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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2024년 4기암과 14년째, 척추전이

4기 암 뼈 전이 3번째 재발 걱정 속 딸과 망중한

by 힐링미소 웃자 2024.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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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 암 뼈 전이 3번째 재발 걱정 속에 딸과 망중한을 보냈다. 1박 2일 고향집 여행이었다. 고향은 늘 아련한 곳이다. 뭔가 부담스럽기도, 뭔가 본능적인 것이기도 한 그 무엇이다, 내겐.

 

난 15살을 막 보내고 고향 집을 떠났다. 그 뒤로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미스터리다, 내겐. 그런 고향 집을 갔다 왔다. 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서. 여러 생각이 드는 여정이었지만 안 좋은 생각이 끼어들려 하면 거둬내곤 하며 갔다 왔다.

 

 

고향 집 가기 전전날 난 병원에 가야만 했다. 이빨 정기 진료 때문이었다. 이 치아는 항암제를 시작하면서부터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중이다. 아미 진행되면서 치골이 상하더니 결국엔 임플란트를 하게 됐었다. 그 후로 진정되는가 싶더니 독한 항암제에 무너지고 있다. 46번 치아를 잃은 후 인접 치아들이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단다. 브리지를 하던지 임플란트를, 또???, 해야 한단다. 

 

 

치과 진료 다음날 난 당근을 하러 가야 했다. 집 나서기 전 딸아이는 아빠 가는 길에 태워달라 했다.  친구 졸업식 선물이라며 주문했던 꽃다발을 찾아야 한단다. 그리곤 새로 시작한 알바 땜 보건소에 가야 한다고 했다.

 

꽃다발 찾는 동안에는 차 안에서 기다릴 여유가 있었지만... 보건소 일은 같이 못했다. 이어서 딸내미 친구 학교까지 같이 갔었으면 얼마나 좋았으련만 선약 땜 그리 못했다. 딸은 그 꽃다발 들고 전철 타고 이동했으리라. 옆 자리 앉은 분들께 고운 꽃향기가 전달되길 빌며 당근길을 재촉했다.

  

 

다음날 고향 집을 향하는 길을 나섰다. 딸이 운전을 시작했다. 대견! 감사함! 이리도 커서, 잘도 커서 운전도 잘하고, 아빠도 태워 주고... 땡큐, 딸~~

 

행담도에 들렀다. 난 집에서 아침을 먹었지만 딸은 못 먹었다. 딸은 휴게소에서 라면을 시켰다. 충무김밥 2개! 아주 꼬마다. 원가절감의 극치다. 라면과 함께 해서 8,000원이란다. 이런... 도대체 저 라면에 계란을 풀기나 한 거냐?

휴게소 물가가 장난이 아니다.  반면에 음식은 부실하다. 반찬이랄 것도 없는 반찬도 가관이다. 단무지 몇 개?! 그나마 충무김밥이라고 중국산 고추가루에 버무린 무 몇 개??

 

 

가는 길에 경치, 풍경 구경은 원 없이 했다, 딸 덕분에. 운전대를 안 잡으면 볼 게 많다. 스치는 산하가 참 아름답다. 멀리 보이는, 차창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해변을 감상하는 건 조수석에서만 가능한 호사다. 또 한 번 딸에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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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때 못 간 죄(?)로-코로나 확진- 어머니 모신 납골당에 갔다 왔다. 시골집에 홀로 계신 아버지를 모시고서. 그런데 한 번이 아녔다. 고즈넉한 오후가 하릴없이 흘러갈 일이 생겼다. 아버지께서 어머니 유골함 모신 칸만 유독 쓸쓸하단다. 뭘까? 자식은 모르는 뭔가가 있을까?

 

사진이 없단다. 납골당 각 칸마다, 유골함 모시는, 유골함 말고도 그냥 사진 아니면 아주 작은 가족사진을 작은 액자 속에 넣어 추억하는 칸들이 많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런 게 없어서 쓸쓸하실 거란다. 집을 나서실 떼 사진을 챙기셨던 이유였다. 자식은 못 본 걸 보시는 느낌적 무엇...

