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후 며칠간 수술 준비 차원에서 많은 검사가 이루어졌다. 그중에서 내게 제일 곤혹스러웠던 것은 조영제를 사용한 검사들이었다. 난 조영제에 대한 부작용이 이미 ‘심각한 중증’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조영제가 있어야 하는 검사는 강행되었다. 나의 부탁에 대한 의료진의 대답은 아주 간단명료했다.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검사들이며, 그 검사 내용은 정밀하게 이뤄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조영제 없는 MRI, CT, PET-CT를 상상이나 할 수”있었겠냐? 였다.
난 100% 그분들의 말에 동의했다. 합리적인 설명이지 않은가! 단지 난 그 부작용이 두려웠을 뿐이었다. 어쨌든 나의 팔에는 조영제 주사용 큰 바늘이 꽂혔다.
다음날 이뤄지는 검사과정에서 어김없이 나타난 부작용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참 지독했다. 아침에 예방용 주사 1방, 링거에 칵테일로 또 한 번, 촬영 후 후처치용 주사 한 번, 링거 1개로 이뤄진 세트가 내 몸에 투여됐다. 그런데도 온몸에 난 두드러기며, 시간의 흐름과 같이 왔던 목구멍이 막힐 정도의 팽창 등이 시차를 두고 따라왔다. 거의 질식 일보 직전까지 가는 한 편의 어드벤처는 생사를 가르는 듯했었다. 한두 번 경험하는 게 아니었다. 암이 말기가 되어 죽으나 조영제 부작용에 의한 쇼크로 죽으나 어차피 죽는 것, 기왕이면 쇼크로 죽는 게 더 간단하게, 편하게 죽는 게 아닐까? 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솔직히…. 잠시나마 쇼크사를 염원했었다.
실패였다. 죽음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는 안 오나 보다!
이어지는 회진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주치의께서는 관련된 의료진과 함께 내 병상을 찾으셨다. 난 “이분이 참 좋다!’란 생각을 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에 딱히 논리적인 이유 같은 게 있어야만 하겠는가! 한번 좋아지면, 설령 어떤 때는 내게 미운 짓을 한다 해도, 싫어지지 않는 걸 보면, 나란 인간은 참 비합리적인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머뭇거리건 주치의께서 어렵게 입을 여셨다.
“환자분께서는 정형외과로 전과하십니다.”
“예?”
라고, 나는 나의 주치의에게 되물었다.
“예…. 일단 정형외과 쪽에서 이번 수술의 모든 걸 수행할 겁니다.”
“예? 교수님, 제가 바로 전에까지 알고 있었던 내용과 너무도 다른데요.”
“어떻게... 요?”
“급속동결치료나 고주파열치료로 암 덩어리를 없앤 후, 바깥쪽 뼈에 보호대를 해서, 제 다리뼈를 살리신다고...”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비뇨기과에서 나오셨던...”
“아! 그게 확정된 게 아녔고... 여러 가능성 중의 한두가지였었습니다.”
“예? 그럼 왜 그 변경된 내용을 제게 말씀 안 해 주셨나요?”
“어…. 미안합니다. 어쨌든 클리어하게... 깨끗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며, 그의 뒤에 서 있던 의료진을 쳐다봤다.
“클리어하게”
라는 주치의의 말씀이 하필 내 정수리에 박혔다, 이마를 관통해서!
의사들이 수술에 앞서 '클리어하게'란 단어를 쓸 경우, 열 중 아홉은 암을 떼어내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관련된 일체를 도려낸다는 의미란 것을 난 안다. 암은... 먹고살아야 하니... 당연히 영양분 파이프라인이 필요하고, 그래서 신생혈관을 끊임없이 만드다고 한다. 물론 그것에도 하계는 있으리라. 급조한 것들치고 튼튼한 게 어딨으랴! 그 혈관들 부실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어쨌건... 그 혈관들도 암의 일부분일 수 있다. 그러니 그런 것들까지 싹 도려내고 싶을 때, 의사들은 '클리어하게'라는 표현을 쓰고 싶을 것이다.
