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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20년 암 안정기, 술에 대해서

암환자의 인권과 프라이버시(20-5-29)

by 힐링미소 웃자 2021.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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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병원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다. 처음 가본 CT촬영장에서였다. 이 병원을 2013년부터 다녔으니 만으로 8년이 넘었다. 여적까지 불쾌한 경험은 없었다. 처음 병원과 두 번째 병원에 비해서. 하지만 오늘과 같은 아린 경험은 첨이다.

 

난 다른 모든 경우처럼 병원 관계자 누굴 만나든 먼저 웃고 먼저 인사한다. 그리고 온화한 음성과 미소 띤 얼굴로, 그러나 분명한 음성으로 용건을 말한다. 여적까지 한 번도 안 그랬던 적이 없었고, 그들도 그래 오고 있다. 내게 이름과 환자등록번호  또는 생년월일 이외의 그 어떤 질문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 병원에서. 필요할 경우 신분증 제시를 요구한 적은 있었어도.

 

나는 오늘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런 상황을 예상하며 웃음을 띤 얼굴로 인사하며 나의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답례는커녕 내 이름을  다 말하기도 전에 모든 걸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제대로 된 경우라면 같이 인사한다.)

“제 이름은 xx “

“주민등록번호요!”

“네?... 예?”

“주민등록번호요.”

“제 환자등록번호는...”

“주민등록번호요!”

“예?... xxxxxx입니다.”

“뒷번호요.”

“예?”

“xxxxxxx입니다.”

“성함이?”

“xxx입니다.”

“주소가 서울시 xx구 xxx동 xxx번지...”

“!!! “

 

주변엔 나 말고도 사람들이 대여섯 명 더 있었다.

“와, 이 사람, 주변 가까이에 사람들이 있는데도 내 개인정보를, 민쯩을 다 까게 하네!” 나는 속으로 너무 당황스럽고 화가 났었다. 혹시 누군가가 내 개인정보를 녹음한다든지 메모를 해서 내가 원치 않는 용도로 사용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데도, 그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와 유사한 상황일 경우 난 그 이유를 냉정하게 묻는다. 하지만 이렇게 진짜로, 갑작스럽게 민쯩 공개 수준의 요구는 처음 받아보는 거라서 난 오늘 무방비로 일격을 당했던 것이다.

 

“한 번 내뱉으면 돌이키지 못하는 것이 말이고

한 번 드러나면 숨길 수 없는 것이 행동이다.” 

*출처: 조윤제, 다산의 마지막 공부(서울:

               청림출판, 2018),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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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분은 내게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사람이면 누구나에게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예상되는 본론 또는 내용에서의 실수 또는 어색함은 그 첫인상에서의 부드러움으로  보완될 수 있음도 많이 경험해봤다. 하지만 오늘 그는 애초에 그런 경우도 아니었다. 내가 웃으며 인사할 때 그는 웃음은커녕 어떤 답례도 없었다. 첫 대면에서 불쾌한 인상을 주거나 기분이 잡치면 본론과 콘텐츠가 아무리 좋아도 그 첫 순간의 느낌과 분위기가 점수를 다 까먹어버리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봐왔다. 오늘 그가 그랬다. 그는 내가 내 이름 석자를 다 끝내는 것조차도 참질 않았다. 그는 내가 환자등록번호를 댄다는 것도 거절했다. 그는 그와 나 주변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무시하면서 내 개인정보를 누구나 다 들을 수 있게 공표했다. 내가 조용히~ 아주 조용히 말했음에도.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고 내용이 형식을 규정한다.”

 

나는 그의 눈을 잠시 뚫어지게 봤다. 그는 그런 나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어야 했다. 그리고 사과했어야 했다. 

 

난 웃으며 CT촬영을 했다. 검사실 안에서 만난 영상 기사님은 친절과 배려의 교본이었다. 내 웃음보다 그녀의 웃음이 더 빨랐다. 나는 정신을 차려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말했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고, 그녀는 나의 지팡이에 대해서 물었고, 받아서 한쪽에 놓았고, 미소로 과정을 주지시켰다, 내게. 끝난 후 오래된 친구처럼 미소와 감사를 주고받았다.

 

난 나오면서 그를 다시 한번 쳐다봤다. 그의 시선을 쫒았다. 그는 그런 날 애써 무시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난 고객만족센터를 향해 걸었다. 가면서 몇 번이고 되새김질했다, 이 병원에서의 그 오랜  추억을, 감사한 사람들을, 그들이 내게 베풀어 준 호의와 배려, 훌륭한 인술, 그리고 오래된 친구처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교수님들, 언제나 따스한 미소를 주고받는 간호사님들과의 무언의 신호를, 원무과와 예약과 안내부서의 직원분들이 보여주셨던 관심과  자상함도 생각했다. 그러면서 이윽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책임자와의 긴 대화 끝의 내 마무리는 이랬다.

“이름과 환자등록번호만으로는 신분확인이 부족할 때 생년월일을,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주소를 확인하는 프로세서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게 아니라면 지난 7년간 귀 병원에서는 잘못된 프로토콜을 따랐던 건가요?

 

그곳 책임자는 자초지종을 듣고 일어나 내게 사과했다. 

해당 부서장한테  사실 확인을 시키겠고, 해당 직원과 면담하겠고, 병원의 전반적인 환자 응대 시스템을 재점검하겠고, 결과를 통보해 드리겠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난 나오면서 덧붙였다. 내가 5번에 걸쳐 그 병원의 구성원에 대한 칭찬엽서를 쓴 일과 나를 진료, 치료, 수술, 간호해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리고 여적까지 나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귀 병원 덕택에 내가 여적까지 살아있음을 잘 알고 있고, 늘 감사한다는 말도.

 

집에 돌아온 후 난 병원에서의 일을 다 잊고 내 돈벌이에 정신이 없었다. 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9시에서 3시 30까지 꼼짝도 안 하고 모니터 4대에 내 두 눈과 얼굴을 묻어놓고 살아오고 있다. 그 덕분에 언젠가 특정한 시점부터는 내 병원비와 약값과 반찬값을 손 안 벌리고도 해결할 정도는 벌어오고 있다. 어제도 검사와 진료가 끝나기가 무섭기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시간, 거래 마감시간이 다가올 무렵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해당 부서장의 사과문이 핸드폰 너머에서 낭독되고 있었다. 이어서 고객만족센터 책임자의 후조치사항이 낭독되고 있었다. 5분 분량의 녹음이 이루어졌다.

 

난 통화가 끝날 때쯤 강조했다.

“난 암 걸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4 기암 걸리라고 기도한 적은 더더욱 없다.

진단 후 내가 암환자가 아니란 걸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다. 난 아직도 사람이다. 사람 인! 그러니 내게 인권이란 것도 있다. 암환자에게도 인권이 있다. 프라이버시도 있다. 당신들이 부정한다면 자기부정이다. 환자들이 낫도록 치료하는 이유가 그들이 그들의 인권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아닌가?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 아닌가?”라고.

 

다음에 결과를 보러, CT를 찍으러, 어제처럼 엑스레이를 찍으러, 수술을 하러, 서류를 떼러... 다시 병원에 가면 그들은 날 어떻게 쳐다볼까?

내 이름 옆에 어떤 표시를 해놓았을까?

블랙리스트 표시를 해 넣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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