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앎/위내시경 대장내시경

평행결장_상행결장_맹장까지 대장내시경 검사 시작부터 중간과정까지 -두 번째 비수면 내시경_2020년 경험

by 힐링미소 웃자 2021. 9. 8.
반응형

“자 벽 쪽을 보고 옆으로 누우셔요.”

“이렇게요?”

난 새 생명이 모성의 깊은 곳 어딘가에서 잉태되고 보살핌을 받는 모양, 그 가녀린 생명체의 시원의 자세로 누웠다. 

난 이 자세에서 극단의 편안함을 느낀다.

다사다난한 하루를 마감하는 육체에 주는 선물, 잠.

세상에서 가장 편해야 하고 달콤해야 하는 잠, 

그런 잠을 위해서 이 자세를 취한다.

지금과 다른 건 오른쪽을 향해 눕는다는 것뿐.

 

“선생님, 저 양말 벗어도 될까요?”

“예... 아니요!”

“아, 저는 이런 시술대나 CT, MRI 검사대에 올려질 땐... 양말을 벗는 게 편해서요..”

“추워요. 여기 추워요. 그냥 신으세요.”

 

난 세 번의 수술, 그걸 위해 전신마취를 세 번 했었다. 

그럴 때마다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 없어지곤 했었다. 

그 이후로 난 마취기 싫다. 

그래서 난 위내시경이든 대장 내시경이던 수면검사를 거부한다.

 

내 소중한 몸뚱이, 식도 속, 위 속, 십이지장을 내 눈으로 보고 싶어서. 

나의 항문, 나의 직장, 나의 S 결장, 나의 하행결장, 횡행결장, 상행결장을 나의 눈으로 속속들이 보고 싶어서. 

나의 사랑스러운 몸뚱이를 더 이상은 잃고 싶지 않아서...

콩팥 한 개, 폐 한쪽, 허벅지 뼈 한 토막... 그거면 됐으니.

 

 

나의 의식의 흐름은 내 엉덩이를 가리고 있던 시트가 젖혀지면서 끝났다.

검사대 끝에 서 있었던 간호사의 손에 주사기가 들려있었다.

"자, 쪼끔 따끔할 거예요."

"예?"

"진통제예요. 두 방이에요."

"왜요? 작년엔 주사 안 맞았는데..."

"뭐 좀 뗄지도 몰라요. 많이 아플 거라서..."

그분은 한 손으로는 내 오른쪽 엉덩이를 찰싹찰싹 두 번 때리듯 하며 다른 손으로는 희롱하듯 주사기를 찔렀다.

그런 일련의 광경을 그 키 큰 레지던트는 키홀 안경테 너머 두 눈으로 프로그램을 코딩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내 엉덩이에서 손을 치우며 주삿바늘을 뽑던 간호사샘이 말했다.

"됐어요. 이젠 똑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세요!"

난 조각을 이어 붙인 단순하고 반복적인 천장의 도형들을 보며 생각했다.

"하~, 이게 어디야! 최소한 수술대는 아니잖아?"

난 만족스럽게 웃었다.

반응형

그때 그 방 안에 있던 세 명의 스탭들이 일제히 큰소리로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담당 교수님이 경쾌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분은 곱상한 얼굴에 지적인 표정, 냉정한 시선에 부드러운 목소리라는 언뜻 보기에 상반된 요소가 잘 어우러진 캐릭터를 가진 의사다.

정확하고 빠르며 솔직할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이분한테 몇 번의 진료만 받아봐도 단박에 “프로임에 틀림없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나의 주치의로부터 힌트를 얻고 설명간호사님한테 확인한 후 진료를 받기로 선택한 분이다.

이분에 대해서 이것저것을 찾아본 바로는 엄청난 양의 논문을 썼고, 영향력 있는 교과서 몇 권을 썼다는 것이다.

또한 의료사고도 보고된 게 없었고, 진료받은 환자분들의 추천도 많을뿐더러 좋은 후기가 많이 달린 의사로 판단됐다.

 

그 교수님은 긴 앞머리를 어김없이 손으로 쓸어 넘기며 안경을 추켜올렸다.

그 모든 게 습관처럼 보였다.

