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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16년, 육종성 변이, 세 번째 수술, 다리뼈 절단

암삶 67-신장암 전이, 폐 전이암을 거쳐 육종성 변이 치료방법

by 힐링미소 웃자 2021.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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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 집에 왔다. 좋았다. 손바닥, 딱 손바닥만 해도 집이 좋다. 왜 좋을까? 익숙함일까?

내 이러저러한 체취가 여기저기에, 벽지며 방바닥이며, 덕지덕지 묻어 있다가, 내가 돌아온 걸 보고 다시 돌아갈 곳을 발견하고 내게 스멀스멀 다가오는 게 보여서일까? 힘들 때 문 닫고 흐느끼며 흘렸던 눈물방울들이 구석에 머물렀다가 다시 돌아갈 두 눈을 발견하곤 울며 내 두 눈가로 다가와서일까? 기쁠 때 지었던 웃음이 천장에 붙어 있다가 다시 돌아갈 얼굴을 보고 웃으며 다가와서일까? 화가 날 때 했던 욕이 바닥에 껌처럼 붙어있다가 지 돌아갈 입술을 발견하곤 욕하면서 내게 달려와서일까?

바닥에 벌렁 눕고 싶었던 마음도 잠시, 난 아픈 다리의 존재를 깨닫고는 조심스레 침대에 누웠다. 내 작은 한 몸 뉘면 팔과 발바닥은 허공에 떠 버리는 작은 크기의 침대 위에 조심스레 누웠다. 아이의 체취가 느껴진다. 그 침대의 주인은 그때쯤 학교 교실 책상 위에 얼굴을 묻고 잠들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체취는 날 나른하게, 편하게 만들었다.

 

 

 

잠깐, 아주 잠깐 잠들었던 듯했다. 하지만 아주 깊게, 깊게 잠들었던 게 확실했다. 연신 울려댔던 휴대폰 소리도 내 잠을 깨우질 못했던 모양이었다. 요동칠 듯 흔들렸던 어깨의 통증에 잠을 깼다. 일정이 변경되었으니 빨리 병원으로 와서 입원하라는 연락이었다.

미래는 예기치 않음의 연속임이 틀림없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아주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이 틀림없다, 이 세상은. 내가 피곤함에 지쳐 자려고 해도, 병원에서 연락이 오고, 세상의 모든 병원이 내 혼자만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서, 난 수 없는 톱니바퀴 속의 아주 작은 하나에 불과하기에, 와서 입원하라고 하면 해야 한다.

그래서 급하게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갔고, 입원 수속을 하고, 병실에 갔고, 세상 이치대로...

다인실이 없었기에 우선 2인실에 입원했다. 촌로의 부부가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계셨다. 들리는 소리는 TV였다. 집에 그 물건이 없었고, 그래서 익숙하지 않았기에, 크게 울려 퍼지는 TV 소리는 내게 고문 그 자체였다. TV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선 안 됐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시...쇼?”

나도 태생이 컨츄리꼬꼬였기에 그의 사투리는 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향수를 깨웠다. 나도 고향 언어로 그와 대화했다. 그는 80이 가까워진다는 자신의 소개와는 달리 60이 갓 넘은 듯 혈기왕성해 보였다.

“어르신은 뭔 일로 오셨어요?”

“난 전립선이 문제라고 했대네.”

그분의 대꾸에 보이는 단어들은, 짐작에, 내 고향에서 경계를 넘어야 그 양반이 사시는 곳에 갈 수 있을 듯 들렸다. 나중에 한참을 대화해본바 사실이었다. 차로 한 두어 시간은 가야 했다, 내 고향에서.

 

 

 

그분과 나중에 합류한 그분의 부인까지 내게 쉼 없이 쏴대는 질문에 일일이 답하기엔 당시의 내 상태는 그렇게 한가한 게 아니었다. 나에 비하면 걱정할 게 그리 많은 단계의 암 기수가 아니었다. 1기도 아니고 초기였고. 난 애써 대답을 하나씩 걸렀다. 그런데도 후렴처럼 반복된 질문은 날 거의 쓰러지게 말 들었다.

