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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22년 말, 폐전이 뼈전이 삶

입원 전날 행복한 식사- 뼈 전이암 재발과 수술

by 힐링미소 웃자 2022.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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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전날, 친구가 우리 동네로 왔다. 딸 알바 데려다주고 카페로 갔다. 그 친구는 이미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커피를 시키니 그 친구도 또 시켰다. 둘이서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갑자기 봉투를 내밀었다.

"어머니 상 당하신 것과 수술을 앞두고..."

어머니 부고를 그 친구에게 전한다는 걸 미루다 깜박했다. 절친 중의 절친인데 한편으론 미안했다. 하지만 내게도 이유는 있었다. 그 친구 아버님의 부고를 나 또한 못 받았었다. 장례는 우리 문화에서 일종의 품앗이라서 상부상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자기 아버지 상 당하고 기별 안 줬던 친구에게 연락하는 건 그 친구가 까닭 없이 돈 쓰게 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난 그 안을 보고는 놀랬다. 액수가 장난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물었다. 그 친구는 똑같은 대답을 했다.

"친구, 이게 다 무슨 돈...?"
"아! 어머님 상 당했는데 가보지도 못하고... 또 수술도 있고 하니 보태 쓰라는 뜻으로..."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밥 먹으러 갔다. 점심은 대신 내가 사기로 했다. 맛난 된장찌개를 먹었다. 이 집 된장찌개는 레전드다. 뚝배기 속에 한우고기가 가득이다. 된장도 어찌나 진한지 모른다. 밥은 덜어낸다. 그리고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 한동안 기다린다. 덜어낸 밥은 진기도 있고, 달콤하기까지 하다. 어찌보면 밥은 스테인리스 그릇에 하는 게 도 좋은 것 같다. 찌개는 뚝배기에, 밥은 무쇠곹에!


밥을 맛나게 밥을 먹으며 신나게 웃었다. 남들이 보면 다음날 아무런 일도 없는 사람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다음날 수술이 중한 수술이라서 수술 후 못 걷게 될 거라는 말을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다. 하지만 어쩌랴! 선택은 둘 뿐인 것을. 그게 싫으면 수술 거부, 아니면 수술 승낙. 그런데 난 이미 승낙!


뼈 전이암 수술 안 할 경우


물론 입원 전날 취소한대서 누가 뭐랄 사람은 없다. 대신 다리뼈가 괴사 하고, 온몸으로 퍼지겠지? 그래서 수술하기로 했다. 그리고 입원 전 배 터지게 먹고 싶었다. 난 그렇다. 내일은 내일이다. 그리고 일단 수술실에 들어가면 수술의 내용과 결과는 내 통제 밖의 문제다. 통제 밖의 문제라는 뜻은 내가 신경 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 뜻이다. 그러니 일단 입원 전까지는 아주 행복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즐거운 시간들 중 식사시간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즐거워야 할 시간이다. 그 순간만큼은, 최소한 밥 먹는 시간만큼은 즐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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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익숙한 듯 안 한듯한 얼굴이 날 빤히 쳐다봤다. 아마 구 의회 의장님?? 하지만 난 그분의 뚫어짐 시선을 지나쳤다. 그 친구와의 식사는 확신 없는 사람에게 인사하느라 분위기를 깰 만큼 하찮은 게 아녔다. 그런데 그분이 내게로 왔다.

“어머, 식사하고 계시네요…”

아! 그분이었다. 난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에게로 가 잠깐 대화를 했다. 그이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하지만 구의회 의장님과 나와의 공통분모는 많지 않았다. 서둘러 인사를 마쳤다. 다시 내 자리로 와 즐겁고 맛난 점심식사를 계속했다. 돌솥밥의 누룽지를 다 긁어먹고 숭늉을 마시려고 고개를 젖혔다. 그런데 그분께서 계산대에 선채로 웃으며 손짓했다. 난 그 의미를 식사자리가 끝나고 계산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캐셔께서 웃으며,

“의장님이 두 분의 식사비를 내셨어요.”

친구가 말했다.
“뇌물 먹었군!”


친구와 헤어지니 늦은 오후가 됐다. 난 집에 갔다. 잠시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 입원을 생각했다. 짐을 싸기 시작했다.


입원 시 준비물품


1. 팬티
2. 수건
3. 치약과 칫솔 그리고 비누
4. 개인 컵과 물통으로 쓸 텀블러 두 개
5. 속옷으로 삼각 둘
6. 속옷으로 트렁크 둘
7. 태블릿
8. 노트북
9. 충전기 등 액세서리
10. 고지혈증 약과 갑상선 호르몬제, 항암제
11. 신분증
12. 입원동의서(퇴원 동의서 겸)
13. 양말 두 켤레
14. 실내화
15. 티슈

열심히 입원 준비를 하다 보니 밖에 땅거미가 짙게 내려앉았다. 난 가족에게 외식을 제안했다. 한 끼 더 행복한 식사를 하고 싶었다. 근처 ifc로 향했다. 딸과 함께 얼마전 먹었던 해물볶음밥이 생각나서였다. 기대 만땅! 난 그날 갈비탕을 먹었었느데, 딸이 골랐던 해물철판볶음밥이 그렇게도 맛나 보여서 다음 기회를 노렸었다.


하지만 그 집은 공사 중! 난 다람쥐 마냥 빙글빙글 하염없이 돌다가 다른 이의 제안으로 태국 국수를 택했다. 딱히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어녔다. 그래도 식사는 식사다. 식사는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한다! 더더군다나 소중한 식구들과 하는 식사란! 그래서 그렇게 했다. 국물 한 방울까지, 아니 그릇을 싹싹 핥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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