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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13년 전원, 두 번째 수술, 폐 절제17

암삶 33-암 수술 후 좌절을 넘어 적극적 '긍정'과 ‘낙관’의 항암제를 먹겠다(2013년) 나는 '긍정' 하기로 했다. 내가 먹을 항암제가 없다는 사실도, 폐 수술도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내 몸에 수도 없이 많은 시한폭탄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머지않아 서서히 죽게 되리란 사실도. 전원 의뢰서를 받아 나오는 길에 난 그 병원에서의 모든 기록과 영상을 발급받아 나왔다. 초진 기록, 수술기록, 추적검사기록, 약 처방전, 검사결과지 등을. 봉투에 넣으니 두툼해졌고, 영상 자료까지 더하니 가방에 넣어야 할 정도로 많아졌다. 이 병원에서 딱 24개월 동안 진료를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원했던 교수님과도 곧바로 연결됐고, 그 교수님의 배려로 빨리 수술을 받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무지막지한 크기의 암덩어리를 떼어낼 수가 있었고. 그 두 가지는 아주 감사드릴 일이었다. 물론 아주 어처구.. 2021. 9. 22.
암삶 32-암 수술 후 절망과 모욕적 전원의뢰서(2013년) 그 교수님은 이마를 찡그렸다. 얼굴엔 잔뜩 화가 나신 듯 울그락불그락... 그리고 내뱉듯 말했다. "이 선생, 이 사람, " "예, 교수님!" "이 사람 한 장 써줘!" "예?" "전원 의뢰서!" "아 예." 난 모멸감, 모욕감, 화남, 슬픔, 분노, 좌절, 서러움...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내 온몸의 혈관과 신경을 타고 요동치는 듯했다. 난 내 아이 둘, 그들의 두 얼굴로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가슴엔 서러움이 목구멍엔 아우성이 입안엔 가시에 할퀴어진 어휘들이 서로가 뒤엉키고 그 뒤엉킴이 목구멍으로. 그곳에서 아우성과, 그 아우성과 뒤섞인 가시들이 가슴속의 서러움과 버무려져서는 천만 근으로 응축되곤 온몸의 열로 녹아져 서러움과 분함으로 솟구쳐서는 두 눈으로 하염없이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2021. 9. 22.
암삶 31-"남겨두고 떠나기엔 제 아이들이 너무 어립니다." 눈물로 간청한 전원의뢰서(2013년) 해가 바뀌어 2013년이 되었다. 어김없이 그 교수님한테서 진료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 교수님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또한 애걸복걸 끝에 만나 뵀던 흉부외과 교수님도 납득하기 힘든 수술방법을 제시하셨기에 충격이 컸었다. 그분께서 제시한 수술방법을 받아들인 분께서 1년인가 더 사시고 돌아가셨다고 하시니... 내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당시의 교수님께 힘든 부탁을 하기로 맘먹고 그 교수님 진료실에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예! 좀 어떠세요?" "아, 그게 교수님이 저보다 더 잘 아시지 않으신가요?" "무슨 말...?" "1 주일 전의 검사에 대한 결과는 교수님이 저보다 더, 아니 교수님만 아시지 않으신가요? 전날에 이미 검사 결과에 대한 리뷰도 다 하셨.. 2021.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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