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어 2013년이 되었다.
어김없이 그 교수님한테서 진료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 교수님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또한 애걸복걸 끝에 만나 뵀던 흉부외과 교수님도
납득하기 힘든 수술방법을 제시하셨기에 충격이 컸었다.
그분께서 제시한 수술방법을 받아들인 분께서
1년인가 더 사시고 돌아가셨다고 하시니...
내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당시의 교수님께 힘든 부탁을 하기로 맘먹고
그 교수님 진료실에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예! 좀 어떠세요?"
"아, 그게 교수님이 저보다 더 잘 아시지 않으신가요?"
"무슨 말...?"
"1 주일 전의 검사에 대한 결과는
교수님이 저보다 더,
아니 교수님만 아시지 않으신가요?
전날에 이미 검사 결과에 대한 리뷰도 다 하셨을 테고요..."
그 교수님은 당황하신 듯 보였다.
고분고분하던 환자가 시니컬하게 반응하고 있으니...
"아 난 요즘... 컨디션... 기분이 어떠냐는 말..."
"......"
" 전보다 좀 더 커졌고... 개수도 좀 더 늘어난 것 같아."
"교수님, 교수님이 저를 보시기 시작한 지가
오늘이면 벌써 22개월째가 되나 봐요..."
"그러게. 2년 이 다 되어가네."
그쯤 되면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챌 만도 하련만...
그 교수님은 그냥 까칠해진 환자 한 명과 마주하고 있다는 듯
놀란 두 눈 이외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저한테 약 처방도 안 해주시고, "
"쓸 약이 없으니까, "
"그저 2개월마다, 어떤 땐 3개월마다
방사선 관련 검사만 하시고, "
"상태를 추적해야 되니까, "
"그러면서 제 폐 속의 종양들은
더 커져만 가고, 늘어만 가고요."
"......"
이제 내가 할 말은 하나만 남았다.
예약 없이 갔던 나를 진료해 주신 것,
바쁜 수술 일정을 재조정해서 날 위해
수술 날짜를 잡아주신 것 등은 감사드리고도 남을 일이었다.
하지만 나무뿌리와 약초로 만든
비싼 건강보조식품을 강매하듯이 하신 점이나,
직접 수술 집도도 안 하셨으면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수술기록지에 적게 하신 것 등...
아주 실망스러운 점도 많았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납득이 안 됐던 점은 약 처방 없고,
과도한 방사선 이용 영상검사들을 처방하시는 일이었다.
결국 어느 날 난,
"그래서 제가 교수님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
"전원 의뢰서 한 장 만 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전원 의뢰서?"
"예!"
"안돼!"
"왜요?"
"난 내 환자를 다른 사람한테 보내지 않아!"
"예?"
"난 내 환자를 다른 의사에게 절대 안 보낸다고!"
"교수님!"
"나가보세요!"
나는 진료실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왔다.
그리고 의자에 몸을 던졌다.
곰곰이 생각했다.
천장도 쳐다보고...
복도를,
내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우두커니 쳐다보고...
환자인 듯한 사람들을 물끄러미 보다가
나 자신의 몰골을 생각해보고,
보호자인 듯한 건강한 사람들을
보다가... 그들을 부러워하고...
내 가슴엔 아이 둘이 있었다.
그 둘이 가슴을 솟구쳐 올라와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9살 소녀가 아빠를 부르며 울부짖고 있었고,
그 옆에서 까닭 모를 3살짜리 남자아이가
덩달아 울고 있었다.
'이건 아니야! 난 좀 더 살아야 해!'
난 실성한 다리와
터져 빠개질 듯한 머리가 이끄는 대로
내가 좀 전에 나왔던
그 진료실 문을 세차게 다시 두드렸다.
"환자분! 왜요?"
"교수님을 한 번만 더 뵙고 싶습니다."
"안돼요. 환자님!"
"왜 안 돼요?"
"아까 진료 보셔서... 오늘 진료는 끝난 것이고...
아니면 다음 진료일에 말씀하세요!"
"선생님!"
난 그 방 간호사에게 그 교수님 한번 더 뵙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간호사 선생님은 안된다고,
"우리 교수님은 같은 날 같은 한자 두 번 안 보시는 분이세요."
라는 말과 함께 내 부탁을 강하게 거절하고 계셨다.
"거기 왜 그래요?"
"아까 그 환자분이..."
"왜?"
"교수님을 또 뵙고 싶대요."
"이리 와보세요!"
난 이분이 날 들어오라고 하시네"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리고 의외의 현실에 놀라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격앙된 모습이었다.
"교수님... 다시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그러게. 아까 진료 봤잖아!"
"교수님, 제 아이들이 아직 너무 어립니다.
저! 더 살아야만 합니다. 더 살고 싶습니다."
"......"
"남겨두고 떠나기엔 제 아이들이 너무 어립니다."
"나 참..."
나는 더는 참으면 안 된다고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단호하게 요구했다.
"교수님, 전원 의뢰서를 써주십시오.
그게 교수님이 절 살리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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