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와 와인
그 말씀을 들으면서도 난 또 멍청한 질문을 했다.
“와인은요?”
“술과 암환자와 관련, 술의 종류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래도 와인은 포도 껍질에 존재한다는 레스베라톨 같은 성분 때문에 수명 연장이라던가 뭐, 그런 효과가 있다고들...”
“그렇다 하더라도 역시 와인 속에도 알코올이 있고, 암을 갖고 있는 분들께 미치는 영향은 다른 술들과 같습니다.”
“와인도 술이군요.”
“예. 위스키나 보드카, 마오타이주 같은 증류주 한 잔은 와인잔 큰 거로 4분의 1잔과 같습니다. 와인 큰 잔으로 반 잔 드시면 럼이나 위스키를 대략 두 잔 드시는 꼴이지요.”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와인은 포도로 만들어서, 포도는 몸에 좋은 과실이니까, 조금씩만 마시면 몸에 좋다는. 아마 하버드대학의 어느 연구팀이 1970년대 언젠가인가에 발표했었다는 연구결과가 아주 오랜 기간 잘못된 미스티크로 굳어져서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암환자의 예외적 음주는 가능할까
하지만 주치의와의 문답에서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란 걸 배웠다. 그렇다고 무슨 독약 대하듯이 할 일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그 교수님은 나중에 다른 의미의 말씀도 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주신 말씀은 내가 최초에 술에 대해서 주치의께 문의한 후로 한참이 지난 후였다.
그 한참 후란, 술에 대한 주치의의 조언을 구한 후 대략 6년 여가 지난 때였다. 내가 오리건 프랭크 형님에게 갈 일이 생겼었다. 시기적으로 항암제에 대한 내성이 생기는 징후가 보인다는 말씀과 프랭크 형이 날 보고 놀러 오라는 초청이 맞아떨어졌었기 때문이었다.
그 형이 서부 멋진 여성과의 결혼식을 앞두고 나한테 왕복 티켓을 제공하며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일사천리로 다시 만날 모든 준비를 마쳤었다. 그런데 사정이 생겨 못 갔었는데, 그 형님의 축복할 결혼식에 못 갔었던 게 영 마음에 걸리기도 했었던 참이었는데, 다시 초대를 받은 마당에 이번엔 꼭 좀 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형은 술을 엄청 좋아했는데(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그 형을 다시 만나면 분명 나한테 매일마다 한 잔씩 하자고 할 게 뻔했었다. 그나저나 항암제 내성 관련, 주치의께서는 이제 뭐 더 강한 용량으로 항암제를 처방하실 것 같으니 약도 좀 쉬고, 오리건 산골 속에서 좀 힐링도 할 겸 술도 좀 마셔 볼 겸 하는 맘이 들었었다. 그래서 와인에 대해서 주치의께 여쭸던 것이다.
술 마시는 암환자는 많을까
그런데 암과 술, 암환자와 술에 대해서 전문가-의대 교수님, 의사-에게 물은 건 그때가 첨은 아니었다. 첫 번째는 두 번째 병원에서였다. 콩팥과 부신을 통째로 들어내고 난 후, 난 한참을 건강 회복과 마음의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집중적인 노력에도 양쪽 폐에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했던 암덩어리들이 줄어들 기미는커녕 더 늘어가고 있다는 당시 주치의 말씀이 있으셨다. 그래서 맘이 몹시 상했고... 그 교수님 조수였던 수련의께 물었었다. 술 한두 잔을 일주일에 한두 번 마셔도 되는지......
그때 그 수련의는 대답했다.
"그렇게 조절하실 수만 있다면요..."
하지만 그분의 그때 그 허락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몰랐다. 어차피 죽을 사람 잘 먹다 가게 그냥 된다고 말해버리자! 였는지, 아니면 진짜로 그래도 됐던 건지를.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은 아주 한참 후에, 다른 병원의 다른 의사로부터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항암제를 시작한 후, 그리고 고농도 맥시멈인 800mg으로 강행군하고 난 후, 내게 완전관해 진단이 내려졌다. 그래서 하늘을 날 듯, 3 대양을 헤엄칠 듯 기뻤었다. 그래서 꿈꿔왔던 사업을 진행하기로 하고 그 준비가 거의 끝났던 시점, 그러니까 완전관해 판정 후 1년 3개월여 시점, 그때 다리뼈를 잘라내야 할 일이 생겼는데, 신장암 육종성 변이에 따른 뼈 전이였다.
그때 너무도 훌륭하신 정형외과 교수님이 날 돌보셨는데, 뼈 절제 후 기증 뼈 이식술이 모두 끝난 후 병실에서 문답이 있었다.
"대단한 수술 끝내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위, 아래로 적당히 잘라낸 후 사이즈는 다르지만, 기증 뼈로 이식 잘 끝냈습니다."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의지가 대단하시니..."
"이 뼈는 얼마나 쓸 수 있을까요?"
"경우의 수가 많지만... 5년은 끄떡없을 겁니다."
"그 후엔, 교수님?"
"아이, 뭘 그렇게 오랜 후를 일부러 걱정하셔요?"
난 그분의 그 말씀을 그때 마음에 새겼었다. 사실 4기 다발성 폐 전이 환자 입장에서 오늘 낼도 아닌, 한 달이나 일 년 후도 아닌, 5년 후를... 무슨 그런 원고 심려를...... 그래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여쭸던 거였다. 그런데, 그분의 답은 재밌었다.
"환자분은 오래 사실 겁니다."
"네?"
"말씀하시는 거나 웃으시는 거나 분위기 등이 그걸 말해 줍니다."
"네?"
"제가 여기 병원에서만 20년이 넘습니다. 제게도 통계란 게 있습니다."
"어떤...?"
"그냥 딱 보면 압니다. 거의 틀린 적이 없습니다."
그 말씀은 고마웠지만... 그런데 갑작스레 내가 여쭸던 주제와 다른 말씀을 하셨다.
"제가 아는, 그러니까... 우리 병원의 동료 교수님의 사모님이신데, 그분은 골프도 치러 나가시고, 와인도 마시고, 그렇게 잘 사십니다."
"그런 일이..."
"그분도 꽤 심각하십니다."
“……”
"콩팥 들어내고, 폐로 가고, 간으로 가고..."
"그러시군요......"
"어쨌든 교과서 대로라면, 환자분의 병력으로만 본다면... 환자분은 벌써 저 먼 딴 세상에 계실 분인데... 제가 겪어보니 안 그런 이유를 알겠습니다."
그때 암환자와 술에 관한 말, 술 마시는 여성 암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난 그 뒤로도 술 한 방울 입에 안 댔다. 그런데 그로부터 또 2년이 지난 후 술 또는 음주에 관련한 질문을 주치의께 다시 할 일이 생겼느데, 프랭크형 방문 땜... 내가 내 주치의께 술에 대해 처음 물었을 때는 단점을 말씀하셨었지만, 그로부터 6년이 지난 후, 2019년에는 조금 다른 성격의 조언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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