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들락날락하는 환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난 벌써 3시간이 넘게 진료실 앞 복도며,
홀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고개를 푹 떨구고 들어갔다가
어깨를 쫙 펴고 나오는 환자,
근심 어린 표정으로 들어갔다가
활짝 웃고 나오는 환자,
어두운 얼굴로 들어갔다가
더 어두운 얼굴로 나오는 환자,
혼자 온 환자,
온 가족이 몰려온 환자,
조용히 있다가 조용히 들어가서
조용히 나오는 환자,
옆 사람에게 병 자랑하며
정보를 얻으려 애쓰는 환자,
젊은 여자 환자,
80은 훌쩍 넘겼을법한 할아버지,
가족의 부축 없이는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할 듯한 환자,
이 간호사 저 의사 등의 목례를 받는,
누가 봐도, 이 대학병원
의사 같은 환자...
하지만, 그 의사일듯한 환자 빼고는
3분을 넘겨 나오는
환자는 없는 듯했다.
“죽을 때까지 의사 얼굴 한번 못 봤다’는
누군가의 말을 나는 또다시 떠올렸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그래도
3분이라도 보고 나오는
이분들은 다행인 게 맞지?”
나는 또다시 혼잣말만...
“나야말로 오늘 의사 얼굴이나
보고 갈 수나 있을는지..."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안내판엔 1명의 이름만 남아 있었다.
아마 그 여자분인 듯했다.
그러나 거기, 안내판엔 내 이름은 없었다.
“안 되나 보구나!”
그런 혼잣말을 하며 나는 내려놨던
가방을 다시 들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그냥 누워 있고 싶었다.
“천장 쳐다보고 있노라면 잠이 들겠지.
그냥 그대로 잠들겠지…”
그때,
“xxx 씨!, xxx 씨!” 하는
간호사의 호명이 이어졌다.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그 지방에서 오신다는…어르신인가 보구나.”
여러 번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곤… 안내판 어디에서도 안 보였던
내 이름이 불리어지고 있었다.
“예!”
난 순간적이나마 기쁜 마음으로
진료실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지금 웃어야 할 때 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교수님?”
“가져온 자료 봤어요.”
“예…”
“내가 잠깐 리뷰를 했는데...”
“…”
“당신 넘버 쓰리야?
“예?”
“내가 본 것 중에서 당신 암 크기가
넘버 쓰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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