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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11년 암 진단, 4기, 전원, 첫 번째 수술, 좌절

암삶 19-신장암 4기 폐전이, 휴식없는 과로와 암, 무얼 위해 하루에 15~16 시간씩 일했나요?(2011년)

by 힐링미소 웃자 2021.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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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근무환경에 발암 요인으로 짐작되는 게 있나요?”
“발암 환경...?”
“예. 무슨 특정 금속, 이를테면 배터리나 페인트가 있는 작업환경 같은….”
“아니요!”
“그럼 다른 카드뮴 함유 물질은?”
“제 근무환경이…?”
“예 어떤 특정한 물질들은 신장암과 어느 정도 관련 있다는 연구도 있답니다.”
“아닙니다. 제 기억엔 없습니다.”

그 수술 코디네이터는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항상 그런지 궁금했다.

난 시종일관 미소 짓는 얼굴이 좋다.

그게 포커페이스 건 뭐건......

미소는 전연성이 강하다.

마주한 사람의 얼굴에도 미소를 피우게 만든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분을 업시킨다.

‘이 분은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는가 보구나..."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설문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설문지 속의 대부분의 문항은 추가적인 질문이 필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음주 경험, 흡연 경험과 근무환경에서만큼은 그분의 개입이 있었고…….
또 문답도 이루어졌다.

 

 


난 나의 근무환경을 생각해봤다.

 

유해물질?

거의 없었어.
소음?

문제가 된 건 아녔어.
그럼?

대인관계?
그건 너무 좋았어.

난 지금도 그때 그 동료들을 그리워한다.

그들 중 일부와는 지금도 꾸준히 만나고 있다.

멋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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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난 항상 생각했었다.

"이들과 평생 근무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하루면 몇 번이고 들곤 했었으니 난 그 직장에 아주 많이 만족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옛 직장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은, 그 생각과 함께했던 달콤했던 회상은 그 코디네이터의 돌발 질문에 놀란 반딧불이 되어 날아가고 있었어.
“혹시 장시간 근무하셨나요?”
“장시간!”
“예. 어떠셨어요?”
‘장시간’이라는 그 코디네이터의 말에 나의 치열함이 다시 꿈틀댔다.

 

하지만 이젠 더 현실이 될 수 없으리란 자각도 함께 오며, 일은커녕... 몇 년이나마 더 사는 게 이상이 되어버린걸….
“예.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랬던 것... 요?”
“예.”
“몇 시에 출근하셨어요?”
“일주일에 3일은 5시이요.”
“오후?”
“오전.”
“새벽?”
“새벽인가요?”
“그렇지 않나요?”
“…….”

 

 

 

 

난 일꽤나 하는 사람들, 미래를 위해 돈을 모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랬었기 때문에 초과근무라든지, 강제 근무라던지, 과로라던지... 그런 개념이 없었다.
“퇴근은?”
“9시나 10시?.”
“오전? 단기 근무형태이었나요?”
“그게 뭐예요?”
“왜 노동관계법에... 탄력근무제라는 게 있잖아요?”
“그래요? 아니요.”
“그럼…. 밤?”
“예.”
“그럼 총 15~16 시간 근무?”
“아마...”

 

당시 나의 근무시간과 형태에 대해서 한 번도 고민이나 회의를 했던 적이 없었다.
“격일로요?”
“주 3일요.”
“그러니까…. 월수금은 출근시간부터 계산해서 하루에 15~16 시간 근무하시고 다음 날은 휴무였다는?”
“아니요. 다음날도 일했어요.”
“…….”
“왜 그러세요?”
“그렇게 길게요?
“긴가요?”
“그럼 몇 시간 일해야 길은 건 가요?”
“그럼 일주일의 나머지 2일은 얼마나 근무하셨어요?”
“아! 나머지 3일요.”
“그럼 주 6일요?”
“예.”
“…….”

그 코디네이터는 나에게 물 한 잔을 권했다.
그리고 나를, 내 몸을. 내 머리 위를, 내 두 손을, 나의 앉아있는 모습을... 훑어봤다.
난 복사기 위의 페이퍼가 되고 그의 눈빛은 빛이 되고.

“아마 11시에? 아마 그쯤요.”
“그럼 퇴근은?”
“집에 오면 11시 정도요.”
“토요일은... 요?”
“아마 아침부터 오후 6시?”
“매주요?”
“거의 매주요. 사실 어떤 땐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그녀의 잔잔했던 미소는 어느새 무표정해졌다는 걸 나는 눈치챘다.

그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나지막이 물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일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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