 

그러나 아버지께서 챙기신 사진은 너무 컸고, 유골함 모시는 칸은 너무 작았다. 사진을 둘 곳이 없었다. 앞에 놓으면 유골함에 적힌 생몰연대와 도자기에 새겨진 얼굴이 가려진다...

 

난 아버지의 바람이 현실이 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읍내로 나온 후 곧바로 사진관으로 향했다. 게서 사진을 작게 만들어 작은 액자에 넣었다. 그걸 들고 다시 차를 돌려 납골당을 향했다. 역시 딸이 운전했다. 딸은 아빠의 바람과 할아버지 소망을 배달했다. 다시 땡큐!  

 

 

그런 후 맛난 식사를 했다. 외식이라면 간짜장이 다인줄 아시는 아버지, 90 넘으신 당신께서는 메뉴판을 안 보신다. 중국집에선 무조건 간짜장이다. 손녀를 위해서는 탕수육이다. 찹쌀 탕수육. 단순한 인생일수록 장수, 비결 같기도 하다. 

 

 

 

딸아이도 할아버지에 맞춰 간짜장을 주문했다.   속 깊은 아이...

 

난 이 집의 별미, 삼선짬뽕을 시켰다. 하지만...

 

욕심만 앞섰을 뿐.. 다 먹질 못했다. 여전히 입 안이, 식도가, 위가 타는 듯한 기분 때문이었다. 항암제 휴약 때나마 매운 것 실컷 먹고 싶은데...

그래도 딸아이가 맛나게 먹는 모습에 내가 최애 짬뽕을 남겼음이 서운하거나 아쉽진 않았다. ㅎㅎ

 

 

아버지를 뒤에 남기고 오는 발길이 무거웠다. 석양을 마주 보며 톨게이트로 내달려야만 하는 내가 미웠다. 

 

물론 이번에도 역시 운전대는 딸이 잡았지만...

 

난 집 떠나오기 전 벼농사 져서는 못 먹고 산다는 아버지 얘길 들었다. 얼마 전까지 22만 원 하던 쌀 한 가마가 몇 년도 안 돼 17만 원이 됐단다. 대농이 아니면 더는 논에서 기대할 게 없단다.

 

그렇다고 팔아봐야 몇 푼 되지도 않고, 그걸로 남은 세월 먹고살 수나 있겠냐시며... 한숨을 지으셨다. 당신 얘기가 아니라... 날 보시면서...하시는...

 

당신 자식이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어깨가 부쩍 아픈 게... 이상도 하건만...다리뼈 이은 곳들 스크루도 몇 개 부러진 것 같고. 걷거나 움직일 때 통증이 장난이 아닌 걸 보면...

 

그래도 딸과의 여행은 기쁘다. 그저 기분이 좋다. 운전하는 옆모습 훔쳐보는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얘야 건강하렴... 아빠 몸 닮지 말고...

 

 

 

딸 운전하는 솜씨에 감탄하고, 대견한 모습에 기쁨이 만땅...그러는 사이 벌써 행담도 휴게소에 도착했다. 내가 젤 좋아하는 자율식당! 거기서 언제나 사치를 부리는 나지만... 오늘은 아녔다. 

 

그냥... 육개장에 무채와 열무김치만 시켰다. 그것도 역시 다 먹지 못했다. 속이 타는 듯해서. 기분이 태도가 되고, 오버가 되고... 귀한 먹거리 남기는 낭비를 하고...

 

 

 

딸아이는 그녀의 최애...우동(가락국수?)!

 

난 불어 터진 텍스처가 인생이 될까 봐 피하는... 하지만 딸은 그릇의 바닥을 보인다!

 

 

잘 먹고 간강하렴... 그리고 빗 속에 운전하느라 애썼구나~ 너로 하여 아빠는 오늘 또 귀한 추억 하나 더 보태는구나~^^

몇 달 안 있음... 넌 또 이역만리를 향해 길을 나서겠지... 아빠는 그동안 너와 은하수보다 더 빛나는 추억을 쌓아야겠지. 그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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