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수님은 이마를 찡그렸다.
얼굴엔 잔뜩 화가 나신 듯 울그락불그락...
그리고 내뱉듯 말했다.
"이 선생, 이 사람, "
"예, 교수님!"
"이 사람 한 장 써줘!"
"예?"
"전원 의뢰서!"
"아 예."
난 모멸감, 모욕감, 화남, 슬픔, 분노, 좌절, 서러움...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내 온몸의 혈관과 신경을 타고
요동치는 듯했다.
난 내 아이 둘,
그들의 두 얼굴로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가슴엔 서러움이
목구멍엔 아우성이
입안엔 가시에 할퀴어진 어휘들이
서로가 뒤엉키고
그 뒤엉킴이 목구멍으로.
그곳에서 아우성과,
그 아우성과 뒤섞인 가시들이
가슴속의 서러움과 버무려져서는
천만 근으로 응축되곤
온몸의 열로 녹아져
서러움과 분함으로 솟구쳐서는
두 눈으로 하염없이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본능은 그랬지만,
이성은 내 입을 다독였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
난 그를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고마워했다.
의사는 의술로서만 환자의 병을 고칠 수는 없다는 경험이다.
천하의 명의 화타도 못 고치는 병이 있다고 했다.
어느 서양 의사가 그랬다고 한다.
모든 질병의 대략 30%만 알 수 있고,
그것들의 30% 정도만 의사가 치료할 수 있다고.
의사도 알 수 없고,
못 고치는 병이 그렇게 많다는 뜻이다.
공감 못하는 의사,
기능적 의술만 익힌 의사,
그들은 공감할 줄 아는 의사,
인술을 베프는 의사와 비교가 돼도 한참 비교가 된다.
난 그 병원 이후에 행운이 따라…
의술에 더해 공감의 노력이 곁들여진
인술을 베푸는 의사 선생님들과 만날 행운을 얻었다.
그분들이 그 두 번째 병원의 그 교수님과
다른 점들 중의 또 다른 하나는,
솔직하시다는 점이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같이 알아봅시다."라고,
말씀들을 하시곤 했다.
그들은 또 긍정과 격려를 하신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
"잘하고 계신다."
"잘하셔서 더 나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 교수님 덕분이라고 감사를 드려도,
"무슨... 환자분이 잘 관리하시고, 열심히 하셔서 그렇지요."
"앞으로도 잘하시길 바라고, 그러실 겁니다."
그렇게들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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