을 얹어서
열무김치와 함께 먹는 건
여름철 내가 누렸던 행복한 이벤트였다.
단순하게 먹는다는 행위를 넘어
좋아하는 걸 먹을 수 있는 거에 대한
행복 어떤 것?!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좋아하는 식탁 위
그 조합을 못 먹는다.
한술 더 떠서 열무김치도 못 먹는다.
열무라는 식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
신선한 열무가 선사하는 똑 쏘면서도 개운한 맛,
그 맛이 내 약해진 구강 점막과 식도 점막을
하염없이 공격한다.
입술도 아프면서 부르트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이 여름,
다진 양념 얹은 물냉면도 못 먹고,
다데기 얹은 비빔냉면도 못 먹고,
아삭아삭 달콤 매콤 열무김치도 못 먹는다.
내가 밋밋한 냉면을 참새가 벌레 먹기 전
머리 갸우뚱하며 관찰하듯 한 후
조심스럽게 먹는 듯할 때
옆자리 손님들이 빨간 다진 양념 듬뿍 얹어
게눈 감추듯 후루룩 먹는 모습,
내가 같이 나온 열무김치
언덕베기 날 버리고 가는 님 바라보듯 할 때
다데기 쓱쓱 비빈 냉면에 열무김치 정신없이
곁들여 먹는 모습,
그런 게 다 로망이 되고 있다.
평범은, 본래 말뜻과 다르게, 내게 이젠
특별함과 동의어가 됐다.
쓴 맛보는 삶의 언어적 부조화...
*당연히 고춧가루 몇 개와 매운 양념 약간 들어간,
매운 흉내만 낼뿐인 어떤 음식도
입 근처에 가져갈 수 없다.
평범했던 그래서 더 특별했던 그때 일상들이 그립다.
*열무와 모밀냉면 자체가 항암식품이라고 한다.
지독한 역설이다.
**그래도 다데기 없는 냉면이라도 먹을 수 있으니
캬~ 이게 어디냐! 하는 생각이 사실은 더 강하다.^^
'삶 > 소수자로 산다는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4기 암 환자이면서 장애인, 무엇으로 사는가 (0) | 2023.05.23 |
---|---|
암 환자도 소수, 장애인도 소수: 암과 장애인에 대한 기본 개념 (0) | 2023.05.22 |
암으로 죽을 확률 관련 (0) | 2023.04.17 |
세계 여성의 날 (0) | 2023.03.08 |
키에 대해서 2: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것의 유리함 (0) | 2023.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