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치의의 당시 얼굴 위엔 못 믿겠다는 표정이 너무도 선명하게 각인된 듯 보였다. 놀람과 분주... 같은 표정도 얼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듯도 했다. 낭패감도 역시 또 다른 한자리를 차지한 듯 보였고…. 아주 복합적인 표정이셨다. 내가 존경하는 이 교수님은 학술위원이시기도 하다. 그러니... 이 암이란 존재, 이건 거의 불가사의다. 전문가들은 뒤를 따라갈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교수님, 저는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
“불과 한 달 전에 제가 교수님을 뵈었었고,”
“…….”
“그때 아주 간혹 가다가 약간의 통증이 순간적으로 있다가 사라진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만,”
“…….”
“이런 일이 갑작스럽게 생길 줄 꿈에서라도….”
“…….”
하지만 머릿속에 있는 게 간결하고 단순하다면 말하기도 편했으리라. 하지만 분노와 절망이라는 게 그리 단순하게 다룰 성질의 것들일까? 거기에다가 상대방과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를테면 애증의 교차 내지는 혼재, 경우엔 무슨 말을 먼저, 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를 알기가 어렵다. 그런 경우 잘못하다간 스텝이 엉키듯 혀도 꼬일 수 있어 극단적으로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리하는 과정을 건너뛰고 성급히 잘못 말했다가는 그야말로 겨우 세 치뿐인 혀로 감당할 수 없는 양의 화를 애써 부르는 격이 될 수가 있으리라. 꼬인 혀로 부를 게 화밖에 더 있을까! 특히 둘 다 극단적으로 돌발적인 격한 긴장의 도가니에 갇혔을 때는 더더욱이….
둘의 공감대는 명확했다.
과거가 아니라 ‘지금’과 ‘앞날’이 모든 것의 맨 앞에 서야만 했다.
‘서두르자!’
나의 주치의께서는 조금 전과는 다르게 얼굴에 침착함으로 바탕색을 칠한 듯이 보였다. 그 위에 복잡 미묘라는 무늬를 채워 넣으신 듯했다. 마지막으로 연민과 격려로 색칠을 마감하셨다,
“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해봅시다!”
라며.
나의 주치의께서는 긴박하게 간호사를 찾았다.
“영상의학과 xxx 선생님의 이후 진료 상황 좀 확인 해주세요.”
“예.”
그는 측은함으로 물들여진 눈으로 날 쳐다봤다. 나도 그분의 눈을 쳐다봤다. 아마 그런 상태로 1분쯤 지난 듯했다. 간호사의 보고가 이어졌다.
“오후에 쭉 진료가 있으시답니다.”
“그래요? 이분 빨리 의뢰 좀 해주시고…. 내가 그 선생님께는 직접 연락드릴 거고요!”
난 물었다.
“왜 제가 영상의학과에 가야 하나요?”
“제 생각에 우선 방사선으로 그 다리뼈 속 암 덩어리를 처리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분의 말씀은 조심스러웠다. 그렇지만 빠르게 조건을 덧붙였다.
“ 영상의학과 선생님이 어떻게 하실지….”
난 질질 끄는 아픈 쪽 다리로 불길한 긴 선을 남기며 영상의학과로 향했다.
그 영상의학과 교수님께서는 경험이 아주 풍부할뿐더러, 방사선을 이용한 모든 종류의 암을 치료하는데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란 설명은 이미 받았던 터라 잔뜩 기대를 걸었다. 나 또한 그분을 [명의]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뵌 적이 있었다.
“앉으시지요.”
“고맙습니다, 교수님”
“고생이 많으시지요? “
“예…. 하하”
“제가 영상을 이미 봤습니다.”
“…….”
“제가 궁리를 좀 해봤습니다만.”
“…….”
“이런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제가 해드릴 게 없는 상황에 해당합니다.”
“예?”
“…….”
“왜 그렇지요, 교수님?”
아마 내 앞에 거울이 있었다면, 돌연 머리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우물쭈물, 좌불안석, 동공 없는 눈동자로 멍하니 앉아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리라. 아까 영상의학과로 가보라는 말을 들었었을 때의 순간적인 어지러움과 여기를 향해 복도를 걸어오는 내내 내 눈앞에 어른거렸던 불길한 그림자 환영들이 나를 이 절망의 구석으로 안내할 전령들이었으리라.
하지만 난 물어야 했다.
“교수님, 간곡히 부탁 좀 드리면 안 될까요?”
“휴~우~”
“…….”
“제가 굳이 하자면 하지요. 문제는 이런 경우 방사선요법을 시행 중 십중팔구 골절이 일어납니다. 아니 지금의 상태로는 거의 100% 골절이 예상됩니다. 환자분의 경우에는 그냥 골절이 아닙니다. 뼛속이 암으로 꽉 찬 상태에서 아주 얇게 남은 뼈가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라서.”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문제가 아주 복잡해집니다. 환자분께서 의사가 아니시더라도, 단순하게만 생각해도 암이 여기저기로 퍼질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복잡한 수술도 예상할 수도 있고….”
“교수님, 저의 경우 정확히 어떤 경우인가요?”
그 영상의학과 교수님은 메모지 위에 간단한 그림을 그리셨다. 그리고 다시 입을 뗐다.
“환자분께서는 대퇴골에 종양이 생긴 경우입니다. “
“원발성인가요?”
“모릅니다. 그건 조직검사를 하기 전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
그 선생님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내 얼굴을 쳐다보셨다. 그리고는,
“대퇴골 중에서 골간에 종양이 생긴 경우입니다.”
“......”
“여기 가운데가 골수강입니다.”
“…….”
“그곳을 황색 골수가 채우고 있지요.”
“…….”
“그곳을 치밀골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
“치밀골을 골 외막이 에워싸고 있고요.”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골수는 물론이고 치밀골도 거의 다 먹어 치웠습니다.”
“그럼…?”
“골절, 즉 부러지기 일보직전입니다.”
“아아.”
아아 그렇구나!
‘하하하.’ 난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때로는 절망이 허망을 부르고, 허망이 실성을 부르나 보다. 때로는 슬픔이 격해져 절망적인 슬픔으로 변하고, 그 슬픔이 하염없는 눈물로 변해 절망의 바다를 만들어 그 위에 실성의 배를 띄워 어디론가 밀려갔으면 하기도 한다. 당시의 내가 그랬다. 헛웃음만 솟구쳐 올라왔었다.
하지만 무슨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그래서,
“교수님, 그래도 뭣 좀 시도라고... 저를 위해서...”
그는 다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죄송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내용을 차트에 써서 주치의 선생님께 넘기겠습니다.”
“그럼?”
“돌아가셔서 주치의 선생님과 상의하셨으면 합니다!”
‘해줄 게 없으니 다시 돌아가라!’
하하, 그래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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