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에 뭇국을 끓였다. 아침 운동이 그리웠다. 하지만 집 안이 더 좋았다. 아마 이렇게 아침 운동을 건너 띄면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집 안에 머물렀다. 2011년, 12년, 13년.... 16년까지가 진단 후 운동의 전성기였다.
그 전성기엔 아침 5시면, 겨울이건 봄이건, 여름이건, 가을이건... 집을 나섰었다. 뒷산에서 시작해서 말발굽 모양 동네 산이란 산을 쭉 돌았었다.
하지만 이제 그러지 못한다. 문제가 심각하다. 그걸 알면서도 못하고 있다. 2016년 허벅지뼈 잘라먹은 게 타격이 크다. 지팡이를 짚어야 한다는 건, 가벼울지라도, 옛날 생각, 운동 열심히 하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여전히 선뜻 나가지 못한다. 이 뭇국을 끓인 날도 뭇국 끓이는 걸로 운동을 대신했다.
베란다에 있던, 신문지에 싸인 채 보관되던 무를 꺼냈다. 바지런히 닦았다. 다시 베란다로 가서 통마늘을 하나 가져왔다. 그리고 다시 가서 화분에 심어놨던 대파 하나 뽑아왔다. 일단 되도록 많이 움직일 맘에...
다시마를 냉동실에서 꺼냈다. 흐르는 물에 닦았다. 평소 같았으면 끓는 물에, 아니면 그냥 물에 우려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너무 췄다. 끈적이는 다시마 점액질이 당겼다.
난 무 껍질을 안 벗긴다. 흐르는 물에 흙을 가볍게 제거한다. 흙을 다 없애진 않는다. 내 몸도 어차피 흙 속 어느 물질들로 되어있을지 모를 일. 또 죽어 흙 속에 묻히던 재가 되어 날아가든 그런 것들로 바뀔 터!
아! 당장이라도... 우주 속 한 점 먼지가 되고 싶다!
무를 잘 닦고, 너무 지저분한 데만 칼날 손잡이 부분 기역자 날카로운 곳으로 빼냈다.
미리 끓이기 시작한 물은 분노를 표출하듯 끓었다. 나무 칼반을 꺼냈다. 무를 납작한 네모로 잘랐다. 난 뭇국에 두껍게 썰어진 무를 넣기 싫다. 입에 넣지 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무 텍스쳐가 좋다.
끓는 물을 차가운 무 조각들로 순간이나마 식혔다. 대파와 다시마는 이미 넣은 지 오래였다. 색감과 영양과 내 시골 DNA를 깨우고 싶었다. 시골 향수 대추는 요리 시작 전 이미 닦아 놓은 채였다.
물이 끓기 시작할 때 넣었던 대추, 그게 익으며 풍기는 대추 향이 날 나른하게 만들었다. 내 시골집 마당 넘어 길가 쪽에 심어진 대추나무, 거기서 열린 대추를 90이 다 되신 아버지가 보내주셨었다.
무가 반쯤 익었다 싶었다. 소고길 넣었다. 무항생제로 끼웠다는 자랑이 작은 글씨로 인쇄된 포장지를 벗겼다. 흘러내리는 핏물이 묘하게 보였다. 첫 번째 수술, 개복 수술한 후 거즈로 막아놓았던, 길게 찢긴 상처를 비집고 흘러나왔던 그 핏물이 떠 올랐다.
“으... 음.. 그럴 때가 있었군...”
난 그 말을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다.
하!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도 내겐 말이 되는구나! 모순! 내 인생은 모순...
무 흰색, 대파 푸른색, 통마늘 색, 다시마의 브라운, 잘 익은 시골 대추의 포매그래피트 빛... 그렇게 어우러져 무섭게 팔팔 끓는 물속에 핏빛 낭자한 소고기 조각들을 던져 넣었다.
아마 수술 베드 위 눕혀졌던, 마취제에 영혼을 잃었던 내 몸뚱이의 갈라진 뱃떼기 속 내장들이 아마 그랬었을지도... 내 몸을 요리했던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흰 가운 속에 숨겨졌던 그들의 옷과 러닝셔츠와 색색의 옷색들이 그랬었을까?
아! 청승맞은 생각! 난 흐르던 의식을 강을 막았다. 그러면서 긴 나무젓가락으로 통고기를 바지런히 뒤집기를 반복했다. 3분의 1이 익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꺼내 칼반 위에 던졌다. 날카로운 독일제 부엌칼로 십자(+)로 칼집을 냈다. 어김없이 3분지 1만 익었다. 아, 이 감각! 내가 15살 때부터 시작했던 자취생활, 같이 시작했던 요리의 시작...
소고기 뭇국, 손쉬운 암 환자 먹거리다. 무의의 항암효과가 어디 한 두개인가. 게다가 소화를 돕는 베타아제 성분이 있어 뱃속이 편안하기도 하니 이래저래 좋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뭇국을 끓인다.
흔적도 없이 소고기를 나눴다.
그걸 끓는 국물에 넣었다.
칼반 위 핏물들이 식탁으로 흘러내렸다.
살생은 안된다.
어떤 종류의 살생도...
그런데 난 조금 전 뭘 했지?
육류!
한 달에 두세 번 먹는 육류...
식물은?
뽑아 다듬고, 버무리는 것은 살생이 아니련가...??
모르겠다!
그날 날이 추우니 별놈의 생각을 다했던가 보다.
청승, 주책...
무와 방금 넣은 쇠고기가 죽처럼 변할 때까지
난 주방정리를 했다.
개미 콧 딱지보다 더 작은 주방...
머리칼을 뒤로 넘기고
식탁에 앉았다.
안 쪽이 새하얀 국그릇에
뭇국을 담았다.
한 입, 나무 수저로 한 입 넣었다.
무가 혀에 닿자마자 녹아 없어졌다.
다시마 끈적임 점액질 식감이 입천장에 머문 채
혀를 끌어당겼다.
아~ 행복한 아침... 아침식사...
#오리지널 포스팅=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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