“으이고 어쩔까나이~ 아직 한참 젊은데. 젊은 사람이 어쩌다 그랬던가이?”

"이 방이 하루에 20만 원씩이나 한다는데…."

라고, 난 그분들에게는 안 들릴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어쨌든 그 시스템은 바뀌어야 했다. 입원하란 말에, 했으나,

“2인실 밖에는 없다”

라고 한다면, 지출이 너무 크다. 물론 난 당시에 미리 들어뒀던 손해보험 덕에 걱정을 덜 했지만... 아무튼 그분들의 염려와 TV 소리가 내는 불협화음은 날 더 지치게 했다.

“어르신들! 저 오늘 일찍 자야 해요!"

라고, 또 나만 알아들을 목소리로 외쳤다. 이미 다음날의 바쁜 일정을 안내받았었기에 보통 초조한 게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참 중요한 날..."

난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다. 정형외과 교수님을 뵈어야... 난 그분이 기대됐다. 내 폐를 떼내신 분도 항암은 쳐다도 안 보시는 '칼잡이'! 이분도 '항암 하려면 딴 교수 봐라!' 하시는 칼잡이 교수님. 음... 

 

그분은 대뜸 말씀하셨다.

“이런! 이거 안 되겠는데!”

세 대의 모니터에 띄워진 사진들을 보며 정형외과 교수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씀하셨고, 난 그저

“예?”

라고만 반문했다. 그분의 표정은 무표정, 아니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무언가를 내게 말하려고 하는 듯 잠시 머뭇머뭇했다. 잠시 멈췄던 그의 입은, 대신에, 내 다리 사진들 속의 뼈를 향해 말씀하셨다.

“이게, 이게 힘들겠는데...”

 

난 혼잣말처럼 중얼중얼하는 그분의 말을 받았다.

“교수님, 영상의학과 쪽 교수님께서는 뼛속에 자리 잡고 있는 암 덩어리를 긁어내고 보완제 등을 넣은 후, 필요하면 방사선을 좀 해보면 어떨까 하시던데...”

“그래요?”

그분의,

“그래요?”

는 말꼬리가 올라갔었음에도, 내용은 묻는 게 아닌 듯했다. 이를테면,

"어이없네!"

이거나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닌데!"

와 같은 의미로 내겐 들렸다.

“교수님,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 이게…. 어쨌든 어제 영상 쪽 xxx 선생님이 환자분을 의뢰하셨어요. 환자분의 이런저런 자료들을 보며 전화로 상의를 했었고, 언제라도 골절이 일어날 수 있는 상태이니까 빨리 입원토록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주고받았었습니다. 주치의와도 그런 얘기를 했었거든요.”

“아~, 그래서 어제 갑작스레 병원에서 연락이 오고, 제가 입원할 수 있게 된 거군요.”

“......”

“고맙습니다, 교수님.”

그 교수님은 한 손은 의사복 상의 주머니에 넣은 채로, 다른 손은 흘러내리는 안경을 추스르면서 진료실을 왔다 갔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셨다. 8개의 눈이 일제히 그의 몸을 따랐다. 그 교수님은 레지던트 선생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나, 다음 주 수술 다 찼나?”

“잠깐만요...”

바쁘게 움직이는 그 레지던트 선생님만큼이나 간호사님의 차트 넘기는 소리도 바쁘게 들렸다.

“예. 꽉 찼습니다.”

“어디 좀..., 아, 여기, 여기를 좀 조정하자고.”

“예.”

“일단 이분은 급해. 아주 급해. 환자분, 조심하세요. 걸어 다닐 때나 앉을 때, 심지어 잠자다가도 부러질 수 있는 상태입니다.

병실에서도 각별하게 조심하셔야 하고요.”

“그럼, 전 어떻게...?”

