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비뇨기과 교수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환자분, 이번엔 초음파 검사를 하겠습니다.”
“어디서요?”
“여기서요.”
“…...”
“환자분, 잠깐 기다리세요.”
“......”
“김 선생! 여기로 좀 와봐요.”
그 비뇨기과 교수는 나의 옆구리 이쪽저쪽에 초음파 프로브를 움직이며 옆 진료실 쪽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다른 의사를 부르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순간적으로 혼동이 왔다.
“또 다른 의사가 왜 필요할까?”
“혹시 이분 이런 종양류에 대한 전문가가 맞을까?”
옆방에 있던 젊은 의사가 들어왔다. 큰 키에 짙은 검은색 뿔테를 끼고 있었다. 여기가 아니라 연구실에 있으면 딱 어울릴 분위기였다. 바지는 수술복인 듯 끝단이 넓은 7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예복에 가까운 흰색 재킷과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김 선생이라고 불렸던 그 의사가 들어오고 나서 비로소 짐작이 현실이, 추측이 진실이 되었다.
“김 선생, 이게…. 봐! 여기. 이게…. 확실하지?”
“예. 교수님.”
“으음.”
“크네요. 와아, 이건….”
무슨 비밀작전 중의 최소화된 교신을 하듯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그들만이 아는 표정으로, 몸짓으로, 눈짓으로…. 그들만의 그것들로 교감을 하는 듯 보였다. 초음파의 프로브가 나의 옆구리에서 떨어지며 비로소 검사가 끝난 듯 보였다. 몸에, 배에 남아 있던 젤을 닦고 난 그 교수는 눈짓으로 나를 그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로 안내했다.
2층 창가를 옆 배경으로 해서 창문이 열리는 한계선인 왼쪽 창틀 끝엔 내가, 그 건너편엔 그 의사가 자리를 잡았다. 비스듬히 보이는 창밖으로 막 개강한 대학교 교문에서 빠져나온 청춘들이 막 열리기 시작하는 꽃봉오리들처럼 노랑과 핑크, 빨강이 되어 거리를 화사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넋 나간 표정으로, 눈동자 없는 눈길로 그런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교수가 다음 말을 위해 입술을 떼기 전까지.
“보호자께서 도착하시기 전에라도 빨리 말해달라고 하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
“암입니다. 신장암!”
“......”
“암의 크기가 상당히 큽니다.”
“......”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얼마 나요?”
“신장 크기보다…. 암덩어리가 더 큽니다.”
“예어? 암덩어리가 신장 크기보다 더 크다고요?”
“예. 긴급을 필요로 합니다.”
“......”
“더군다나 이미 다른 조직으로 상당히 퍼졌습니다.”
“그게 무슨 뜻...?”
“전이도 됐다는 말입니다. 어제저녁 촬영하신 CT 영상을 기초로…. 폐로도 상당히 큰 덩어리들의 형태로 널리 퍼져있습니다!”
나는 바닥에 깔리는 느낌을 받았다. 두 다리에 힘이 없어지고, 눈앞이 어지러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어디를 봐야 하는지도 몰랐다. 2층 높이밖에 안 되는 창밖 길바닥이 천 길 낭떠러지 같았고, 색색으로 차려입고 길바닥을 수놓은 인파들은 마치 내가 추락한 후의 피투성이처럼 보였다.
“이건…. 이 내 눈앞의 풍경은 현실이 아니야…. 환각이야. 방금 들은 건 분명 환청이야.”
나는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깨어 있는 상태가 맞는 건지, 진실인지 도무지 분별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릴 때, 아마 예닐곱? 홍역인지 뭔지 모를 것에 몇 날 며칠을 몸이 불덩어리가 되어 땀으로 미역을 감은 듯 앓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환상을 봤었다. 하늘인지 허공인지를 날랐다 추락했다를 반복했었다. 거대한 무지개색의 회오리로 빨려 들어가는 듯도 하다가 빠져나오고…….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깨곤 했었던…….
“그때의 그 혼돈도 이렇듯 절망적이지는 않았을 거야.”
나는 실성한 듯 그렇게 말했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그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맥질 후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젖은 머리를 흔들어 물을 털어내듯.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자신과의 문답을 시작했고, 그리고 간신히 짧은 결론을 끌어냈다.
“그래 어디 종합해 보자. 암... 상당한 크기... 폐로도 전이... 긴급하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또 물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절망을 정말로 믿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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