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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11년 암 진단, 4기, 전원, 첫 번째 수술, 좌절

암삶 20-4기암, 신장암, "환자분은 암을 부르셨군요", 신장 전절제, 수술 준비 (2011년)

by 힐링미소 웃자 2021.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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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어떠셨는지요?”
“식사요?”
“예. 어떻게 드셨나 하는 걸 간단히 물어보겠습니다.”
“예”
“아침은 규칙적으로 드셨나요?”
“그런 편이었어요.”
“그런 편? 어땠나요?”
“월수금 아침 5시에 출근해야 했던 날은 7시경 라면을 먹었어요.”
“아침으로 라면요?”
“예. 공깃밥 하고요.”
“반찬은?”
“ 없이요. 짬뽕 라면이라고 있었어요. 해산물이 꽤 들어갔었지요.”
“……”


나의 아침 식단을 생각해봤다.
사실 아침은 3가지 패턴이 있었다.
5시에 출근해야 했던 월수금은 아침 7시부터 7시 30분까지 짬뽕 라면으로,
화목엔 집밥,
토, 일요일엔 해장국집에서 사 오곤 했던 뼈다귓국.


점심은 어땠을까?
월수금엔 도시락 밥으로,
화목토엔 분식집에서 배달한 거로 하곤 했었다.
저녁 식단은 생각이 나질 않아.
그만큼 안 먹었다는 뜻이겠지….
‘내가 도대체 제대로 먹고 나 산 것이야?’
지난날에 대한 회상은 그 코디 선생님의 개입으로 끝났다.


“드시는 게 부실하셨군요.”
“……”
“저녁은 어떠셨어요?”
“저녁요?”
“예.”
“거의 안 먹었습니다.”
“그럼요?”
“밤 9시나 10시에 일 끝내면 동료들과 술자리를 갖곤 했습니다.”
“예?”
“예.”
“아까 말씀하시길, 월수금엔 아침 5시에 출근하셨다면서요?”
“예.”
“그럼 밤 10시나 11시부터 식사는 안 하시고 동료들과 술을 드시고…. “
“예. 종종요?”
“종종… 다행이네요. 매일 아니어서.”
“매일 그랬으면 죽었겠지요….”


“하지만 환자분은 건강을 버리기로 작정하셨던 분 같네요.”
“예?”
“ 예를 들어, 월요일 아침 5시 출근, 7시에 아침으로 라면, 점심은 도시락 밥이나 분식점에서, 9시나 10시부터 술, 짐작건대 12시 넘어 귀가. 그런가요?”
“가끔요…”
“또 화요일에 9시나 10시에 일 끝내시고,
저녁은 거른 채 동료들과 술!
그리고 12시 넘어 귀가. 그리고 다음날 5시에 출근. 그랬나요?”
“어쩌다요… 화목 밤 술은.”
“그럼 잠은요?”
“한 4시간요.”
“얼마나 오랫동안 그런 패턴으로 생활하셨어요?”
“한 6년요.”
“그 후엔?”
“그 후 한 5년 동안은 좀 더 빡빡한 스케줄이었던 것 같아요.”
“……”


그 코디 선생님은 눈길을 나로부터 천장으로 잠깐 돌리는 듯했다.
“왜요, 선생님?”
“환자분이 암에 걸린 건 필연이군요, 이런 말씀드려 죄송하지만.”
“그런가요?”
“예! 혹시 규칙적으로 운동은 하셨나요?”
“아니요.”
“예상대로 이군요. 과로에 흡연, 음주에 부실한 식생활!”
“……”
“암은 일반적으로 면역체계가 붕괴되어서 생긴답니다.
환자분의 그런 생활패턴은 암을 애써 부른 겁니다.”
그분의 말씀, 내가 암을 부른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씀에 난 풀이 죽었다.
그 장면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이게 끝나면 뭘 해야 하나요?"
"다음 절차요?"
"예."
“안내된 절차를 마치신 후 귀가하시고...
수술 전날 미리 오셔서 입원하시면 됩니다.”
“예.”
“수술 날짜는 언제인가요?”
“안내받으신 대로 다음 주 목요일입니다.”
“아 참 그렇지요.”


나는 ‘수술’, ‘입원’이라는 단어를 들으면서
다시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운명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 공포, 불안,... 그런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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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만 하면 다 잘 될까요?”
“글쎄요… 저는 그런 것들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그래도 경력이 오래된듯하신데... 좀 알지 않으세요?”
“수술 후의 일, 예후는 교수님께 여쭈시면 됩니다.”
수술 코디네이터의 이제까지의 부드러웠던 말투와 표정은
그 말을 할 때만큼은 단호하게 바뀌었다.

“예…”
“혹시 수술 경험은…?”
그 코디의 말투는 다시 부드러워졌다.
“고 1 때 축농증…”
“또…?”
“임플란트 수술요.”
“언제?”
“몇 년 전에요.”

“그밖에 다른?”
“수술은 아니고, 한 7년 전에 제 차 전복사고...”
“자동차 전복사고요?”
“예.”
“전복이라면... 많이 다치셨겠네요?”
“아니요. 운전하다 뭔가를 들이받았다는 희미한 기억은 있었던 듯한데...
그다음 날 깨어났다더군요.”
“의식을 잃으셨군요?”
“예! 남들이 다 기적이라더군요.
거의 20미터 높이의 고가 차도였습니다.”
“어머나!”
“경찰 말에 의하면, 그곳에서의 몇 건의 사고는 다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더군요.”
“환자분은?”
"튕겨 반대편 차로로….”

이 말을 하면서 내 머리에 있던 그 사고와 관련된 이러저러한 복잡한 기억들이
한여름의 격렬한 소나기처럼 나의 텅 빈 가슴속으로 쏟아져내리는 듯했다.
잠시 멍한 눈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맞은편 PC의 모니터에 보였다.
마우스를 쓰다듬던 그 코디네이터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운이 좋으셨군요. 이 신장암에서도 기적이 일어나길 빌겠습니다.”
그분의 너무도 고마운 말에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기적이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다는 소리로도 들렸고….

그 코디네이터는 남아 있는 이러저러한 설문에 내가 마킹하는 걸 흘끗흘끗 보는 듯했다.
는 알레르기 유무 등을 마지막으로 설문과 문답을 마쳤다.
그 코디네이터는 입원에 관한 기타 안내를 끝으로
나와의 면담을 정리했다.
그녀는 애써 문밖까지 나를 배웅했다.

“좋은 일만 있으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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