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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간경변, 간암

무대 위에서 내려 오시는 어머니

by 힐링미소 웃자 2022.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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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요양병원으로 옮기신 게 벌써 4개월이 지났다. 5개월의 반을 보내고 계시다. 자력으로 걸으시는 건커녕 침대에서 내려오실 수도 없다. 심지어 침대에서 윗몸을 일으키실 수도 없다. 간병사님의 도움을 받아야 몸을 일으키실 수 있다. 식사도 세 깨 영양죽으로만 하신다.

 

암모니아 수치는 기복이 심한 편이시다. 400~200 사이를 오르내린다. 이틀에 한 번꼴로 관장하시는데, 매일에서 바뀐 지 한 달이 넘었다. 매일 관장하는 것, 어머니의 몸이 도저히 못 견디시니 간격을 넓힌 것이다. 그럼에도 배는 터질 듯 팽창된 상태다.

 

다사다난, 생로병사... 인간의 한평생을 나타내는 여러 표현들이 있겠지만, 내겐 생로병사가 제일 적확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나고, 늙어가고, 병이 들던지 약해져 죽는다는 것인데, 이보다 더 인생을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어디에 또 있을까 한다.

 

그럼에도 난 때때로 무대를 떠올린다. 본인의 삶이라는 무대, 그 위에서 살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웃고, 울고, 찡그리고... 갖은 표정으로 연기하고, 갖은 몸짓으로 연기하다가 무대의 불이 커지고, 막이 내려오고... 자신의 일생의 무대 위 주연배우로서 치열한 연기, 그 후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무대.

 

요즘 들어 부쩍 어머니의 무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걸 느낀다. 오랜 기간 진료를 하셨던 김 교수 님께서, 나와 아버지께 3번에 걸쳐 30분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셔서 어머니의 상태를 설명해 주셨었다.

 

"간경변증의 말기적 현상이며, 그로 인해 다발적이고 연속적으로 여기저기 간암덩어리들이 생기고 있다. 간암이 초기 단계였으나 간경변증이 간의 전반에 걸쳐 있어서 이식 수술은 불가였다. 간암도 일부는 절제 자체가 불가능한 위치에 있는 것도 몇 개 됐다. 간동맥과 정맥 그리고 문맥이 교차하는 곳에 생긴 것들을 말하는 거다.

 

그러니 시술 밖에 선택이 없었다. 그래서 총 7번에 걸쳐서 경동맥색전술및 고주파열치료를 시행했다. 하지만 그런 시술들도 이제는 불가능하다. 영양상태, 골다공 정도, 면역력 상태로 볼 때 더 이상의 시술은 플러스보다는 마이너스가 더 크다.

 

약도 안된다. 간에서 해독, 흡수가 안된다. 또한 간의 상태가 악화하면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복수가 차고 있고, 이뇨제로도 관리가 힘들며, 암모니아 수치가 높은 상태로 간성혼수를 일으켰고, 그로 인해 응급실로 오셨던 게 아니냐. 또 3일간이나 의식이 없으셨던 게 아니냐.

 

현 상태로 병원에서 더 할 게 없다. 집도 안된다. 요양병원 밖엔 다른 수가 없는 것 같다... "

 

그런 요지의 말씀을 어머니의 주치의께서 하셨다. 

 

또한 "잘 만 관리하면 1~2년 정도 더 생존하실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난 그런 설명을 들으며 다사다난했던 어머니의 삶의 무대, 그 무대의 주연배우로서의 말미에 도달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확신이 들었다. 그나마 1~2년을 더 사실 수 있다니 아직 무대의 불은 당장 꺼지지는 않겠구나 했었다.

 

사실 올 초와 같은 긴박한 증상이 그전에도 있었다. 나와 아버지는 당시, 어머니께서 이제는 세상을 뜨시나 했었다. 당시의 느낌은,

 

"아! 어머니의 파란만장했던 삶의 무대의 불이 꺼지고... 막이 내려오나 보다..."

그랬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어머니는 그 고비를 넘기셨었다. 하지만 올 초 더 급한 일이 생겼다. 간성혼수라!

 

부랴부랴 응급실로 모시고, 난 아침을 먹다가 버선발로 지방으로 내려갔었다. 응급실-회복실-퇴원... 그리고 교수님 면담들... 그 면담 후... 대략 1~2주 정도만 요양병원에 모시고, 원기가 어느 정도 회복되시면... 집으로 모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느다란 희망의 끈도 역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요양병원의 원장님과의 상담에서 끊어졌다.

 

“그 교수님... 참 인자한 분이시네요. 1~2년을 보셨다? 글쎄요...”

 

그 말씀은 내게 상징하는 바가 컸다. 12년에 이르는 나의 암 투병 과정에서 주워듣고, 스스로 공부한 지식을 그 표현에 대입했다. 그러면서...

 

"머지않아 어머니의 삶, 그 연극의 무대를 밝혔던 조명이 정말로 꺼지겠구나..."  

했다.

 

누구든 그의 삶의 무대에서 주연일 것이다. 누가 그걸 부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주어진 역할이 있다. 일종의 배역이다. 수도 없이 많을 장면들과 1막, 2막... 수도 없을 그런 막들과 장이 있겠지만... 크게 나눠 희로애락을 연기하다, 생로병사라는 장을 거쳐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건 어쩌면 숙명일 거란 생각이 든다.

 

내, 오늘... 어머니를 생각하며, 내 삶의 무대, 그곳에서 연기하는 주연배우인 나는 어떤 역할을, 배역을 연기하고 있는지를 반추해 본다. 그러면서 생로병사의 주요한 마디마디들 중에서 어느 부분을 내가 연기하고 있는지를 사색해 본다.

 

나를 위한 영원한 무대는 없다는, 반드시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숙명, 그것은 진실. 언젠가는 내 삶의 무대, 그 화려한 연극의 무대, 그 무대의 불도 꺼지고, 막이 내려올 순간... 나의 마지막 무대는, 연기는... 무엇일는지... 어머니의 종장을 보며 많은 걸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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