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항암제 부작용이 심해지고 있다. 더불어 갈수록 전이되는 곳과 정도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이 생겼다.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다.
그 둘 중에서 어느 걸 선택해야 하는 지를 잘 몰랐었다. 하지만 이젠 알 수 있을 것 같다. 급한 것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항암 14년에 얻은 지혜다. 내 나이를 생각할 때 너무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과 항암을 위해서는 늦었지만 다행이다.
난 말을 할 때 언젠가부터 주제를 먼저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난 그래야만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내가 가르칠 때 강조했었던 바였다.
주제를 먼저 말해라. 그리고 그건 6개 전후의 단어로 해라. 그리고 그 주제 문장은 5개 내외의 문장으로 해라. 전체 문단은 5개 내외가 좋다와 같은 식이었다. 그걸 부단히 남들에게 훈련시켰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너무도 장황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시작이 그렇다 보니 중요한 논점을 놓치게 됐다. 결국 듣는 사람은 물론 나 자신부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종잡을 수 없게 됐다. 내가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망각한 결과였다.
내게 항암제 아니면 장기간 항암으로 생기는 부작용이 여럿이다. 우선 항암제 내성이다. 약 한 가지가 벌서 옵션에서 빠졌다. 교수님들은 이미 예고했었다. 감기약마저도 내성이 생긴다고. 그러나 항암제를 감기약과 단순비교할 수는 없다. 죽고 사는 문제니까.
장기간에 걸친 항암에 공포스러운 것은 끊임없는 전이다. 진단 시에 이미 다발성폐전이가 있었다. 그러더니 다리뼈로 갔다. 두 번의 대 수술을 했다. 거기서 끝이 아녔다. 14년째인 올해, 결국은 인체의 중추인 척추로까지 전이됐다. 그것도 3개월 만에 2센티라는 공포스러운 속도로 말이다. 그런 속도라면 조만간에 척추 기능이 심각하게 손상될 게 뻔하다.
전이만큼은 아니지만 항암제 부작용도 참으로 불편하다. 우선 보트리엔트는 온몸의 털을 모두 백발로 바꿔버렸다. 40대 후반에 이미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얻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참 매너가 없는 분들도 있다. 머리만 하애도 무대뽀 할아버지 호칭이다. 40 후반에 할아버지가 되는 사람이 한국에서 얼마나 될까!
그리고 온 피부를 백색으로 바꿨다. 이게 어떤 이들에게는 좋게 보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자외선에 너무도 취약하다. 피부암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항암 코디께서는 내게 항상 말했엇다. 선크림을 반드시 바르시라, 챙이 긴 모자를 반드시 쓰시라. 되도록 긴팔의 옷을 입으시라.
피부암 공포만큼은 아니지만 설사도 참 지독하게도 내 일상을 괴롭히고 있다. 하루에 일곱여덟 번의 설사는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기운 없게 만드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건 신부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잦은 설사의 필연적 결과인 전해질 손실이 바로 그 원인이라고 주치의 교수님께선 강조하신다.
그러더니 그보다 더 불편한 것들이 날 괴롭히고 있다. 새로운 항암제 인라이타의 부작용이다. 엄청나게 치솟는-180?- 고혈압 수치, 등 전체를 빨갛게 수놓고 있는 모낭염 봉우리들, 가슴과 두피까지 확대되는 피부 뾰루지들, 그리고 참기 힘든 가려움 등... 모든 것들이 숙면을 방해한다.
그러다 보면 항암에 대한 회의가 생긴다. 그만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러다 생각한다. 무엇이 중한가? 항암제를 쓰던 자연요법을 쓰던 엄청난 관리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그 모든 걸 집어치우는 것이다. 그러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결국은 해야만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그 중간 쯤 어디에 선가의 갈등이다. 답은 뭘까?
너무 뻔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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