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전이암이라는 청천벽력을 40대 중반에 받았을 때 놀랐다기보다는 황당했었다. 그 후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겼었다. 맘도 다잡었고. 그런 중에 내 삶의 모토를 바꿨다.
‘단순한 게 좋다.’
말을 단순하게 하자.
난 이게 화날 때 말고는 안 됐었다.
대부분 장황설이었다.
암 진단 후 극단적인 단문을 구사했다.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질문이 많아졌다.
내가 너무 짧게 말해 정보가 없다며...
옷가지를 단순화했다.
2년 이상 안 입은 옷들을 몽땅 재활용했다.
재활용 수거함에 다 넣어버렸다.
청바지 두어 개, 반팔 티 몇 개, 운동화 몇 개...
옷장이 널찍해졌다.
책장을 정리했다.
대부분의 책들을 고물상에 팔았다.
내가 억만금을 주고도 못 살 지혜를 얻었던 책들...
그것들이 몇백 원, 몇천 원의 가격이 메겨졌다.
책장이 텅 비기 시작했다.
인화 사진을 정리했다.
여러 개의 앨범에 담겨있던 사진들을 다 꺼냈다.
모두 스캔했다.
디스크 몇 장에 넣었다.
무거운 앨범들이 사라졌다.
편지와 엽서들을 디지털화했다.
모조리 스캔해서 역시 디스크에 넣었다.
그걸 또 내 폰 속에 넣었다.
밥과 함께 먹는 반찬 수를 줄였다.
전에 다섯 가지, 여섯 가지,...
그걸 3개로 줄였다.
냉장고 안이 여유로워졌다.
글도 되도록 단순하게 쓰고 싶었다.
한 문장에 5~7개의 단어들로,
한 문단에 5~7개의 문장들을,
한 글에 4~7개의 문단만을...
그래서 나중엔 시로 표현하고팠다.
그래서 폰 바탕화면을 바꿨다.
검정 바탕에 흰 글씨로,
‘미니멀리즘’,
잠금 화면은,
‘Simple is beautiful’.
내 인생도 곧 끝날 줄 알았다.
두 번째 병원에서는 얼마 못 산다.
세 번째에서는 최장 48개월.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흔적들을 지웠다.
그런데 그보다 더 살게 됐다.
말도 길어졌다.
옷가지도 많아졌다.
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메일이 쌓이고 있다.
반찬 수가 늘어나고 냉장고가 차고 있다.
한 문장 속 단어들이 늘어나고 있다.
문단이 길어지고 있다.
생각이 많아지고,
관계가 늘어나고,
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
얼마 못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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