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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11년 암 진단, 4기, 전원, 첫 번째 수술, 좌절

암삶 10-폐전이 진단, 절망마저 사치가 되는(2011)

by 힐링미소 웃자 2021.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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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문득 어렸을 때 기억이 났다. 변함없이 그리운 고향은 예나 지금이나 아주 시골이다. 아주 한참을 걸어가야 오일장이,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서는 곳까지 갈 수 있었다. 아마 내가 11살쯤 됐을 때, 할머니 따라 시장에 갔었는데, 당시의 그런 5일장은 오늘날로 말하면 사람들로 가득 찬 큰 시장 내지는 대형 쇼핑몰쯤 될 거 같다,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에 갔다 오니 할머니가 안 보이셨다. 할머니를 찾아 헤맺지만 보이지 않으셨다.

그건 할머니 잘못이 아니었다. 내가 할머니가 기다리셨던 곳의 반대 방향으로 나왔던 거였다. 주변엔 어마어마한 인파들만 가득했고,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간신히 동네 어른 따라 집에 왔었는데, 절망 끝에 귀가한 후라서 지치고 어지러워 자고 싶었지만, 놀라고 무거운 기억에 잠들지 못했었다.

 

 



2011년 봄의 기억, 당시의 상황이 그와 유사했다. 4 기암, 폐 전이, 다른 조직이나 기관으로 갔을 가능성도... 그런 말들을 듣고, 이 병원 저 병원에 전화하고... 혼돈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오후 6시가 지났어. 저녁을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가만히 있을 수도 누워있을 수도 서 있을 수도 없었다.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그런 생각뿐이었다.

언젠가 만났던 국민학교 동창의 보챔이 떠올랐다.
“어이, 친구! 병원 가서 진찰 좀 받아보지?”
“왜?”
“왜 그렇게 얼굴이 검어?”
“허허, 이 친구도. 내가 촌 출신 아닌가?”
“이 친구 참. 나는? 나는 왜 얼굴이 허여?”
“자네야 뭐 본래 태어날 때부터 그런 거 아냐?”
“그래도 친구 서울 생활이 벌써 30년 가까이 아녀?"
"그렇지..."
"그럼 좀 뽀얀 색으로 변해야 되는 거 아녀?"
"..."

 

 


"그게 아니라도 내가 보험만 20년 넘어, 이 사람아!
딱 보면 본래 그런지, 얼굴이 타서 그런지....”
“딱 보면 안다 그거지?”
“그럼! 자네는 몸이 상당히 안 좋은 겨!”
“…”
“친구, 술도 마시지?”
“어”
“얼마나?”
“뭐 대중없어… 에이~ 친구 그만 혀. 동창회 와서 딴 친구들도 많은데...”
“담배도 피우지?”
“허! 이 친구 참…”
"우리끼리만 쏙 딱 거릴 순 없다?”
“그려.”
“내가 곧 전화할게. 요즘 친구 생활 어떤가 나랑 얘기 좀 혀 보자고~"

나는 어떻게든 그 밤을 보내야 했다. 그래야 다음날이 올 거고, 그래야 C 병원 교수님 만날 수 있고, 입원 수속 밟았던 거 취소도 할 수도 있고,
‘전원 의뢰서(진료의뢰서)’라는 힘든 말씀도 드려야 하고... 어쨌든 잠자리에 들었다. 아니, 그냥 누웠다. 천장엔 언제 시작했는지 모를 필름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곳에 익숙한 얼굴, 바로 나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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