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예약증이나 병원 카드 있으세요?”
“안녕하세요... 아니요.”
“그럼 생년월일이?”
간호사는 그의 생년월일을 묻고는
시선을 컴퓨터로 옮겼다.
“없는데요.”
“….”
“예약하시고 오셔야 하는데….”
“….”
“안 그러시면 진료받지 못하세요.”
난 Y 병원 접수대에서 간호사와 대화를 하면서도 이건 좀 억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의고 염치고...뭐 그런 것 들을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만약 C병원의 진단이 맞다면?
내가 시간을 끄는 건 거의 자살행위였다.
암세포는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게 아니라 했다.
가하급수라 했다.
암덩어리는 구의 형태이며 3차원적이라고 했다.
그러면 제곱이 아니고 세제곱이 아닌가!
시간의 흐름에 비례하는 정도가 아니라...폭증이다.
시한폭탄이 따로 없을 상황에서 염치고 뭐고...
난 이러저러한 증상을 간단히 말했다.
끝에 이틀 전에 있었던 여기 병원의 예약 담당자와의 통화 내용을 말하면서,
"그분이, '가능성이 없을 수 있으나, 그렇게 급하다면 당일 접수라도 해서 대기자 명단에라도 올리라' 하시더군요.”
“그래요?”
“그분이 분명 그랬어요.”
“….”
“가능하지요?”
“오늘 그 교수님 진료가 꽉 차서 틈이 없을 텐데..."
"...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되면 그냥 갈게요. 이름이라도 올려주세요.”
사실 그녀가
내 입장을,
고통을,
다급함을 어떻게 알겠는가!
나와 자웅동체도 아니고.
또한, 병원에도 시스템이란 게 있다는 걸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아무나 아무 때나 와서는 진료를 부탁한다고 될 종합병원이 어디에 있을까?
더더군다나 콧대 높기로 유명한 Y대학병원 아닌가!
어디 병원에 오는 사람이 나뿐이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의사 얼굴도 못 보고 죽는다 하질 않는가!
접수만이라도 해주는 게 어디야!”
나는 중얼거리며 그 직원의
표정을,
손놀림을,
몸짓을
유심히 읽고 있었다.
판결자 앞의 죄수처럼!
“예. 일단은 대기자 명단에 올렸고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못 합니다. 아마 마지막 환자 보시고 곧바로 수술이 있으실지도요.”
“….”
“저기 모퉁이 돌아가시면 C 교수님 진료실입니다.”
“저기요?”
"..."
난 벌렁벌렁 뛰는 가슴에 손을 얹고 있었고, 심호흡하고 있었고... 길 잃은 한 마리 병정개미처럼...
그런 나의 앞뒤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 의사의 진료실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마치 개미집 입구의 일개미들처럼...
“들어가자마자 나오네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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