시간은 흘렀고, 내 병상 위, 내가 누우면 보이는 사물함, 에 꽂혀있던 내용이 달라졌다. ‘정형외과’로! 전과가 이뤄진 것이었다. 그 후로는 정형외과 쪽 전문의들이 내게 오고 가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시간,
“다리를 잘라내야 합니다.”
“예?”
“아니, 정확히는 뼈를 잘라내야 합니다.”
“뼈요? 다리뼈요?”
“예!”
“얼마 나요?”
“대략 10센티에서 15센티 정도?”
“아~아~……. 휴~우우”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내가 다발성 폐 전이로 진단받은 지 5년이 막 지난 시간에 찾아온 또 다른 절망은, 그 절망은 내 눈에서 눈물마저도 거둬가 버렸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었는데...
믿어지지 않는 사실은, 나로부터 삶에 대한 마지막 남은,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희망마저도 거둬가는 듯 보였다는 것이었다.
“엊그제 조영제 쇼크 부작용으로 갔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휴~~ 우!”
들숨의 시작은 늘 길지만, 그 숨이 내려갈 수 있는 가장 낮은 점까지 도달한 후에 나오는 날숨은 언제나 짧고 간명하다. 특히 그 온갖 슬픔을 다 거둬들여 만드는 큰 들숨에 비하면.
나는 어느 순간, 의료진이 말하는 걸 들어도 들리지 않았고, 수술 안내지를 봐도 보이질 않았다. 머리의 회전은 멈췄다. “지금 내가 이 모습으로 병실을 나서서 복도를 거닐고, 병원의 뜰을 거닌다면, 영락없는 실성한 사람의 모습 이리라!” 하필 그때 든 생각이었다. “그러니 멀쩡한 사람과 실성한 사람 간의 간격이, 차이가 이리도 얇다면?”, “같은 사람이 어떤 땐 멀쩡하기도 실성하기도 하는가 보구나...” 와 같은 말을 정신 나간 사람 마냥 중얼거리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했다.
나는 진작에 오래 사는 걸 포기했었다. 진단받고 1년 반 남짓 미친 사람처럼 고민하고, 좌절하고, 자살을 생각해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건만…. 어느 순간부터 다 내려놓고 순리를 받아들이기로 마음의 정리를 했었다. “더 살아도 좋고 이제 가도 좋고! 나보다 훨씬 덜 살다 가는 이들이 한둘이랴! 이만큼 살았으면…. 어쩌면…. 운 좋게도 오래 산 것도 아니겠는가!”라고 되뇌며 살아온 5년 세월이었다.
‘어디 세상일이 내 뜻대로 되겠냐? 마는...’
혼란스러운 맘과 멍해진 머리의 종착역은 한 가지 질문으로 정리가 되었다.
“선생님, 저를 수술하실 교수님은 언제 이 병실에 오시나요?”
“교수님이 지금 수술 중이셔서, 새벽부터 시작된 수술인데, 또 다른 수술이 있으시고...”
“그럼 제가 오늘 못 뵙나요?”
“아... 니... 요. 교수님께서 우선 저를 환자분께 보내셨고요…. 교수님 대신 간단히 수술에 대한 말씀을 드리라고.”
“......”
“오늘 수술이 다 끝나신 후 들르신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 어쨌든 고맙습니다.”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시간이 흘렀고, 꼭 동네 더벅머리 같은 스타일의 정형외과 교수님은 파뿌리가 되어 내 병실을 찾으셨다. ‘이분을 언뜻 뵈면 의사가 아닐 거라고 짐작하는 이들이 아마 100명 중 99명은 되리라”라고, 난 생각했다. “참 수수하고... 캐주얼한 대화 스타일이야”란 생각을 했다, 그가 내게 설명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리를 많이 잘라낼 겁니다. 아니, 뼈를”
“왜지요, 교수님?”
“퍼졌을 수도 있으니, 충분하게 잘라내야지요.”
사실 지난 두 번의 수술에서 들었던 설명만으로도 그런 사실은 내겐 일종의 상식이 되었다. 암이 있는 부위로부터 그 밖으로 충분히 절제한다는 것! 하도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을 뿐.
