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이 부어.”
나도 손발이 붓는 건 셰리와 비슷했다.
하지만 내 경우엔 발이 더 심했다.
양말을 벗을 때마다 그 정도가 심해져 감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놀랄 일도 아니었다.
갑상선이라고 하는 것의 주요한 기능이 열과 에너지의 관리라고 하니 그 호르몬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증상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분비센터의 담당 교수의 명쾌한 설명을 듣고 나서는 그 기능이나 원인보다는 치료가 가능한 건지에 더 관심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 마저도 별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건 그 교수의 마지막 말이었다.
“환자분은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는 암이 더 급할 것 같은데... 양쪽 폐에도 암덩어리들이 몇 개인지 모를 정도로 다발성이시고. 이 갑상선 호르몬 문제는 약으로 관리가 가능하시니.”
사실 그분의 말은 맞았다.
초등학교 시절, 연필을 깎다가 베인 손가락을 감싸고 운동장을 향해 달려 나가다가 30개짜리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본 적이 있는 나는, ‘작은 상처는 큰 상처에 묻혀 잊힌다’라는 금언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니 말이다.
‘나도 그래.”
나는 셰리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아차! 했다.
나에게는 아직 갑상선이 멀쩡한 모습으로 달려있지만 그녀에게는 흔적도 없이 절제된 상태라서, 내가 느끼는 것과 그녀가 느끼는 정도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었다.
저리는 팔이라도 달려 있는 사람과 아예 절단돼서 방사통에 시달리는 사람과의 비교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팔이 붙어 있는 사람은 가려우면 긁거나 꼬집을 수라도 있겠지만 아예 없는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가려워서 긁고는 싶은데 긁을 팔이 없고, 통증을 느끼면서도 어루만질 팔이 없다면?
그 고통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거며, 표현한다고 해서 처지가 완전히 다른 사람은 말 그대로 같은 처지가 아닌데 어떻게 그 고통을 알 수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되뇌었다.
“갑상선은 그렇더라도…. 유방암은 더 악화하지 않고 빨리 회복되길….”
그러면서 나의 처지를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4기 단계의 암에, 전이성에, 콩팥을 떼어내고, 폐를 잘라내고, 다리를 잘라내도 내 옆에 있는 그 누구도, 나와 살고 있는 그 누구도, 심지어 날 낳아준 부모마저도 어떻게 그 아픔을 알 것인가?
그들의 몸에 암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배를 열어서 속에 것들을 떼어내고... 꿰민 것도 아니고, 그들의 두 다리는 멀쩡히 잘 있는데... 어떻게 그와 동시에 같은 강도로 내가 갖는 통증이나 고통을 알 수가 있겠는가?
정말로 그런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기대할 걸 기대해야지!
그런 동기화는 애초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나 혼자만의 문제라서 다행이지, 한 집안에 그런 존재가 둘이라면?
아니면 모든 식구가, 모든 친구와 동시에 같은 육체적 고통과 마음의 상처를 느낀다면?
그런 난리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아픈 사람은 아프고 못 먹더라도 산 사람은 잘 먹고 잘 살아야 할 게 아닌가!
난 쉬지 않고 했던 질문을 멈췄다.
그리고 속으로,
“아, 좀 차분히 들어보자. 좀 더 <잘 듣는 사람>이 되자.”라고 다짐했다.
그런 다짐에도 내 마음은 잠시 요동쳤다.
나의 어머니도 사실은... 현재 간암 투병 중이라서 한 집안에 암환자가 둘인 경우라서... 그런 너무 아픈 현실이 떠올라서였다.
“그리고 또?”
“언제나 피곤해. 뭘 계속해서 한 시간 이상을 못해.”
“......”
“그런데 이게 그냥 피곤하다가 아니야. 피곤해서 죽겠다야.”
셰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소 띤 얼굴이었다.
“그럴 땐 어떻게 해?”
“어떻게?”
“......”
“방법이 없지. 그냥 쉬어. 음악 듣거나 책을 읽으며. 아니면 잠시 눕든지, 아니면 아예 한두 시간을 자던지.”
내가 느끼는 피곤함도 사실 보통이 아니었다.
힘이 없어지고, 고혈압처럼 숨이 가빠지고, 열이 오르고, 짜증이 나고, 눕고 싶고, 목소리도 허스키로 변하고......
어찌 보면 그것 말고도 나와 그녀는 공통적인 게 의외로 많았다.
갑상선 호르몬제를 평생 먹어야 한다는 것,
암환자라는 것,
소식한다는 것,
한 끼 식사를 위해 너무 많은 가짓수의 음식을 안 먹는다는 것,
수시로 신선한 물을 마신다는 것,
신선한 사과와 토마토를 하루에 최소한 한 개씩은 먹는다는 것,
바나나를 매일 한 개씩은 먹는다는 것,
잼보다는 꿀을 더 먹는다는 것,
대부분 유기농 채소를 먹는다는 것,
육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
냉동시키지 않은 신선한 생선을 정기적으로 먹는다 것,
술을 거의 입에 안 대거나 목을 축이는 정도에서 끝낸다는 것,
대화를 좋아한다는 것,
앞에 앉은 사람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는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는 것,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
자연을 좋아한다는 것,
인공적인 장소를 싫어한다는 것,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을 보는 걸 싫어한다는 것,
번잡한 곳에서의 쇼핑을 싫어한다는 것,
수시로 책을 읽는다는 것,
TV를 거의 안 본다는 것,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즐긴다는 것,
영화관과 같은 어둡고 폐쇄적인 곳을 싫어한다는 것,
하지만 박물관은 좋아한다는 것,
가공식품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커피나 차는 좋아한다는 것,
커피 중에서는 블랙을 좋아한다는 것,
친구들과 담소를 좋아한다는 것,
잘 웃는다는 것,
새로운 친구를 잘 만든다는 것,
친구나 가족을 사랑하나 그 존재에 대해서 집착이 없다는 것,
산보를 좋아한다는 것,
가사 없는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채식을 많이 한다는 것,
청바지와 티셔츠만으로 거의 모든 일상을 소화한다는 것,
미니멀 주의자라는 것,
일기를 쓰고 글을 쓰는 걸 즐긴다는 것......
하지만 그녀에겐 갑상선이 없고 나에겐 있다는 것,
그녀는 두 개의 암이지만 난 아직은 한 가지 암,
그녀는 자연스러운 실버 모발이지만 난 항암제 변색 실버 헤어,
나는 항암제를 쓰고 있으나 그녀는 거부한다는 것,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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