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어느 바닷가에 왔다.
바람이 참 좋다. 바닷가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소라의 옛이야기를 전해준다. 산꿩 울음소리, 조가비 소리와 하나 된다. 숲과 만난 바닷가가 주는 조화로운 소리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아직 덥지는 않다. 여기로 오는 길, 라디오에서는 오늘 수도권 일원의 기온이 30도에 근접할 거란 예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침 일어나자마자 챙겨온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펼치고, 그 위에 스테인리스 후라잉 팬을 올렸다. 불을 폈다. 아마 지난여름에 마지막으로 쓰고 남겨뒀던 두 개의 부탄가스일 것이다. 아직 불꽃이 쓸만하다.
이른 아침, 밥을 유리그릇에 담았다. 묵은 김치가 담겨있던 유리그릇도 통째로 챙겼다. 나무젓가락과 빈 페트병에 수돗물도 담았다. 식수로는 종이팩 생수를 골랐다. 그렇게 집에서 챙길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옮겨왔다.
이제는 돼지고기, 삼겹살 한 팩과 목살 한 팩만 있으면 됐다. 집에서 내려와 중심지에 들렀지만...아직 문 연 정육점이 안 보인다. 흐음... 그래? 바닷가 근처 어디에서 챙기자.
내 몸 속에 암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걸 몰랐을 때, 바닷가와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삼겹살과 묵은 김치는 내 인생 주말 패키지였다. 추억은 떠나지 않는다, 배신도 안 한다…
차가 인천공항고속도로를 달릴 때, 공항신도시를 가리키는 푯말이 보였다. 음~저곳에 가면 바지런히 하루를 시작할 정육점 사장님이 계실지도 모르겠군... 하며 빠져나갔으나, 이른 일요일 아침이란 걸 다시 일깨워줬을 뿐이었다. 난~처~함…
공항신도시를 빙빙 돌며 정육점을 찾아라! 하며 두 눈을 굴릴 때, 제품을 하차하는 이마트 차량이 보였다. 이마트24라 쓰인 가게 앞, 이마트쯤 되는 곳의 편의점이라면? 삼겹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예감! 그 예감 따라 들어가서는,
“혹... 삼겹살 있어요?”
“네. 두어 팩 있어요.”
차를 좀 더 몰아 바닷가를 접하고 달렸다.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뻗친 팔을 간지럽히는 바람이 상쾌했다. 적당한 자리를 잡으면… 그럼 됐다. 하지만 여긴 유럽식이 아닌 미국식 자본주의가 이식된 한국의 바닷가. 대부분의 바닷가에 펜스와 푯말 천지다. 사유지를 알리는 경고장이다. 그 펜스 안에는 어김없이 조개구이나 커피숍, 칼국수집이 보인다.
“그래! 경치 좋은 바닷가는 너네가 실컷 즐겨라!”
좀 더 가자 몇몇 텐트가 보였다. 텐트는 꽤 큰 소나무들에 안겨있었다. 그 소나무들 사이로 파아란 물빛이 보였다. 차를 길 옆에 대고 가까이 갔다. 역시 또 다른 푯말이 보였다. 하지만 내용은 뜻밖이었다.
“......”
지방자치단체 소유라는 요지였다. 따라서 캠핑이 허락되는 장소!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 경우군...”
방풍림이 끝나자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오늘이 주는 선물이다.
파아란 물이 잔잔한 바다,
작은 섬,
소나무 방풍림,
솜털 구름 여유로운 파란 하늘,
나무와 풀이 만들어 내는 바람과 소라와 조가비가 전해주는 백사장 소리...
거기에 배고픈 영혼이 챙겨온…
흰 밥 한 그릇,
물 한 통,
후라잉 팬 위에서 지글거리는 삼겹살,
그 옆에 가지런히 놓인 썰어진 양파,
그 위에 얹힌 묵은 김치,
그들이 만들어 내는 구수한, 약간은 딴 듯한 냄새...
엊그제, 3개월 정기 CT 검사에 대한 결과를 받았다. 혈액검사 결과도 같이. 혈액검사는 무난했다. 한 가지를 빼고. 갑상선 수치가 올랐단다. 아주 심하지는 않고... 평균치를 약간 상회한다는... 그럼... 뭐 걱정할 일은 아닌 거!
이어서 흉부 CT에 대한 검사 결과...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거의요, 교수님?”
“네.”
“변화가 없다가 아니고... 거의 변화가 없다군요, 교수님?”
“네.”
“어떤 일이 있나요, 교수님?”
“약간 커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요?”
이 약을 먹고 있는 게... 9년째다. 먹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시작한 시간부터 시작된 사이클…
극심한 설사-완전관해-약 중단-뼈 전이-다시 복용-암 볼륨 감소- 정체-암 볼륨 증가-용량 증가-암 볼륨 감소-약 감량-..... 그런 상투적인 사이클! 그런 단계에서....
이번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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