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병원에서 좀 크다고 하긴 했습니다만...”
“”좀’ 크다던가요?”
“예…”
전 병원에서 분명 '크기'를 들은듯한데...
대략 '5x 뭐'라고 했던 것 같았는데...
그 교수님이 무슨 숫자를 말했던 것 같았는데...
당시엔 하도 정신이 없었던 난
‘좀 큰가 보다’ 했었다.
사실 그때는 “암입니다"란 말이,
거대한 해머가 되어 내 머리를 사정없이
치고 있었기에, 당시의 나에게 암의 '크기'는
그리 중요하게 들리지 않았었다.
깨진 도자기의 파편을 모으듯
당시의 대화 내용, 특히 그 교수님의 말씀을
복기하려 애썼다, 복잡해진 머릿속에서.
하지만 암 선고 이후 내 머리는
마치 엉켜버린, 너무 엉켜 풀 수 없는,
게다가 풀려하면 더 엉켜 영원히 풀 수 없는
저주의 실타래 와도 같은 상태였었다.
나의 복기를 위한 노력은, 그러나,
C 교수님의 이어지는 말씀으로 끝을 맺지 못했다.
“큰 정도가 아니야! 이건... 내가 본 것 중에서...
분명히 이 정도면 세 번째야. 그래서 넘버 3이라고 하는 거지.”
난 감이 안 왔다.
하지만 내 눈앞에서 교수님이 ‘넘버 3’라 하시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왜냐하면 이 C 교수란 분,
우리나라에서 이 분야, 특히 로봇수술 분야에선
거의 넘버 원!이라고 소개된 분이었기에.
우리나라에서 당시에 최다 수술기록을 보유하셨던...
이분은 이 분야의 권력이었다.
그 병원에서도 권력이었고.
난 그런 분을 여기저기 찾아 헤매며...
알아내고는 대책도 없이
무작정 나타나서,
3시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거였다.
그런 의대 교수님께서 '넘버 3' 하시니...
C 교수님의 그 종결적 표현과 함께
나에겐 '사이즈'가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얼마나 큰 거야?’ 속으로 생각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성인 콩팥 하나의 크기가 얼만지 아세요?”
“…”
난 대답 대신 그 교수님을 물끄러미
볼 뿐이었다.
콩팥 크기? 생각이 도저히 안 났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다닐 때, 그쯤 어딘가에서
분명히 배웠을 법도 한 대......
나로부터 어떤 대답도 없자
그 교수의 얼굴엔 어이없다는 표정,
한심하다는 표정, 불쌍하다는 표정 등이,
급행이 예정에 없는 역을 스치듯이,
빠르게 지나가는 게 내 눈엔 보였다.
이해 못 할 복잡한 표정을 종착역으로 해서
빨개진 얼굴과 함께 그의 표정 운전은 멈췄다.
(나중에 안 거지만
환자가 좀 한심하다 생각이 들면,
그 한심함이 그를 화나게 하는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그 교수님의 얼굴은
원숭이 엉덩이마냥 빨개지고.)
그리고는
나란 존재가 마치 현미경 대물렌즈 앞의
무슨 (암) 조직 파편이라도 되는 양
나를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시더니,
그의 책상 위에 있는 아몬드 한 무더기 중에서
서너 개를 입으로 던져 넣었다.
그 걸 다 씹은듯하시더니,
“콩팥이 두 개 란 건 아시지요?”
그건 나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었다.
내가 설마 신장이 두 개란 걸 모르겠어!
“예. 압니다, 교수님.”
“그렇군요... 신장은 일반적으로,
길이가 10cm, 너비가 5cm, 두께가 3cm
정도 됩니다.”
“예.”
“ 한쪽의 무게는 대략 200그램쯤 되고요."
“예…”
“ 그런데... 당신 암 크기가 15cm야!”
나는 순간 어지러웠다.
그제야 ‘크기’가 실감이 나기 시작했던 거다.
"15cm? 15cm? 그럼… 암 덩어리가 내 콩팥보다
더 크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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