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암 진단은 사형선고?: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
4기 암 진단받고 난 눈앞이 깜깜했다. 40대 중반에 이런 형벌이... 흑흑. 그리고 분노했다.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부글부글... 왜냐면 나보다 더 술 많이 마시고, 담배 많이 피우는 사람들도 건강검진받으면 멀쩡한데...
아마 그런 감정이 꽤 갔었던 듯하다. 그때만 해도 너무 믿어지지 않아서 누군가에게 볼을 꼬집어달라거나 싸대기 한 대 때려달라고 하고 싶었던 며칠들이었다. 오죽했었으면 입원했다가 담날 아침 짐 싸서 나왔을까!
하지만 믿어지지 않던 그 진단은 곧 현실이며, 사실이며, 불가역적인 그 무엇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게 됐다. 처음 병원보다 더 큰 병원에 갔을 때도 그 최초의 진단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 정도가 더 심한 정도로 나와서 긴급하게, 새치게로, 수술날짜가 잡힐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처음 며칠간 내겐 사형선고였다.
사람은 다 죽는다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나이순이 절대 아니다. 난 글을 읽어서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안다. 나 자신의 경우를 보거나 진료실 복도에 같이 앉아있곤 했던 환우들이 어느 날 안 보이는 걸 보면서, 교수님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말이다.
하기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건 당연한 일. 그 끝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일 수도 있고, 갑작스럽고 극단적인 결정 때문일 수도 있고, 천재지변 때문일 수도 있겠고, 원하지 않던 곳에서 원하지 않던 사람에 의해서도... 그렇게 어떻게든 그 끝을 맞이할 수 있으니까 어떤 모습으로든 끝은 오게 돼있다. 암도, 예나 지금이나 부분적으로나마 사형선고로 여겨지고 있으니, 그 끝에 이르는 하나의 원인일 수도 있다.
암에 의한 그 죽음이 언제 올진 모르겠지만, 암 걸리면 죽는 것 또한 사실이다. 1기나 2기라면 완치 내지는 아주 오랫동안 살 수 있겠지만 3기나 4기는 좀 다른 얘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삶이 전체집합이라면 그 안에 생로병사가 있을 테고, 암 걸린 삶도 삶이니까 역시 그러할 것이다. 언젠가는 말이다.
4기 암 진단이 기회였다고 말한다면 거짓말하는 걸까?
그럼 암은 급작스런 죽음과는 뭐가 다를까? 암도 초기가 있고 말기가 있지만 교통사고나 비명횡사처럼 그렇게 급작스럽게 죽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내 경우를 보면 더더욱... 물론 케바케일 수도 있겠다. (난 2013년쯤에 이미 땅속에 있어야 하는 게 일반적인 데이터라고 교수님들께서 그러셨고, 그러신다. 4기 진행성전이암을 진단받았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급성적인 말기암인 경우를 빼고는 삶을 되돌아볼 기회,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암 진단은 지난 시절의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뒤돌아 보거나 되돌아보거나 지난 시절을 반추하면서 고요하게 자신을 볼 수 있는 건 어쩌면 다른 마지막보다는 다행인 건 분명하다. 나의 경우엔 분명 그렇다.
암 진단이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이유
4기 암 진단은 울고불고할 일만은 아니다. 기회도 된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섭생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 삶의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삶이란 게 얼마나 귀한지를 알 수 있고, 순간순간을 즐겁게 보내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도 있다.
- 죽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질 수 있고, 두려움보다는 누구에게나 한 번은 반드시 찾아오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단계란 걸 인정할 수 있다.
- 되도록이면 자연에서 얻을 수 있고, 조금은 더 생태친화적인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더 나아가서 되도록이면 가공을 최소화한 식품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된다.
- 어제나 내 주변에 있고, 날 배려하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발견하고 순간마다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돈이 많다고 착각한 들 내 주변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사람(들)이 없다면 하루를 더 살아 있은들 무슨 즐거움이 있을까를 경험하는 계기가 된다. 그 과정에서 내가 비록 작고 적으나마 나 또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고 싶어 진다.
- 말의 무게와 중요성을 알게된다.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인 말, 혐오의 말보다는 칭찬의 말, 험한 말보다는 예쁜 말이 가져다주는 선한 영향력에 감사하게 된다.
- 미소와 온화함이 머무는 얼굴을 만들 수 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죽을 암에 걸렸나 하는 분노와 자책과 원망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이며, 내 곁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인지를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머물고, 마음속엔 마르지 않는 지혜가 함께함을 느끼니 온화함이 얼굴에서 떠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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