“잘라낸 후 기증자 뼈로 대체할 겁니다. 1% 정도에서 감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2주 정도 병원에 계셔야 하고, 한 달 정도가 되어야 걸을 수가 있습니다.”
난 갑작스레 두려워졌다. 불현듯 “내가 못 걸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면? 등산은? 난 등산을 몹시도 좋아했었다. 원초적인 분위기를 좋아해서였다. 어떤 인공물도 없는 원시 상태를. 난 폼을 잡기 위해서 이 산이니 저 산을 오르진 않았었다. 난 유명하지 않은 산을 골라서 올랐었다. 아니 ‘올랐다”가 아니라….’ 들어갔었다’였다. 내가 어떻게 날 이 세상으로 보낸 시원의 숲을 오른단 말인가? 내가 그리워 다시 찾아갈 뿐! 내가 너무도 좋아했던, 풀이며, 낙엽이며, 벌레며, 곤충이며…. 너무도 편한 세상! “그걸 이제는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자 난 물었다.
“교수님, 등산은요?”
“참 태평도 하시네요.”
“네?”
“... 등산은 못 하시고, 야산 정도는 모르겠네요...”
“예-에-에?”
내 기분이 어쨌든 그 교수님은 설명을 이어갔다.
“한 10년 정도는 내구성이 있고요, 아니, 아마 5년?”
“그럼요?”
“그 이상 사신다면 갈아껴야겠지요.”
“죽은 사람의 뼈인가요?”
“그럼요. 그래도 걱정은 마세요. 다 처치하고 잘 관리된…. 냉동시켜서…. 뼈입니다.”
“인공물은 없나요?”
“인공 대체물은 없습니다.”
“......”
“잘 되면, 목발 짚을 정도가 되시면, 퇴원하셔도...”
벌이 내 귓전에서 위이잉~윙윙~댔고, 나 없는 몸에 귀신이 들어와 대신 말하는 것과 같은 환상 속에서 난 한 가지는 꼭 물어야 했다.
“고주파 열치료 등의 말이 있었는데...”
“환자분의 대퇴골 상태에는 적용이 안 됩니다. 암 덩어리가 1cm에서 1.5cm 정도라면 모를까. 환자분의 암 덩어리는 거대합니다. 오죽하면 10~15cm나 잘라낼 거로 예상하겠습니까?”
“예...”
“급속 동결도 답이 안 됩니다. 그냥 긁어내고 지지대를 해도 되나, 근본적인 게 못됩니다. 그럴 경우, 현재의 상태로 봤을 때 1~2년 후에 재수술하셔야 합니다, 그전에 돌아가시지 않는다면...”
병상 위에는 수술동의서가 놓여있었다. 부속물 기증 동의서도 놓여있었고.
“이런 것들 대신에 내 사망진단서가 놓여있었으면….”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일 아침 8시에 수술이 진행될 예정입니다!”라는 말을 남기시고,
그 교수님과 일행은 총총히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날 밤은 참 길었다.
이튿날 부산하게 왔다 갔다 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환자분, 이동하실 시간입니다.”
놀란 내 눈에 7:30분임을 알리는 맞은편 벽에 걸려있는 시계 소리가 들렸다.
내가 탄 휠체어는 대기실로 옮겨진 채 덩그러니 멈춰 있었다. 그러길 한참, 수술실로 옮겨질 시간이 되었고, 휠체어는 다시 제일 모퉁이에 있는 방으로 들여졌다. 그렇게 내 몸은 또다시 수술실로 옮겨진 것이다. 모든 걸 얼릴듯한 수술실의 하얀 냉기와 새파랗게 시린 분위기가 내 몸과 혼을 제압하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의 두 여자가 내 침대 양옆에 앉았다. 웃으며 인사하는 그분들의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나옴을 보았다. “이제 날 적막의 세계로 데려가겠지”라는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 6시간용 마취제 입….”
그 문장이 채 다 끝나기도 전...몇 마디만 귓가에 아련해지며 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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