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약의 흔적이 사라지면서 통증이 다가왔다. 하지만 참을 만한 통증이었다. 그래서 누워있으면, 눈곱만 한 약을 먹고, 별거 아닌 통증인 듯했다. 하지만 여러 약 중에서 그 눈곱만 한 게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다, 간혹 찾아오곤 했던 간호사께.
“그거요? 마약성 진통제예요.”
“마약성요?”
“예. 마약성요.”
“그럼 혹시 중독성요? 평생 먹어야 하나요?”
“무슨요!”
“어감이 안 좋아요.”
“뭐가요? “
“마약! 요.”
“왜요?”
“왠지 범죄, 중독…. 그런 음습한 이미지가...”
“환자분, 상상력도 참...”
“......”
“끝에 ‘약’이 있잖아요? 그럼 약이지요.”
“......”
“그분들이 하는 걸 마약이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그럼?”
“각각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지요. 그리고 그런 것들을 의사가 처방해주던가요?”
“글쎄요.”
“글쎄 요가 아닙니다. 환자분께서 드시는 건, 의학적 필요에 의해서 의사들이 처방해주는 약입니다. 그분들의 그런 것들과는 완전히, 개념부터가 다른 겁니다.”
그럼 내가 왜 참을만한 통증에 마약성 진통제를 먹어야 할까?
“선생님, 별 통증도 아닌데…. 왜 마약성 진통제를 먹어야...?”
“하하하, 별 통증요?”
“예.”
“별 통증이 아니고, 그 약을 먹어서 통증을 못 느끼시는 겁니다.”
“......”
“몸에는 엄청난 통증이 있지만…. 뇌를 속이는 거지요. 그 약이.”
“그런데, 왜 제 몸에 통증이 그렇게 심해야 하나요?”
“아직 모르세요?”
“예.”
“수술하신 교수님께 못 들었나요?”
“아직요.”
“아, 그럼 오시면 한번 여쭤보세요.”
“......”
“왜요? “
“선생님이 말씀 좀 해주시지요...”
“제가 수술을 한 게 아니라서…. 곧 교수님이 오실 겁니다.”
“…….”
수술 후 내 몸은 2인실로 이동되었다 했다. 하지만 내가 눈을 떴을 땐 옆에 아무도 없었다. 결국 1인실 같은 2인실에 있었다, 1박 2일 동안은. 1인실도 아니고 다인실에 덩그러니 혼자 누워있는 것보다는 , 아마 옆에 누가 있어, 말동무라도 있으면, 아니면 최소한 그 가족들과 그 환자 사이의 대화에 천착하다 보면 입원생활을 한결 가볍게 할 수 있으리라. 사실 가볍다기보다는, 우선은 나도 모르게 시간이 흘러가 버린다, 내 경험으로는. 시간이 가면 아픈 마음과 함께 수술의 상처도 아물 것이니, 그건 어쩌면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이틀째 날, 오후 내내 창밖에 머물며 때 이른 열기를 뿜어대던 초여름의 해도, 인생도 피었다 지는 덧없음 이리라고 가르치기라도 하는 듯 정처 없이 너울대던 하얀 뭉게구름도 창가에서 물러갈 즈음, 그래서 온갖 번잡했던 일상을 까맣게 덮어 거둬갈 어둠이 어김없이 또 몰려올 때쯤, 누군가 이사 왔다. 난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보았다. 하지만 그는 날 보고도 본체만체했다. 그저 흘끗 봤을 뿐이었다.
그의 이마에 수도 없이 패인, 때로는 깊은, 때로는 얕은 주름의 너울은 그의 인생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았음을 말하는 듯했다. 나보다는 인생의 달고 씀을 겪었기를 강산의 변화가 두세 번은 더 했었을 듯 보였다.
