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가 이제는 두 가지 암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그녀의 집에 오기 전까지 그녀가 가진 암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은 유방암뿐이었다.
그녀의 남편인 프랭크는,
„그녀가 약을 안 쓰려고 해서 걱정이야. 이해할 수가 없어.”
라고, 불평했었다.
사실 그가 서부로 이사 온 후로 그가 보내오는 소식에서 그 자신의 인생이건 환경이건 뭐 하나 불평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유일한 불평, 아니 걱정거리가 바로 그의 와이프에 대한 것이었다. 정확하게는 그녀가 그녀의 암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였다.
하지만 그녀를 직접 만나보고 2주간 생활해보니 프랭크의 그녀가 암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불평은, 같은 암 환자인 내가 보기엔, 사실 불필요한 것이었다. 오히려 암 환자가 아니더라도 배우고 영감을 얻을 것들뿐이었다. 그녀에게는 세 가지 강력한 인생의 무기이자 항암 무기가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암과 긴 동행에서 필요한 세 친구,
긍정!
미소!
향유!
긍정이 없다면 부정이거나 왜곡이다. 그녀는 그녀가 암 환자라는 것, 그것도 갑상선암과 유방암이라는 두 가지 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긍정하고 있었다. 이 적극적인 긍정이야말로 암과 타협하며 동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아니고 무엇일까! 긍정이 없다면 부정이거나 왜곡이다.
사실 나 자신도 4기 다발성 진행성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대략 1년 동안은 거의 매일 그런 자세였었다. ‘부정과 왜곡’이라는.
“아냐! 내가 암 환자라니! 왜 내게 이런 게 온 거야? 내가 뭘 잘못한 거야?
나보다 못된 짓 하면서도 암 없이 잘 살고 있고. 더 형편없는 음식을 먹고, 심지어 맨날 술 마시며 담배 피우며 사는 인간들도 암에 안 걸리는데, 왜 하필 나야?”
나중에 안 거지만 대부분의 암 환자들이 심지어는,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이런 거야. 그 사람이(엄마가, 아빠가, 남편이, 와이프가, 상사가….) 날 스트레스로 몰아넣어서 내가 암에 걸린 거야.”
라며, 암에 걸린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다고도 한다. 누구든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암’에 대한 오래되고 왜곡된 이미지가 있다. 이 왜곡은 암이 흔치 않던 초기에 ‘암=사형선고’라는 등식을 성립시켰다. ‘흔치 않았다.’라는 표현은 아마 두 가지 경우 때문이었으리라.
하나는 말 그대로 주변에 암 환자가 흔치 않았다. 두 번째는 암을 잡아내는 의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거나, 있었더라도 병원에 가는 기회나 횟수가 제한적이어서 자신이 암을 가졌는지조차 모른 상태로 살다가, 1-2-3-4-말기로 이어지는 과정 중에서 하필 말기에 해당하는 경우에 발견되었기 때문에 더는 손쓸 방법이 없는 경우엔, 발견 내지 진단 자체가 사형선고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심지어 암에 대해 상업적 목적으로 ‘왜곡되고 강요된' 이미지도 있다.
숱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가족 중의 ‘누구’나 연인 중의 ‘누군가’를 암 환자로 설정했다. 눈물을 짜내서 시청률을 높이는 데에 절망적이고 가련한 소재 이상이 있을까? 인생의 시련을 맞은 암 환자를 그렇게 극 중 소재로 삼으면서 예외 없이 ‘시한부 인생’ 내지는 ‘사형선고’로 규정하면서 끊임없이 암에 대한, 암 환자에 대한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웠다. 그랬던 것들이 쌓이고 싸여 사람들의 뇌에 뿌리 박혀 자식 세대로 손주 세대로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암 환자에 대한 잔인하고 모욕적인 표현도 일상생활용어로 굳어져 있다, “암적 존재” 라는. 그런데 암환자가 그런 인식에 둘러싸여 있으면 아주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난 더는 방법이 없어. 삐쩍 말라죽어갈 거야. 수술하고 비싼 약 쓰며 집안 살림을 박살 낼 거야. 병원비에 약값에 죽어가는 몸에…. 뭐 하나 가족에게도, 주변에도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존재가 된 거야. 어디 가서 자살하던지, 사고라도 나 죽임을 당하던지, 하루라도 빨리 죽어야 해!”라고.
그런데 자신이 가진 암에 대한 그런 부정이나 '왜곡된' 긍정은 암 환자인 자신을 더 비참한 존재로 만들 뿐이다. 이 ‘내 인생의 비루함’은 자신의 삶에 대한 자존감을 끝 모르게 떨어뜨릴 것이다. 그와 동시에 웃음은 얼굴에서 사라지고, 대신 짜증과 불평이 생겨나고, 그 둘은 웃음이 사라진 얼굴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들러붙어 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신이 자신을 비참하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남인들 나를 존엄하게 생각할까? 웃음 대신 짜증과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 찬 내 얼굴을 쳐다보는 걸 누가 좋아할까?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서 남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행복 바이러스는커녕 불행의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그런 나를 누군들 편안해할까?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아름다운 긍정의 자세를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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