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과 갑상선암을 가진 셰리는 간혹 와인을 마셨다.
내가 같이 머무르는 동안 세 번을 본듯하다.
14일 동안에 3번이면 4,5일에 한 번 꼴이다.
대략 와인잔 1/2 정도의 양이었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나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그녀는
"자, 어서 한 잔 해 봐!"
라는 말을 미소에 띄워 나에게 보냈다.
진단과 동시에 술과 담배를 끊었던 그는 머뭇거렸다.
옆에서 프랭크가 나에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덩달아 보냈다.
난 아주 오랜만에 술을 입에 댔다.
술은 나의 아주 오랜 친구였었다.
중 2 초 때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뜨셨다.
한학을 하셨던 그의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후 1년 동안이나 대접을 받으셨다.
할머니께서는 작은 방에 영정을 모셨다.
영정 뒤에는 병풍을 치셨다.
할머니께서는 소담스럽게 밥을 지으시고 국을 끓이셨다.
그리고는 그걸 그 작은 방으로 나르셨다.
그다음은 내 차례였다.
밥을 영정 앞의 상에 올리고, 국을 올리고, 술 한 잔을 올리고, 담배 한 개비를 올리고.
그때 나는 궁금했었다.
"할아버지께서 드실 술맛은 어떤 걸까?"
여러 날에 걸친 10대의 호기심에 예절이 당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 저녁, 할머니가 잠드신 사이 나는 영정 앞의 상에 모셔진 술 한 잔을 했다.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하지만 그 진한 맛이 입안에 머물 겨를도 없이 불효라는 죄책감이 그를 몽롱하게 만들었다.
난 1년 동안이나 비현실을 믿었었다, 그의 할아버지의 육신은 관에 머문 채 지하에 계셨지만 영혼은 병풍 뒤에 계신다고.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의 술을 훔쳐 먹은 걸 다 보셨을 거고, 그 불효에 대한 벌을 받게 될 거라고.
한동안 그 죄책감에 할아버지 영정 앞에 식사를 바칠 때면 할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나중에 수학과 과학을 조금은 더 배우고 나서 그게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인지를 깨우쳤다.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비현실'에 대한 개념에 격변이 일어났다.
윤리를 배우면서 철학도 끼워서 배웠는데, 거기에 관념론이니, 종교니, 의식이니, 인식이니 하는 것들을 배우게 됐었는데, 그걸 배우며 나는,
" 할아버지의 영혼이 아마 당시에 그 병풍 뒤에 계셨을 가능성도 있었"의리라고 믿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나는 내가 사는 거실의 벽에서 할아버지의 얼굴을 언뜻언뜻 보기는 한다.
그때 시작한 음주는 참 길게도 이어졌는데, 그 후로도 몇십 년간 계속되었으니 참 독특하게 배운 술, 독특하게도 오래 간 경우임에 틀림없다.
그 이후로 난 술 마시는 행위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로부터, 아니 그분의 영혼으로부터 배운 것이니, 내가 음주라는 행위를 성스럽고도 애지중지한 그 무엇으로 대했던 것도 딱히 잘못된 행위라고 말할 건 아니다.
그랬던 술을 진단과 동시에 딱! 끊어버렸는데, 그 절주는 대략 1년여를 간 듯하다.
그 후로 술 보기를 웬수 보듯 했었다.
마치 암이 4기까지 간 거나, 거기까지 가도록 알아채지 못한 이유가 마치 술 때문이기라도 한 듯이.
하지만 다시 술을 입에 댔는데, 그 계기는 절망의 끝에서였다.
나는 첨에 진단받은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옮겼는데, 도저히 그가 암 4기에, 폐로도 이미 전이가 아주 많이 됐고, 그 정도이면 아마 몸 구석구석까지 퍼졌을 거라는 추측의 말씀에 혼비백산했을뿐더러 이어지는 수술처방에도 미심쩍은 게 많았고, 더 큰 이유는 도대체 믿어지지가 않아서 다른 병원에서 확인받고 싶어서였다.
나는 어쨌든 두 번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그 후부터가 문제였다.
나의 기대와는 완전 딴판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절망만 보였었고, 그 절망은 단호하게 끊었던 술을 다시 찾게 만들었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술은 몇 개월간 계속됐었다.
폭주 비슷하게 마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암에 대한 그 병원의 대책이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약 없음! 당신에 대한 대책 없음!"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나의 어린 새끼들의 잠든 얼굴을 보았고, 거울 속에 비친 나 자신의 취한 모습을 보았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누구에게 좋은 일인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사실 명확했었고, 그 답 다음에 이뤄질 수순도 명확했었다.
그렇게 다시 술을 딱 끊었고, 그렇게 술 한 방울 없이 7년이 흘렀다.
그런데... 그날 밤 그날 밤 내게 영감을 주고 있던 이가 나에게 와인잔을 높이 들며 웃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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