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화나는 일만 생기면 지친다.
뽑혀 내 팽개쳐진 배추처럼,
주인도 버린 나뒹구는 밭고랑 위의 파처럼, 그렇게!
그러다 원망하고….
쌓여가는 원망이 더는 돌이킬 수 없음을 알게 되면서
절망이 찾아온다.
비틀거리는 몸을 밀어 넘어뜨리는 것도 부족해서
넘어진 등짝을 밟고 가듯….
일어서려 해도 이제는 양손을,
아니 한 손마저 땅에 디딜 힘이 없음을 깨달을 때쯤 되면
체념이 찾아온다. 체념이 내 머리를, 가슴을 버리고!
이제 남은 건 쉰내 나는 마지막 호흡 한 번뿐!
그다음에 오는 건 무엇일까!
그냥 어느 한여름날,
가뭄에 말라버린 마당에 땡볕마저 내리쬐는 날,
먼지 날릴 뿐인 잊힌 옛길 위에
쓰러진 채 가엾은 형체만 남기고는
말라비틀어진 개구리?
난 암이 얼마나 영악하고 엉큼한지를 진단 후부터
이곳저곳에서 듣고 공부하고… 해서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토록 교활하고 비열할 줄은 몰랐다.
예측불허!
상상 초월!
멀쩡한 세포가 회까닥 돌고,
그 게 죽지 않고 영원 불사가 되고,
개개비나 붉은 머리 오목눈이 둥지 안의
뻐꾸기 새끼처럼 먹이를 다 뺏어 먹고는,
이곳저곳으로 식민지를 개척하는,
암을 전이시키는 탐욕!
그러면서도 면역세포를 속이기 위해
면역세포인 양 위장도 하고.
그것도 부족해 면역세포를 꼬셔서
제 편으로 만들고,
나중에는 숙주가 된 면역세포로
다른 면역세포를 방어하고,
공격하고….
하지만 어떻게 이 정도까지나 사악하고 간악할 수가!
난 2개월마다, 또는 3개월마다
흉부와 복부 CT를 찍었었다.
그런데?
그 복부 CT의 바로 밑,
바로 그 CT가 커버하는 밑의 경계,
그로부터 바로 1cm 밑에서
거대한 암이,
전이된 암이 탐욕의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난 다급하게 전화했다,
내가 쭉 진료받아오고 있던 병원으로.
정기적으로 추적 검사를 받아오던 범위의
아래쪽 경계로부터 약 1cm 밑에서부터
무릎 방향으로 약 10cm 정도로
추정되는 길이의 큰 골육종이 보이는데,
기존의 암이 전이된 거로 예상된다는 진단을
집 근처 대학병원에서 받았는데,
나를 진료한 의사분께서 이르시길,
"골절 일보 직전이니 급하게 서둘러서 조치해야 한다"
고 하더라는 내용이었다.
병원 측에서는,
"얼마나 놀라셨냐?"
라는, 위로의 말과 함께
"잠시 기다리라'
는 안내를 했다.
3~4분이 흐른 후,
"급하게 주치의 선생님께 알렸고,
다음날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으니
서둘러 내원 바란다"
고 덧붙였다.
사실 2개월 간격의 정기검진에 비해
한 달이나 빨리 주치의 선생님을
볼 일이 생긴 것이었다.
그때의 기분이란,
이건 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요,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었는데,
그걸 하필 내가 맞은 기분이었다.
아니면 꿈이야, 생시야! 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등잔 밑이 어둡다 한들
너무 어두웠었다.
난 다음날 털 뜯은 꿩처럼,
비 맞은 강아지처럼
병원 진료실 앞에
앉아 있었다.
푸줏간에 든 소 처지가
나보다는 훨씬 나았으리라...
나와 암,
나름 사이좋은 동행길에
빨간불이 들어올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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