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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늦을 때란 없다

코로나_ 백신접종신청_주민공모사업_면접(업데이트)

by 힐링미소 웃자 2022.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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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포스팅=2022/02/28 저의 또 다른 티스토리 블로그에 썼던 글을 한 군데로 모으고 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기다리던 면접을 봤다. 공모 관련 면접이었다. 시절이 시절이니 만큼 대면 면접은 진짜 언감생심이었다. 사실 내겐 대면 면접이 유리하단 생각이었다. 면접관이 대여섯 명쯤 될 거란 언질을 받았었기에 그래도 1% 정도의 확률로 기다리긴 했었다. 그러나 혹시나? 가 역시나! 가 됐다. 줌은 누군가에겐 여러모로 이질적이다, 아직은.

그러나 전 세계의 업무 및 커뮤니케이션이 싫든 좋든 하이브리드로 전환되고 있는 게 큰 흐름이라고들 하니 어쩔 도리는 없는 듯하다. 플랫폼이 그렇게 바뀐다고 하니 미생에 불과한 내가 뭘 어쩌겠나! 그래서 결국은 줌으로 면접을 봤다.

줌으로 본 면접에서 그분들은 내게 물었다.
“공모에 두 개나 응모하셨는데, 두 개 다 가능하신가요?”
그래 내가 답했다.
“네!”
그들이 또 물었다.
“코로나 시국이란 걸 아시지요?”
내가,
“그럼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 물었다.
“이 사업들을 진행하기 위해서 모집을 하셔야 할 텐데, 혹시 시간이 촉박하지 않을까요?”
그래 내가 물었다.
“이 사업이 하나는 6월까지, 또 다른 건 10월 말까지 아닌가요?”
“예.”
라고, 그들 중 한 분이 대답하셨다.
“그럼 아무 문제없습니다.”
그들은 나의 확답이 근거 없을 어떤 거로 여기는 듯 들렸다.

이럴 줄 알고 난 대면 면접을 솔직히 맘 속에서 강하게 원했었다. 내가 지난해에 했던 지역사회 봉사 활동에 대한 마무리 자료집을 그분들께 보여 드리고 싶어서였다. 만약 그분들께서 내 자료집을 봤으면 그런 질문은 안 하셨거나... 필요성을 못 느끼셨을 테니 말이다.

지난해는 코로나가 파아란 하늘 대신, 상쾌한 대기 대신 너무도 두텁고 어두운 먹구름과 숨 막힐 듯한 무거운 공기로 우리 모두를 짓눌렀었다. 내 주변의 대부분은 내가 하려는 일을 말리려 했다. 3만 명이 넘는 우리 마을에서 주민들을 모집해서 강의를 열고 자격증을 주는 기획안이었다.

문화와 역사에 대한 것, 그리고 대학원장님을 비롯한 지역 신문 대표님이나 역사연구소 소장님 등을 섭외하는 일, 10차시 이상의 수업을 진행하는 일, 줌과 현장 강의를 리딩 하는 일, 식사나 간식에 대한 것들, 평가와 채점 등. 그런 것들은 어쩌면 코 시국엔 안 어울리는 일일 런지 모른다.


하지만 난 침체가, 우울이, 칩거가 싫었다. 난 조용함 속의 역동성, 역동성 속의 관조를 좋아한다. 위기 속의 기회를 좋아하고, 기회들 속의 선택을 좋아한다.

결국 난 3일 만에 400명이 넘는 조회수와 44명이라는 모집정원의 2배를 해치웠다. 나름 저명한 강사님들 다섯 분을 모셨다. xx문화원의 사무국장님과 친분을 텄고, 그분을 통해 문화원장님의 업무협약서 체결 약속을 받아냈다. 그렇게 지난 한 해 내가 사는 동네를 위해서 봉사했다. 사실 그건 ‘동네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와 내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좋아지면 내게도 좋은 일이다.

이번에 할(최종 채택 여부는 내 관할 밖…ㅠㅠ) 사업 두 개 중 하나는 우리 동네 지역신문을 만드는 일이다. 코로나19로 그렇잖아도 어려운데 인터넷이니 줌이니 해서 온리인 소식이 지배하는 요즘, 그런 것들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시니어들을 위해서 종이 소식지도 병행할 예정이다.

또 다른 하나는 아코디언 강좌를 여는 것이다. 행운이 날 버리지 않았는지... 우리 동네에 아코디언 고수가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고, 친구 사귀기 좋아하는 난 역시 그분과 친구가 됐다. 무거운 아코디언, 그런데 놀랍게도 무거운 것은 아무것도 아닌 가격에서 쇼크를 먹었다. 한 대에 3천이라니!

가격만 어마 무시한 게 아니란다. 무게도 ‘엄청’이라고 했다. 강의 진행을 위해선 누군가가 그 무거운 악기를 운반해 줘야 하는데... 천만다행이건 그분의 남편분께서 시간을 내셔서 그 일을 해주시겠단다... 기쁜 일이다. 게다가 나머지 열 대의 또 다른 아코디언 마저…그 강의를 위해 수강생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신단다.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감사한 분들이 참 많다.

사실 생계를 위해 분주한 중에도 봉사를 위해 쉬는 시간을 쪼개시는 분들이 이 분만은 아니다.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쪽방촌... 노약자... 중증 장애인(난 경증 장애인?)... 그런 분들을 위해 x데리아, x도날드, 시장에서... 그날 팔지 못한 음식을 수거하시고... 배달하시고... 그런 봉사를 하시는 분들 중엔 멕시코에서 아르헨까지 라틴에서만 30년 넘게 전문 외교관으로 활동하신 분, 대학총장님, 현직 금융맨, 선생님... 참 많기도 하다. 난 그분들에 비하면 깜도 안 된다.

사실 이 동네 봉사의 최대의 행운은 미생인 내가 그런 봉사의 천사들을 친구로 사귈 수 있게 됐다는 것… 친구!

“누구든 현명한 자들과 친구가 되어 같은 길을 걷는 이는 반드시 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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