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이클이 끝나기 7일 전,
난 다시 세트 검사를 했다.
흉부 CT, 복부 CT, PET-CT로 이루어진 세트였다.
전산화 단층촬영(CT:Computed Tomography)
기계 위에 누우며 난,
"제발 이번엔 암 덩어리, 암세포가 싹 사라지기를!"
그렇게 기원했다.
내가 누워있는 받침대가 서서히 움직였다.
"숨 들여 마시세요~, 숨 멈추세요~"
라는 지시가 몇 번 오고 갔다.
멈췄던 숨을 내쉬면서,
"암세포들이여, 내 몸에서 다 빠져나가라~"
라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몇 번이나 이 위에 누웠었던가!".
"아마 내가 죽어도 이 몸뚱이는
썩지 않을 것이다, 방사선에 절여져서."
시간은 참 어떤 땐 거머리처럼
붙어 있어 안 가고,
어떤 땐 쏜살 같이 흘러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어디 내 기분따라,
내 사정 따라 그렇게 빨리도...
늦게도 가는 걸까?
그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내 느낌의 문제가 아닐까?
1주일 전에 받은 검사 결과를 들으러
난 또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 전 1시간 30분 전에 받으라고
쓰인 대로 또 다른 세트 검사를 했다.
혈액검사,
요검사,
심전도 검사로 이루어진 세트 검사.
CT 검사받으며 했던 생각을 또다시 했다,
"도대체 내가 뽑아내는 피가 얼마나 될까?"
라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6병이다.
표적항암제를 복용하며 그날까지
매월 6병씩 뽑았었다.
"이쯤이면 이 단골 혈관도 위축될 만도 할 텐데...
결과가 나올 때쯤 돼서 어김없이
설명 전문간호사님을 찾았다.
검사 결과를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는
약간은 들뜬 듯했다.
그의 그런 음성은 처음이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게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 듯했다.
어떤 때는 사무적이면서 건조한 음성으로,
어떤 때는 나의 웃음에
맞장구쳐주는 정도의
웃음을 보였던 그였다.
하지만...그는 그날
해맑게 웃는 얼굴에
들뜬 목소리였다.
내가 그의 검사 결과 설명 끝에,
"오늘 기분이 유독 좋으신가 봐요?"
라는 질문에,
"아, xxx 씨 결과가 좋아서 그래요.
부작용으로 아주 많이 고생하시면서도
약을 중단하지 않고
쭉 드셨잖아요?
아마도 그래서…."
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래서 뭐요?"
그는 나의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 xxx 씨와 같은 결과가 나오면
저도 보람을 느껴요."
라며, 그는 다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 때문에 그렇게…?"
"예. 축하드려요!"
"뭘요?"
라고, 나는 되물었다.
"그건 저한테 물으시면 안 됩니다.
교수님께 직접 여쭤보세요."
라며,
나를 그의 방에서 내쫓듯이 말했다.
주치의 교수님에게로 가는 내 발걸음은
왠지 비틀거리는 듯했다.
현기증 비슷한 그 무엇이
날 어지럽게 했다.
눈앞엔 아지랑이 같은 게 피어올랐고,
너울댔고…. 그런 기분은
병실 앞 간호사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절정에 다다랐다.
"xxx 씨 들어오세요!"
"예…."
라고 대답하며,
난 상기된 얼굴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어서 오세요."
라고 말하며 주치의 선생님은
컴퓨터 마우스를 빠르게 움직이며
내 기록들을
위아래로
몇 번을 훑었다.
"어젯밤에 리뷰를 했습니다만, "
"……."
"거의 완전 관해 수준입니다.
거의 안 보이는 수준입니다.
아니, CT 영상에
암이 안 보입니다."
"......"
"......"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좋아지고 잇다는 것을
예상하기는 했어도...
"...안 보입니다." 라는 말을
한 번도 예상했던 적은
없엇다.
무언가...뭔가를 말해야 했다.
거창하고 감격스러운 어떤 말...
그러나 너무 흔한 한 마디가가
내 입에서 나왔을 뿐이었다.
"아! 고맙습니다, 교수님!"
"하하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이제 약을 안 드셔도 됩니다."
"예?"
"이제 약을 안 드셔도"
"아! 교수님!"
그런 순간엔... 어떤 말이
나와야 하는 걸까?
나왓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런 내 맘 속질문에 대한
내 맘 속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하지만…. 3달에 한 번씩은
검사를 받으셔야 하고….
사진을 찍으셔야 하고…. 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교수님!"
"고맙기는요, 다 환자분께서
약도 성실히 드시고,
아침저녁으로 운동도 하시고,
식이요법도 잘 관리하시고….
해서지요."
"아닙니다, 교수님께서
리딩을 잘해주신 덕택입니다."
나는 그의 진료실을 나섰다.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기분이었다.
이제는 다시는 항암제를
안 먹어도 되겠지!라고
몇 번이고 소리를 질렀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얼굴 가득 환한 웃음,
아니 싱글벙글 웃으며
진료실 앞 길게 늘어선 의자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들은 실성한 사람을 보듯
나를 쳐다봤다.
병원 밖으로 나온 나는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꽃봉오리들을 보았다.
겨울을 밀어내며 오는 봄은,
봄바람은 내가 아주 어린
시골소년이었을 때,
주체 못 할 설렘을 가져왔었다.
그날,
나이 먹은 채로
신장이며 폐에
칼을 댄 상처뿐인 육신이었건만
여전히 설렘은 똑같았다.
내게 이 봄날은…
얼마나 오래갈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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