“일단 제가, 아니, 담당 선생님들과 더 얘기 좀…. 더 좋은 방법이 뭔가…. 뭐가 있나 좀 볼게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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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처음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급박하게, 이렇게 서둘러 조치를 하는 게. 물론 두 번째 병원에서도 급박하게 돌아갔었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었다. 이건 뭔가 되게 안 좋은 예감이었다.

“우선 내일이라도 수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환자분은 복용하시고 계시는 약이 좀 있네요.”

“예.”

“그 약들 중엔 지혈을 방해하는 성분이 들어있는 약이 있습니다. 수술을 하기에 앞서 최소한 5 일에서 7 일 전에 복용을 중지해야 하는 약들이지요. 무슨 약들이지요?”

분명 그 교수님은 내 차트를 보셨다고 했다. 그럼 내가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알았을 게 확실했다. 그런데도 물어보고 계시다.... 왜일까? 환자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싶은 걸까? 아니면 환자를 통해서 빈틈없이 확인할 요량일까?

“예. 저는 지금 표적항암제를 복용 중이고요.”

“언제부터이지요?”

“이제 한 달이 될까 말까입니다.”

난, 이 사단이 나기 한 달 전에도 주치의를 뵈었었다. 그때 완전관해 소견에 의해 중단했었던 표적항암제를 다시 복용해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최대 용량을 처방받았었다. 이유는 명확했었다. 완전관해 이후 추적검사를 진행할수록, 폐로 전이된 암 덩어리들이 커지고 있었고, 개수도 늘어나고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한마디로 볼륨이 커지고 있었는데, 더는 그냥 두고 볼 상태가 아니란 결론이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날과 그날 이전에도 가끔 허벅지와 무릎에 통증은 있었지만, 간헐적이었던 데다가, 하필 진료받던 그날엔 통증이 없었다. 그날 난 주치의께 통증이 간혹 간혹 있다는 말과 함께, 아마 운동을, 요가를 너무 심하게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말씀드렸었다. 그 말은 들은 나의 주치의께서는 ,

”지금도 아프시냐?”

라고 물으셨고, 난,

“지금은 아닙니다.”

라는 대답을 했었다.

지나고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그날 그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제 다리에 통증이 있습니다. 간헐적이긴 한데 걱정이 됩니다. 검사 처방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었어야 했다. 내가 무슨 의사라도 되는 양 오지랖 넓게 지레짐작으로 원인까지도 말했었다. 북 치고 장고 치고.

내 몸이 상대하고 있었던 게 어디 타박상 정도였던가? 고도로 진화된 암세포 아녔던가? 최고의 의사와 과학자들도 다룰까 말까 한, 알까 모를까 할 암세포 아녔던가! 그러니, 원인을 묻지도 않았는데 운동 때문일 거니, 요가 때문일 거니, 한때는 그랬느니, 지금은 안 그러니 말한다는 게 어디 환자가 할 말이었던가?

그냥 증상만 자세히 말씀드리며 검사를 부탁했어야 했던 게 환자인 내가 취했어야 할 자세였다.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그 후에 찾아온, 나의 그런 안일한 대처에 따른, 결과는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힘든 것이었기에.

한편으론, 머피의 법칙 같은 게 꼭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티끌에 불과한 내 인생을 에워싸고 있는 복잡하고 심오하며 불가항력적인 세상이여! 내가 암 환자가 되고 나서부터, 아니면 몸이 아플 때면, 악연의 데자뷔처럼, 내내 아프다가도 하필 의사 앞에만 가면, 심지어 진료실 문 직전까지 아팠었는데도, 진료실 안으로만 들어가면 통증이고 뭐고 다 사라진다는 것을 느꼈던 게 한두 번이 아녔었다.

그 지독한 기시감! 다시 한번 되뇌어지지만, 산다는 게 참으로 뜻대로 안 된다는 게... 도둑이 들었던 그날 그 시각, 평소에 그토록 짖어대던 개마저도 왜 하필 그렇게도 조용했었냐는 사실이다.

간혹 통증이 오곤 했던, 아팠던 내 다리는 왜 하필 그날 그 교수님 앞에서는 통증이 싹 가셨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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