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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해외여행

먼 곳 이국적 여행을 준비하며 추억을 소환하다

by 힐링미소 웃자 2023.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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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곳 안 되는 곳을 여행해 보면서 난 도시체질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딸은 나와 정반대의 생각이지만). 딱히 도시에서 적응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듯이다. 편하다는 말속엔 이러저러한 의미가 많겠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편안함이란 다른 게 아니다. 목가적이란 뜻이다.

난 서울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농촌에서 태어났다. 전기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들어왔다. 거기서 15년을 살았다. 그리고 중소도시에서 남은 중학교를,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큰 곳으로 옮겨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리곤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군대생활은 제주도에서 했다. 제주도 바닷가, 아니 바다에 한 발을 담그고 밤에는 경계근무를 낮에는 오침을 하면서 보냈다. 아, 제주시에서도 했다.

지금은 서울의 거의 중심부에서 산다. 그게 광화문이나 중구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중심부에 가깝다는 뜻이다. 서울 생활이 아마 햇수로 30년은 벌써 넘었다. 그런데 전기마저 가장 늦게 들어왔던 촌놈이 나름 정착생활을 잘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사는 지역은(만) 아직은 재개발이 안 됐다.

서울에서 재개발의 의미는 아파트라는 뜻이다. 만약 아파트로 개발됐었다면 이곳에서 이토록 오랜 기간 살 수 있었을까 한다. 내가 사는 지역이 재개발되면 아파트에 들어갈 돈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 안에서 잘 살 수 없을 거란 뜻이다. 한때 아주 짧게 아파트 생활을 해본 적 있는 데 정말 힘들었다. 문 열면 앞집 현관이 보여서... 물론 앞뒤가 틔인 동호수라면 모를까...

난 요즘 고향집에 종종 내려가고 있다. 아마 조만간 일 년의 반을 그곳에서 보낼는지도 모르겠다, 농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그곳이 여전히, 전형적인 농촌이기 때문이다. 고향집은 앞이 탁 트였다. 광활하다. 답답함은 없다. 뒤에는 바짝 붙어 산이 있다. 공기도 좋다. 고향집에 머물 때면 집 안에 머물러있지만은 않는다. 접이식 의자를 마당에 내놓고 흔들의자 삼는다. 하늘을 보고, 바람결을 느끼고, 대숲을 가르는 바람소리를 즐기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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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포함한 미국 동부도시들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쪽에서 대략 20여 일 가까이 있었던 듯하다. 뉴욕, 워싱턴 DC,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그러다가 10여 년만에 다시 간 미국은 그 정반대 방향이었다. 그곳은 산골이었다. 지금도 그렇다고 한다. 인구라고는 카운티 전체에 걸쳐 40,000명도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다운타운 인구는 더 적다. 고층빌딩도 없었다. 그저 대부분이 단층건물이다.


동부보다는 역시 서부 산골에서 난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동부... 아! 한 가지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뉴욕 뒷골목 클럽에서 밤을 새운 적이 있는데, 그곳의 몽환적 분위기는 가히 압권이었다. 술맛도 기가 막혔었다. 하지만 다음날 12시 넘어서 술이 깬 걸 보면, 그것도 깨질듯한 머리 상태... 범상한 술을 마셨던 게 아닌 건 분명했다. 뭐 놀랄 일도 아녔을 것이다. 그곳 손님들 대부분은, 기껏해야 20여 명??, 범상치 않던 펑크족들이었으니. 그날밤 그들 대부분과 어울렸는데... 지금도 그립다.. 그곳을 미국형과 단 둘이 갔었는데...


그 형 나한테 나중에 물었었다. 가기가 아딘지 기억하냐고.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리고 월스트리트에서 60이 넘도록 밥 벌어먹고, 생활했던 그 형이 뉴욕 한복판에 그토록 이국적인 클럽이 있었을 줄을 몰랐던가 보다. 어쨌든 그곳 한 군데를 빼곤 그다지! 였었다. 20대부터 서울 구석구삭을 헤매고 다녔던 내가 어느 대도시를 접하더라도 특별하게 느끼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말이 서울이지 이 수도권이 얼마나 초거대도시란 말인가. 그런데 뉴욕의 규모에 놀랄 일일까!

어쨌든 머지않은 날에 다시 머얼리 여행을 떠날 듯하다. 아주 제대로 즐겨 볼 생각이다.
(그리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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