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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국내여행

안면도 여행

by 힐링미소 웃자 2021.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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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여행_2020_5_9

 

2020년 봄과 여름의 사이, 어느 일요일 새벽, 날씨가 몹시 좋았다. 

외출다운 외출을 언제 해봤나 했다.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운다'라고,

코로나가 무서워 집에만 틀어박혀있다가는 면역력이 엉망이 될 모양이었다.

어디든 가야 했다.

그해 2월 초부터 시작된 골방 처박힘 면벽수행의 인내력도, 이글대는 한여름 뙤약볕에 맞닦트린, 물이라고는 토끼 오줌만큼 남은 얕은 또랑 속 새끼 미꾸라지처럼, 말라비툴어지고 있었다.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정부는 물론 내 주치의도, 정형외과 교수님도, 신경과 교수님도, 동네 소아과 원장님도, 스포츠의학과 원장님도

"나다니다가 코로나에 잡히면 항암이고 뭐고 없습니다. 당신은 1순위입니다!"

라고 겁주고, 나는 "예?"라고 하면, "기저질환 어쩌고 하는 게 당신 같은 4기 다발성 전이암 환자들을 말하는 겁니다.

"본인의 주제를 먼저 잘 아시고......"

라며 집에만 있으라 했다.

하지만 또 어떤 전문가는 뉴스에 나와,

"집콕만 하다간 면역력에 치명상을 입어"

더 무서운 화를 부를 수도 있으니,

"가까운 곳으로 잠깐이라도 바람도 쐬고 운동도 하라"

고 했다.

 

어느 게 맞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내 몸이?, 영혼이? 더는 못 참을 모양이었다.

특히 새벽녘의 파아란 하늘과 스치는 살갗마다 나를 간지럽히며 유혹하는 아침 산들바람은 기어이 내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차의 시동을 걸면서 혼잣말했다,

"뭐 자연의 자가 정리 내지는 정화과정이겠지. 나 같은 놈 먼저 정리하려는?"

라고.

하지만 그 말이 너무 무서웠다.

“나만 죽으면 괜찮지만 내가 혹시 밖에서 코로나를 묻혀와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막 뿌려대면!"

나는 시동을 껐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죽어도 나 혼자만 죽어야지!"

 

하지만 페북 메신저가 울려댔다.

"Ya free? Busy?"

그 미국 위스콘신 친구다.

그는 지금 부천 처갓집에 피난 와 있다.

베이징에서 일하다 코로나에 놀라 스페인 와이프 일터로 도망갔다가, 거기도 있을 곳이 못된다며 마침 덩달아 사표 던진 와이프와 한국으로 와 대피 중인 인간이다.

 

이 친구가 2월 말부터 자꾸 꼬셨었다.

"웃자(River), 어디 인적 없는 산 속이나 무인도에 한 번 가자!".

"야, 너 코로나에 죽고 싶어?".

"웃자, 그래서 인적 없는 곳으로! 야, 내가 이러다 질식해 죽겠다."

 

그가 때맞춰 메시지를 날리고 있었다.

"Free! What’s up, dude?"

라고, 나는 답신 했다.

그는,

"Let's get away!"

라고, 사흘 굶은 놈 흘린 밥 떼기 주워 먹듯이 득달같이 대답했다.

"그래? 한번 가봐?"


진단받기 전에도 안면도를 꽤 여러 번 갔었다.

그 시절들을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며 세월 지난 비디오를 틀어본다.

보이는 장면들은 철 지난 모습이 분명하다.

펜션이라 불리는 숙박시설들도 그리 많지 않았었다.

도로도 구불구불했었다. 

바닷가도 아직은 원시적인 곳이 몇 곳 있었다.

 

접했던 사람들도 그을린 낯에 웃음을 수줍게 감추며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던 분들이었다. 

식당 문을 열면 세월의 향기가 먼저 얼굴로 와락 달려와 식탁 한편으로 그를 불러들였었다.

그 모습들은 그의 인생의 특정 시간들과 어우러져 특별한 나이테를 형성했고, 그 나이테들은 그의 뇌에 껴껴이 쌓여 의식의 중층구조를 형성하고 있을 터이다.

 

진단을 받은 뒤로는 나의 여행 취향도 통째로 변했다.

식당이 많고 펜션이 많은 데를 찾던 것에서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고 이마 가득 세월의 나이테가 선명한 토박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색 바랜 정자에 앉아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몇 층 건물이 떡 하고 버티고 있는 곳으로 향하던 것에서 몇백 년은 됐을 법한 벼락에 가지 하나 부러졌지만 아직도 그 위에, 주변에 참새며  곤줄박이, 딱새, 때까치, 박새, 방울새, 오목눈이 등이 노래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안면도 여행_2020_5_9

나는 이제는 현대식 식당에서 밥 먹는 걸 피한다.

외지 사람이 많은 식당도 싫어한다.

나는 바나나와 사과와 500ml 생수 3병을 준비해 간다. 