그의 그 두 가지 손놀림은 눈을 깜박이듯 순간적이었고,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듯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내시경이 내 뱃속에서 어떻게 움직 일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자, 시작합시다.”

그 말과 거의 동시에 스태프 한 분이 나의 오른쪽 엉덩이를 앞쪽으로 가볍게 밀며 말했다.

“오른쪽 다리를 좀 더 가슴 쪽으로 올려보실까요?”

“이렇게요?”

“예. 그렇게요.”

난 벽을 향해 왼쪽으로 누운 상태에서 오른쪽 다리를 움직여 무릎을 가슴팍으로 바짝 붙였다.

 

놀란 괄약근에 약간 움찔움찔하던 내시경 프로브는 항문을 묵직하게, 그러나 이내 부드럽게 통과하는 듯했다. 

“괄약근의 운동에도 리듬이 있나 보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노련한 교수님은 그 순간, 괄약근이 풀어지는 그 순간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신 듯했다.

움직임에 쉼이 없었다.

 

차갑고 이질적인 게 항문을 통과해 직장 쪽으로 쭉 밀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다. 

동시에 전후좌우로 헤집는 느낌이었지만 어떤 통증도 가져다주질 않았다. 

그 장인의 손놀림에 감탄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은 자세가 왼쪽 벽을 보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내시경 끝의 프로브가 어디쯤에 있는지를 아직은 볼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인지할 수 있는 분명한 한 가지, 그분이 다루는 내시경의 움직임이 무척이나 부드럽고도 섬세했다는 것.

 

“이렇게!” 

그 교수님은 짧게 말했다.

그 말과 동시에 내게 주사를 놨던 그 간호사가 내 허리와 허벅지를 가볍게 접촉하며 방향을 유도했다.

그 교수님과 전공의와 PA는 마치 하나의 유기체인 듯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나의 허리와 다리의 위치를 잡아주듯 하며 그 간호사님이 말했다.

“자, 이제 천장을 향해서 반듯하게 누우세요.”

“이렇게요?”

“예. 그리고 왼쪽 다리를 ‘ㄱ’ 자 모양으로 만드셔서 세우시고 오른쪽 다리는 'ㄴ'자 모양으로 해서 왼쪽 무릎 윗부분에 올려주세요.”

“이렇게요?”

“100점입니다.”

“하하”

그 모든 대화는 아주 짧은 시간에, 명료하게 이루어졌다.

물론 그동안에도 그 장인이 지휘하는 내시경 끝의 프로브는 쉼 없이 움직이며 대장 구석구석을 탐색하고 있었다.

 

내 머리 바로 위에 소형 모니터가 달린 장치가 있었고 그 옆으로 32인치는 족히 될듯한 선명한 모니터가 매달려 있었다.

그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대장 속에는 구불구불 주름 잡힌 협곡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선명하고 미세한 핏줄들이 대장 내벽에 상감된 듯 보였다. 

건강해 보이는 선명한 핑크빛의 대장 내벽을 타고 흐르는 내시경은 내게 내 몸의 경이로운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난 매년 위내시경 검사를 받아오고 있다. 

벌써 5년째다. 

대장내시경은 작년에 처음 경험했다. 

CT도 MRI도, X레이도 채혈도 경험할 만큼 해오고 있다.

그런 경험들은 병원 각 직역의 장인들을 알아볼 수 있는 혜안을 만들어 줬다.

10년 암 환자, 다섯 개의 다른 진료과에서 행해지는 팔로우업이 만들어낸 괴물 의료소비자!

그의 감과 촉수!

 

장인의 손길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장인의 어투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장인은 웃어도, 감추려 해도 프라이드가 품어져 나온다.

무엇이 장인을 만드는 걸까?

내신 1등급이?

암기 귀신이?

따라쟁이가?

아니다! 

 

내 생각에 단연코 그런 것들이 장인을, 명인을 만들지는 못한다.

시간, 시간이 장인을 만든다.

창의력, 단순함이 장인을 만든다.

거기에 측은지심이 어우러지면 명인이 탄생한다.

의도가 결과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 지난한 과정, 그 시간의 총합이 결과를 만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