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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지인의 유방암, 갑상선암

두 종류의 암: 유방암, 갑상선암

by 힐링미소 웃자 2021.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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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019년의 가을을 여행으로 시작했다. 나에게 여행은 필연적으로 관계를 만든다. 이번 여행에서도 그 필연은 반복되었다.

갑상선암과 유방암, 그렇게 두 개의 암을 갖고 있다는 그녀는 거의 2주 동안 수없는 영감을 나에게 주었다. 그녀는 암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보다 더 활기차 보였다. 암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보다 더 명랑해 보였다. 암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보다 더 온화해 보였다. 그리고 그녀 곁에는 언제나 책이 있었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는 양 경쾌했고, 팔놀림은 비트에 맞춰 춤을 추듯 가벼웠다. 고개를 들어 그를 볼 때면 그녀의 눈빛은 마치 호기심이 가득한 어린 소년 또는 소녀의 두 눈 속에 있는 영롱하고 투명한 눈동자를 보는 듯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그녀의 눈빛은 궁금증에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은 담백했고 해뜨기 전 풀잎 끝으로 떨어지는 이슬처럼 청아했다.

나의 유머에 그녀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녀는 입술로 가 아니라, 입으로 가 아니라, 얼굴로 웃었다. 아니 얼굴과 머리로 웃었다. 아니 온몸으로 웃었다. 나와의 대화가 길어질수록 그녀의 얼굴과 몸은 어느새 그를 향해 바싹 다가와 있었다.

그녀는 아침이면 바지런히 움직여 베란다로 나갔다. 왼쪽에 있는 벌새를 위한 모이통에 먹이를 채워 넣고 물을 따라주었다.

 


오른쪽에 있는 ‘아메리칸 로빈(American Robin)’ , ‘캘리포니아 스크럽-제이(Californian Scrub-Jay)’, 그리고 ‘스팟티드 토우히(Spotted Towhee)’ 가 번갈아 날아오는 곳에도 똑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그런 후 동쪽 먼 산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기지개를 켜곤 했다.

주방으로 돌아와 무언가를 즐겁게 흥얼거리며 피망이며, 가지며, 케일을 닦았다. 차를 우리고 토스트를 했다. 그리고는 내가 그녀의 집으로 온 이래 지정석이 되어버린 식탁의 그 자리로 미끄러지듯이 그것들을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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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눌 때면 얼굴 가득 미소를 띠었다. 만들어지지 않은 미소는 마주 앉은 사람의 긴장을 녹이며 한없는 편안함을 선사하기 마련이다. 그녀의 미소가 그랬다. 얼굴 맨 바깥의 피부에 서서히 온기를 주고는 시나브로 진피층을 지나 모든 신경과 핏줄을 덥혀 화사한 온기를 온몸으로 전염시켰다. 음식을 제의할 때면 부드럽고 따뜻한 언어로 감쌌고, 쳐다보는 표정은 깊은 산 깊은 새벽 연못 마냥 한없이 편안해 보였다.

그녀는 1시간이 됐든 30분이 됐든 아니면 10분이 됐든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책을 읽는 모습을 흘끗흘끗 보면서 그는 옛일을 생각했다. 독서에 관해서 나는 민망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20대 초반 언저리 어떤 사람과의 대화 중에,
"넌 취미가 뭐야?"
그는,
"취미 중에 한 가지는 독서야."라고 대답했었다.
"독서가 취미?"
"......"
"내 생각에 독서는 필수야!"
"......"
"독서는 먹고 자고 싸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여행과도 같은 거야, 내 생각에."
"여행과 같다고?"
"어. 여행이 길 위에서 독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독서는 글 속에서 하는 여행이랄까?"
"그래?"

독서에 대한 독특한 해석에 난 감명받았다. 그녀는 대화를 계속해 나갔다.

"그렇지. 길바닥 위에서 살면서 무수히 만나는 사람과 자연과 예술 그리고 자연환경을 통해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배울 수 있는 것처럼, 독서를 통해서 나 아닌 사람들의 경험과 여정을 배우는 것이기에 시공을 초월해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길이지. 그러니 의식주에 버금가는 필수적인 것이어야지. 겨우 취미의 영역으로 떨어트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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