여행지에 도착하기 전 사과 1개 먹고, 바나나 한 개 먹고, 물 한 병 마신다.

더 배가 고프면 가장 오래된 부동산을 들르거나 아니면 동네 어른을 찾는다.

그리고는 그 동네분들이  즐겨가는 곳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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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입이다.

잠깐 쉬었다.

나는 벤치에 앉았고, 나의 친구는 굵고 가는 모래가 있고, 발을 디디면 부드러운 첫사랑의 감미로운 손길 같은 갯벌이 있을 바다로 향했다.

나의 친구가 잠시 소리쳤다.

"Crabs! Crams!"

작고 앙증맞은 게가 반갑고, 조개들이 좋았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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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옮겼다.

다리를 하나 건너니 태안군이다.

그리고 안면도다.

다른 차들이 향하는 길에서 벗어났다.

나도 친구도 그걸 원했다.

보이는 풍경이 좋았다.

항구가 보였다, 조그만.

 

안면도 여행_2020_5_9

 

한동안 머무니 차들이 연이어 들어온다.

떠날 때가 된 것이다.

또 다른 곳엔 큰 오토캠핑장이 보였다.

궁금했다.

 

가까이 가니 익어가는 삼겹살 위에 묵은 김치를 얹어 마저 볶아댈 법한 냄새가 코를 통해 뇌에 이르러 허기지다는 명령을 입과 위로 내려보내고 있었다.

"여기요~안녕하세요? 여기요, 얼마나 해요?"

나는 들어갈 것도 아니면서도 애써 물어봤다.  

그 매표소 사람은 나를 한 번 내려다 보고, 내 친구를 한 번 올려다봤다. 

 

그리곤,

"요즘은 일박에 3만 원입니다. 들어오세요~" 

그가 그 속으로 들어갈 일은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흘린 김밥 한 줄을 누가 볼까 봐 후딱 집어 들듯이 거길 황급히 벗어났다. 

그다음 다다른 곳은 별천지였다. 

아직 원시가 남아있는 듯했다.

 

안면도 여행_2020_5_9

 

이제 슬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지막지한 교통체증을 피할 요량이라면 동지 뜨기 전에 집을 출발해 점심이 되기 전에 빠져나오는 게 상책임을 그는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아까 지나쳤던 오토캠프장을 다시 지나쳐 휭~! 하고 가려던 참에 길은 있는데, 인적도 차도 없는 논 가운데 난 길이 보였다.

나와 내 친구의 눈이 부딪쳤다.

"Let's give it a try!"

그가 소리쳤다.

나도,

"그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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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천지란 이런 광경을 말하나 보다.

입이 있어도 말은 안 나오고 그저 쫙 벌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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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걸어도 사람이 없다.

내 친구는 바다를 향해 내 달렸다, 두 팔을 벌린 채.

정신이 나간 놈 마냥.

 

안면도 여행_2020_5_9

 

나도 맘은 그랬다.

하지만 뛸 수가 없다. 

한쪽 발은 날아갈 수도 있는데 나머지 다리는 갓난아기 아장아장 바드시  앞으로 내디딜 여력밖엔 없는걸... 그래도 입은 그를 따라 내달렸다.

"야야야야> 야~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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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는 바닷가 해변 곱디고운 모래밭에 누우려 했다.

"이미 내 몸은 네 놈보다 먼저 누웠어"

나의 맘속에서 나왔던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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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이다, 그 친구가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야! 나 진짜 조개구이 좋아해. 중국에서도, 스페인에서도 먹었어."

"거기도 조개구이 해주냐?"

"한국하고는 다르지... 어쨌든 조개요리는 무지 먹었어."

그 친구 말을 무시하고 그냥 가자면 서울에 다 도착할 때까지 투덜거릴 요량이었다.

"야, 저기 칼국수 집이 있다. 저기 가면 바지락 칼국수가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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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이건 막 껍질을 벗은 바지락들이  한두 개도 아니고 집단으로 칼국수 그릇에 콩나물 대가리인 양 일렬로 서있는 게... 왜 이 집이 임대폿말 붙어 있는 옆 가게들이 파리를 날리고 있는 동안 발 디딜 틈도 없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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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배도 부르고...

진단 후 먹어 오고 있는 무농약 상추며 케일 또는 브로콜리가 무항생제 고기와 어우러져 살이 되고 뼈가 되고, 그래서 세포며 림프절이며 뼈 마디마디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좋은 먹거리가 바이러스며, 박테리아며, 암세포에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게 한다면, 내가 보낸 그날의 추억이나 경험도, 마치 옛 추억이 지금도 여전히 나의 의식에 새겨져 있는 것처럼, 내가 힘들거나 슬플 때, 그래서 좌절이 밀려올 때 지치지 않을 에너지원이  될 게 틀림없다. 그러니 여유로운 풍경과 함께 했었던 길바닥 위의 여행이란 게 좋은 추억으로, 정서로 변해 내가 먹어오고 있는 착한 먹거리와 어우러져 더 막강한 면역력을 만들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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