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논리적으로 하고 싶었어.
내일 수술은 어떻게 할까?
몇 시간이나 걸릴까?
폐에 있는 암 덩어리들도 같이 하려나?
수술 후엔 항암제를 하라고 하려나?
수술하고 항암제 하면 완치되는 걸까?
뭐 그런 생각들을...
하지만 현실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
그때 심정이란,
‘갑자기 발밑을 보니 천 길 낭떠러지가!’
그런 상태였어.
내가 불안한 상태란 걸 알기라는 하는 양
마음 깊은 곳에서 부드러우나 근심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렸어.
“푹 자.”
“잠이 안 와. 아까 면도한 곳들이 좀 쓰라려.”
“면도?”
“어. 가슴부터 무릎까지…. 앞뒤 다.”
“어디? “
나의 본능은 나의 이성보다 늘 먼저 일어나는 듯했어.
“잘 잤어?”
“그저….”
“드디어 오늘 2시에 수술이네?”
“그러게.”
“우리가 C 병원에서 이곳으로 병원을 옮기려 했을 때,
이렇게 빨리 수술할 수 있을 줄 알았겠어?”
“…….”
“이 C 교수님, 이 분이야 권위자라고 하잖아?
거기다가 서둘러 수술 날짜를 잡아주시고….
그러니 힘내!"
그날 오후로 예정된 수술에
대해 될 수 있으면 이러저러한
생각이나 추측을 하지 않으려 애썼어.
그게 별 의미가 없을뿐더러,
마음의 평정만 깰 거 같아서.
그렇게 새로운 아침을 맞았어.
머지않아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병원에
도착하셨어.
그렇게
세 명이서….
하지만 난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병원에 계시는 건
그분들의 건강을 위해
안 좋을 거라 생각이 들었어.
거절하시는 부모님을 설득해서
밖에 머무르시게 했어.
더군다나 오후 2시라니
한참을 병원에 머무르셔야 하는데
70대 후반의 어르신들께는 가혹한 일이었어.
40 대 중반인 아들이 암이란 것도
부모들 입장에서는
놀라고도 남을 일이지만
이미 다른 장기로 옮겨간 4기에다가,
그 장기가 폐이고,
그것도 20개가 넘는 종양들이
이미 폐에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정신이 온전할 부모님들이 얼마나 될까?
나의 이성은 병실에 머물며 오늘의
수술이 잘 진행되길 기도하는 듯했어.
난 본능이 상할까 걱정이 됐다.
요 며칠간 내 몸이 전이암 4기라는
숨이 멎을 쇼킹한 소식과
이 병원 저 병원에 전화에다가
입원에, 수술에 지친 이성을 보듬었을 나의 본능….
“이제 좀 생각을 멈추고, 논리를 좀 멈추고 쉬지 그래?”
나는 밀어내듯 스스로에게 말했어.
“그럼 그럴까?
어쨌든 아침, 새로운 날의 시작이잖아?.”
하지만 나의 이성은 그날 아침을
여적까지의 아침, 익숙한 아침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
나의 이성이 본능을 쫓아 막 병원을 나가려는데
갑자기 한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셨어.
그리곤,
“환자분께서는 수술실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놀란 내 본능은 엉겁결에 입에서 말이 나오게 만들었어.
“예? 2시 아니던가요?”
“수술이 앞당겨졌습니다."
이성이 앞섰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었겠지,
"어차피 할 수술, 빨리할 수 있어 다행이네요."
라고......
나의 본능은, 하지만, 여전히
당황하고 있는 듯 보였어.
하지만 어느새 나의 이성은 다행이라 생각하기 시작했어.
어차피 할 거라면 빨리하는 게 홀가분하고,
집도의나 수술진들도 첫 수술일 테니
좋은 몸 상태일 테고......
나의 그런 생각은 나중에 안 거지만
틀렸을 수도 있었어.
오후 2시에서 아침 8시로 옮겨진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야.
내가 수술을 다 마치고 나온 시간은
아마 오후 2시경이었을 거라고
나중에 시계를 흘낏 봤었다는 걸 기억한 후 알았어.
그러니까 거의 6시간을 수술실에 있었던 거야.
나의 몸은 얇은 천에 감춰진 채
이동식 침대 위에 눕혀져
긴 복도를 따라 옮겨졌고
잠겨있던 문 2개를 통과해
어느 실험실 같기도 하고
홀 같기도 한 큰 공간에 놓였어.
거기는 차가웠어.
몸이 으스스 떨렸어.
청색 마스크와 옷을 입은
3~4명 남녀 선생님이 보였어.
그들은 창백하고 청결한 인상이었어.
그들은 젊었어.
그들은 건강해 보였어.
그들은 아름다웠어.
건강함은 아름다움이란 걸 그때 알았어.
그중의 한 명이 입을 열었어.
“안녕하세요?”
그중의 또 다른 이가 말했어.
“기분이 어떠세요?”
창백하고 청결한 그들에게서
따스함과 온기가 피어올랐어.
“편하게 생각하세요.
좋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
가장 창백해 보이는 인상이 말했어,
미소와 함께.
‘아 미소란 참 좋은 거구나.’
난 다짐했어.
‘내가 수술실에서 살아있는
몸으로 나온다면
언제나 미소를 지을 거야.
그때도 그 후로도.
그래. 미소는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찬사야!’
이제는 그 모두가 서서히 내 몸 주위로 왔어.
그중 한 명이 입을 열었어.
“지금 특히 불편하신 점 있으신가요?”
"아니오..."
그는 그 후로 투명한 미소로
한 문장의 말을 더 내게 보내는 듯했지만,
나는 어느 미소로도
어느 말로도
답할 수 없었어.
내가 기억하는 그분의 다음 말은
“자 이제 마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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