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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22년 말, 폐전이 뼈전이 삶

채혈, 적혈구 부족, 혈전 예방 복부 피하 주사, 디카페인 커피- 전이 암 재발 수술 입원 8일째

by 힐링미소 웃자 2022.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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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채혈
2. 교수님 회진
3. 피주머니
4. 혈전 예방 복부 피하 주사
5. 기타



채혈: 새벽녘에 채혈이 이뤄졌다. 아직 어둠이 걷히기 전 시간이었다. 잠에 빠져 있는데 불쑥 들어오셨다. 아직 어우운 시간에 뭘 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를 안다. 내가 15살까지 보냈던 고향마을이 그랬었다. 얼마나 부지런들 하신지 해가 뜨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우리 마당에 모이셨다. 탈곡이라 불리는 추수를 위해서였다. 또 들에도 이른 아침 일찍 나가서 물꼬를 보곤 했었다. 아니면 밭에 나가보던지. 그런 후로 어두운 시간에 깨어있을 일이 또 생겼었는데 군생활이 그랬었다. 해안경비를 했었고, 나중엔 본부 상황실 근무를 했었는데, 특성상 올빼미 근무형태였다.

이 8일째 새벽에 뽑은 피는 세 통이었다. 선혈이 낭자한, 내 피가 담긴 플라스틱 병을 보는 건 복잡 미묘한 감정 그 자체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피를 뽑히고 그 용기들을 보는 게 벌써 12년을 끝내고 있다. 며칠 후면 4기 진행성 암 진단 13년째로 들어가니 말이다. 이 3병에 담긴 내 피는 여러 용도로 귀하게 쓰이리라.

교수님 회진: 오전 8시경 교수님 회진이 있었다. 지난 금요일에 뵙고 못 봤다. 주말이 끼어있다 보니 그랬다. 밝은 표정으로 내 어깨를 어루만져 주셨다. 그러면서도 두 눈은 날카로웠다. 피주머니 호스를 통해 흐르는 피 색깔과 양을 보시는 듯 일별 했다. 피 상태를 보고 말하시는 것이겠지만 피주머니는 하루만 더 보자고 하셨다. 그런데 알듯 모를 듯한 말씀을 하셨다.

"잘못하면 퇴원이 늦어질 수도 있으니..."

그런데 이어서 다른 말씀도 하셨다. 적혈구가 적다고 했다. 내가 알기에 적혈구는 그리 짧게 사는 게 아니다. 일반적으로 4달은 산다고 한다. 그럼 퍼즐이 맞춰진다. 지난번 회진에서 수혈을 할까 말까 하시다가,
"에이, 수혈은 맙시다."

그리고 수술 후 첫 번째 회진에서,
"피 많이 흘리셨어요. 그럴 거로 예상해서 미리 수혈 두 팩을 했지만... 그 왜 투명신세포암이 신생혈관 많이 만들기로 유명하잖아요. 그거 다 뜯어내는 데 고생했어요."


내 암 공부 12년에 신생혈관은 투명신세포암이라서 잘 만드는 게 아니다. 모든 종류의 전이암들은 먹고살기 위해서 반드시 풍부한 영양이 필요하다. 더더군다나 정상세포들과의 경쟁, 면역세포들과의 싸움에서 버티려면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수술 전 혈액검사에서 적혈구가 부족하다는 지표는 없었고... 그럼 맞춰질 퍼즐은 간단했다. 수술 중 출혈 과다-적혈구 상실 과다-적혈구 부족. 그러니까 그날 회진의 끝말이,
"잘 드셔야 해요."

 

결국 병원식 열심히 먹고 피 많이 만들고, 하루쯤 더 봤다가 피주머니 제거하고, 수술부위 감염이 생긴다면 피 색깔이 달라질 거니, 겸사겸사 하루 더 지켜보자. 그런 연결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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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주머니: 피주머니가 있으면 움직이는 게 불편하다.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럼 수술 부위에서 생기는 출혈을 처리할 수가 없다는 건 뻔하다. 출혈이 생길 경우 피 배출구가 없다면 감염의 문제도 발생하고. 교수님이 하루 더 보신다고 했으니 어찌 될지 한 번 볼 수밖에 없다.

혈전 예방 복부 피하 주사: 처음에 이 피하지방 주사에 대해서 의아해했었다. 논리적 모순 같은 뭐 때문에. 현재는 상처 부위에서 흐르는 피를 받아내는 피주머니가 있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피를 묽게 하는 기능을 하는 혈전 예방제를 투여한다. 하! 그럼 피는 언제 멈추고, 피주머니는 언제 떼? 퇴원은 언제 하고?

그러나 오해였다. 수술 후 들었던 오른쪽 부분에 혈전이 있었다는 말은 내가 잘못 들은 거였다. 혈전이 있었다가 아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혈전은 한번 생기면 어찌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하면서. 그건 생명이 걸린 일이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다리 한쪽 없다고 죽는 건 아니다. 하지만 피떡이 혈관, 특히 심장이나 뇌혈관의 어디를 막는다? 곧 죽음이다. 뭐가 우선이겠는가? Cost and Benefit의 문제다. 답도 단순하다.

참고로 혈전 예방 주사제는 흡수사 빠르고 효과적 즉각적이라고 한다. 따라서 혈전용해제 플라빅스 보다는 훨씬 좋다.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점심 무렵 뜨거운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한 잔을 받아 들었다. 행복했다. 난 술을 딱 끊은 암 환자라서, 물론 도중에 몇 개월에 걸쳐 폭주한 적이 있지만, 선택할 기호식품의 종류가 좀 그랬었다. 그때 나를 찾아온 게 커피였다. 커피를 하도 많이, 자주 마시다 보니 향만으로도 퀄을 짐작할 수 있게 됐다.

그런 나의 커피사랑은 10년이 훨씬 넘는 역사다. 커피를 하도 마시다 보니 퀄을 안 따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안착한 게 집에서 내려서 마시자였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집에서 원두를 간다. 적당히 덥혀진 물에 내려서 마신다. 안에서는 그렇게 해결을 한다.

밖에서는? 디카페인을 텀블러에 담아 마신다. 역시 남들 술값에 투척하는 비용과 질 좋은 커피에 소요되는 비용은 사실 비교가 안 된다. 그러니 밖에서는 좋은 원두로 만들어진 디카페인을 찾게 된다. 하필 디카페인엔 이유는 간단하다. 하루 두 잔은 마셔야 하니 디카페인이 아니면 인간이 누려야 하는 것들 중 하나인 좋은 수면을 가질 수가 없다. 커피를 그렇다고 숭늉처럼 마실수는 없다.

좋은 커피를 오래오래 음미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했다. 답은 좋은 텀블러!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1회용 용기는 내가 사는 자연, 내 가족과 친구들, 그들의 다음 세대도 이용해야 할 소중한 터전을 망치는 일이란 건 암 환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상식이다. 생명의 소중함!

좋은 텀블러는 뜨거운 아침 커피를 늦은 오후까지 어느 정도 유지해준다. 커피 최적 온도가 55도쯤 된다고 한다. 아침에 뜨거운 커피 텀블러 가득 받아 캡에 다라 조금씩 마신다. 캡을 닫는다. 그러면 오후 중반까지 마시기 좋은 온도로 유지해준다. 그런 고마운, 높은 품질의 텀블러, 대신 비싸다. 하지만 잘 사면 그리 큰 가격은 아니다. 커피 따라 텀블러 경험도 많아서 광고에 속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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