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들은 60이나 70 넘어할 고민과 대비,
난 40대 중반부터 시작했다.
뭘 먼저, 얼마큼 버리나?
옛날 인화 사진들은 어쩌나?
정 깃든 편지들, 추억 듬뿍 엽서들은?
몇 장 안 되나 받을 때 좋았던 상장들은 어쩌나?
죽어 시체는 매장을 부탁할까?
아무리 4기 전이암 환자 사체라 해도...
그래도 쓸만한 게 있을지 모르니 그건 기증하고,
나머지는 실험용으로 기부할까?
화장을 부탁할까?
아니면 수목장?
그랬었다.
어쨌든 다행스럽게도 50 이전에 끝났다,
맘 정리,
생각 정리,
집착 버리기,
연민 버리기,
물건 버리기...
사진 등은 모두 스캔.
상장이며 편지도 다 스캔.
다해도 500기가 ssd가 텅텅 비었다.
인생 참...
옷들은 더울 때와 추울 때 그렇게 두 부류로 나눴다.
입을 것, 그렇게 두 가지로 구분해서,
몇 벌 남기고 다 버렸다.
겨울 잠바도 1개만 남겼다.
추우면 반팔, 긴팔 겹치면 되니까.
남긴 것들 정리하니 옷장 속 미니 선반 2단도 공간이 너무 컸다.
이불도 얇은 거 3개만 남겼다.
2개를 각각 접어 겹치면 등이 박힐 정도는 아니다.
나머지 하나는 덮을 거. 길이 1m 75cm, 폭 50cm짜리 잠자리.
내 몸 눕힐 그 면적이 하늘이 준 내 몫이다.
아니, 내 덩치에 그것도 과하다.
누워 생각하면 10평 집에 산다 한들 대궐집 같다.
쓸만하다는 건 기증, 나머진 기부!
그렇게 사체 처리도 결론 내렸다.
어디 묻힐지, 화장이니 수목장...
그런 걱정 할 필요도 없어졌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주치의가 남은 게 최대 48개월이라 했다.
난 스스로의 선견지명에 놀랐다.
나의 준비 끝과 그분의 진단은 2년 차이뿐이었다.
내 생각보다 2년이 많았다.
“인심 좋으신 교수님!”
그래서 그 2년은 보너스!라고 여겼다.
기분이 좋았다.
여기저기 떼내고 잘라내고,
그걸로도 부족해 항암제 내성이 생긴다는 말까지 들었다.
마지막 작별이나 하러 22년 의형제 미국인 형님을 보러 갔다.
약도 거의 한 달 끊었었다.
돌아와 CT 찍었더니 결과가!
커가던 암 덩어리들이 멈췄단다.
세상 참 모를 일이다.
현실은 생각과는 너무 다르다.
미래는 예측과는 너무 다르다.
그러니 사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제각각 일 수밖에 없다.
앞날을 도대체 알아먹을 수가 없으니...
과학 영역이라는 의학,
그 용하다는 내 주치의 교수님도 내 앞날을
“더는 모르겠다!”
하셨다.
아직도 이렇게 살아있다, 희한하게도.
하얗게 변했던 체모가 흑모로 변하고 있다.
얼마 전 인구 3만 5천 짜리 동 주민자치회 위원 추천을 받았는데,
어제는 교육도 마쳤다.
90 다 되어가시는 고향집 아버지,
자식이 당신 농사 상속받아 귀농하길 원하신다.
인생사 한 치 앞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좀 더 살아봐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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