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장 내시경 검사 땜 병원에 들렀다. 지금이 2021년, 작년이면 2020년. 코로나 시국은 변한 게 없다. 작년 6월이 생각났다. 그때 느낌을 썼던 걸 다시 곱씹어 본다. 코로나 시국이 제발 빨리 끝나길 기다리며...
난 무덤덤하게 병원문을 들어갔다. 얼마 전 경동맥 초음파 검사를 위해서 왔을 때처럼 변함없이 체온 체크를 받았다.
"혹시 해외여행을 다녀오셨나요?"
"아니요."
해외여행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는 작년에 있었던 여정을 생각했다. 그리곤 검사실 대신 가까운 커피숍을 향해서 갔다. 빈자리에 앉은 나는 그 여행을 추억했다. 22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로 소식을 전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프랭크를 방문했었던 여정. 그토록 오랜 기간 멋지고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온전히 프랭크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 긴 22년 동안 서로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에게도 수도 없는 일들이 있었는데, 그중 특히 암 진단이 독보적이었다. '그냥 암'이 찾아왔던 게 아니었다. 그 암은 쉼 없이내 몸을 점령해오고 있었던 전이암이었다. 나에게 찾아온 암은 원발암에서 폐 전이암이 되었고, 그것도 부족해 골전이암이 됐다.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 나의 친구는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동부에서 서부로 이사 왔다. 몇 년 전에 그, 프랭크로부터 3번째 결혼식에 참석해달라는 초대장을 받았었다. 그 초대장 말미에 그의 마일리지를 사용해도 된다는 호의가 있었고, 난 기쁜 마음으로 항공권까지 예약했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뼈전이암은 그 항공권을 휴지로 만들어버렸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 항암제 내성이 생긴다는 진단이 있었고, 더 늦기 전에 작별인사를 하자는 생각에 그를 방문했었다. 난 그의 집에서 반달을 묵었다. 여전히 할 말이 많았던 프랭크로부터 그의 인생 드라마를 더 자세히 접했다.
와인클럽에도 갔었고, 레드우드 깊은 숲에도 갔었고, 거친 서부가 온전히 남아 있는 일종의 미국판 민속촌에도 갔었다. 그의 부인과는 커피숍에, 이탈리안 식당에, 백화점에, 쇼핑센터에, 화장품 가게에... 그렇게 보냈다.
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여행을 정리하는 메모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었다.
그와, 그녀와, 그들과 했었던 모든 것들이 추억이었다고.
"그래, 내가 프랭크와 그 와인바에 갔었던 거, 서로 웃으며 건배했었던 거, 차를 타고 오가며 나눴던 이야기들... 그와 함께 했었던 모든 게 추억이었던 거야. 또 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그녀의 긴 항암 이야기에 푹 빠졌던 것, 그녀가 해준 길고 긴 그녀의 가족 이야기를 들은 것, 백악관에 두 번이나 초대받은 성공적인 사업가였던 오빠가 손도 못 될 단계의 암으로 급사한 정황을 얘기하며 흘리던 그녀의 눈물을 보며 휴지를 건넸던 일......"
그러면서 난 스스로에게 물었었다.
"추억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과거를 그저 기억하기 위한 것일까? 그래서 그 과거를 아파하고 슬퍼하고 후회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위한 열쇠인가? 지난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만을 되돌아보며 그보다 더 예쁘고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기 위한 길라잡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마지막 줄에 적는 걸로 난 단상에 대한 메모를 마쳤었다.
미국 서부여행에 대한 회상은 거기까지였다. 진료를 위해 서서히 일어날 시간이 돼가고 있었다. 나는 커피숍에서 나오며 병원 출입문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병원 직원들은 변함없이 바빠 보였다. 여전히 그들은 아까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쉼 없이 들어오는 내원객들을 향해 바쁘게 체온계를 들이대고 있었다.
"이... 코로나... 이제는 해외여행이 '과거에나 가능했었던 일'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국내여행이라면 모를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CT 검사실을 향해 갔다. 그날따라 내 한쪽 다리가 더디 옮겨졌다.
"이 다리가... 어디가... 잘못돼가고 있나?"
난 지난 12월에 아주 놀랄만한 검사 결과를 받았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었다. 특히 거의 3주간 항암제를 중지했었던 데다가 장거리 여행까지 한 마당에 그런 결과는 의외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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