내가 물끄러미 보며 안녕하세요?라고 했음에도 답례가 없는 걸 보면, 맘이란 건 남한테 함부로 주는 게 아니란 걸 무수히 체험했던지, 아니면 무언가에 속이 틀어졌어도 한참 틀어졌음이 틀림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그저 나의 상상일 뿐…. 하기야 그 어느 누가 병원에 입원까지 해야 하는 마당에 헤헤거리거나 히죽히죽 댈까마는. 이를테면 나 같은 반은 정신이 나간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가 팔을 움직일 때마다 그의 얼굴에 보이는 고통은, 최소 70년 동안은 그의 충실한 도구가 되어주었을, 오른쪽 팔에 이상이 있다는 걸 말하는 듯했다. 움직임도 부자연스러워 보였을뿐더러 통증도 아주 심한 듯했다. 검게 탄 피부는 그가 도시 사람이 아니란 걸 말해주고 있었다. 밭고랑에 온종일 얼굴을 묻고 고추밭의 잡초를 꽤 뽑아댔던지, 거친 바다 위에 띄워진 낙엽만 한 배 위에 그의 삶을 얹혀 그물과 얽히고설킨 채 한평생을 보냈을 게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상체를 비스듬히 침대에 기댄 채 그의 팔 한쪽을 힐끔힐끔 보며 나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봤다. 그의 팔이나 내 다리를 보며, ‘아, 여기는 분명 정형외과 환자들이 모이는 병동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정처 없이 나불대고 있을 때, 수술 전에 뵈었던 정형외과 교수님이 열린 문으로 경쾌하게 들어오셨다. 얼굴은 피곤함이 짙게 배어있었지만, 그의 몸놀림은 예의 그 경쾌함 그대로였다. 얼핏 보면 마른 멸치 같은 그의 몸이 수술대 위에 놓인- 때론 거구의, 때론 늘어진 채 무거워진- 환자의 뼈 여기저기를 자르고, 망치질하고, 붙이고 하는 힘겨운 일을 감당이나 할 수 있을지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안녕하세요? 좀 어떠세요?”
“한쪽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요? 이미 예상하시지 않으셨던가요?”
“예?”
“제가 수술 전에 한쪽 다리뼈를 꽤 자를 거라고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교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긴 했었지만...”
“......”
“하지만…. 진짜로 그러실 줄 몰랐어요!”
“왜요?”
“비뇨기과, 방사선과, 교수님 첨 뵌 날…. 어쩌면 다리를 살릴 수도 있을 거라고…. 또 어쩌면 병변을 긁어낸 후 보호대를 댄 채 뼈를 살릴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아, 그건 수술이 결정되기 전의 고려사항이었지요.”
“그렇긴 하지만...”
“마지막엔 제가, 어쩔 수 없이 잘라야만 한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사실 그랬었다.
“그런데, 왜 나는 계속 부정만 하고 있었을까? 부정한다고 진실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지금까지도 여전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든지 말든지 그 교수님은 말을 이었다.
“환자분은... 어쨌든... 많은 점에 있어서 예외적인 점들이 많아요.”
“뭐가요?”
“방금 제가 수술한 환자의 경우, 한 8시간을 수술했는데, 전이가 뼈 여기저기로 많이도 되었어요. 그분의 혈액검사 결과는 몹시 나쁩니다. 환자분보다 더 빨리 전이가 된 경우이고요.”
“......”
“환자분 같은 암의 상태라면, 사실은 이미 5년 전에 돌아가셨어야 할 케이스이지요. 하지만 아직도 이렇게 여기저기를 수술하고 계실뿐더러, 혈액검사 결과나 각종 지표도 나쁘지가 않고요.”
“......”
“어쨌든 환자분의 수술은 잘 된 상태이고요, 낼 진료실에 오시면 제가 영상을 보여드릴 것이고.”
“어쨌든 고맙습니다, 교수님.”
나의 인사를 받은 그 교수님은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참, 교수님! 저는 앞으로 어떻게 되지요?”
“뭐가요?”
“이번엔 수술로 처리를 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또 전이되면?”
“하하, 환자분은 아마 더 생존하실 듯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주 튼튼한 티타늄으로 보호대를 댔습니다.”
“티타늄요? 금속이 제 다리 근육 속에 있어요?”
“그럼요!”
“......”
“어쨌든 1~2년 내다보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환자분이 적극적이고…. 아직 폐 이외에는 전이가 관찰이 안 되고 있고…. 뼈로 전이가 되었다 해도 다행히 …. 좀 광범위해서 좀 그렇지만.”
그는 마치 혼잣말을 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앞으로 왔다가 뒤로 갔다가 하면서. 여전히 한쪽 손으로 턱을 고인 채…. 그리곤,
“낼 뵙시다. 아마 저를 꽤 오래 볼 듯하니 차차 얘기하기로 하고요.”
라는 말을 남기고 병실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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